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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늘의 말씀] 예원교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5:1~15)"

 

우리투데이 이승일 기자 |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예원교회(정은주 목사)는 10월 17일 일요예배를 통해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는 말씀을 전파했다.

 

다음은 이날 말씀의 요약본이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 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서 론]  

 

코로나19로 인해 지금 우리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상의 자유들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상황임.  
사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다양한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사라고 할 수 있음(이스라엘의 출애굽, 미국의 독립전쟁과 노예해방전쟁,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한국 전쟁, 탈북민들의 탈북 등). 
미국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음. 그만큼 자유가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음 
▶ 갈라디아서를 통해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도 자유임.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이라는 별칭이 붙은 말씀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도 결국 영적인 자유함을 누리라는 선언임. 
지금 뭔가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눌리고 매여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음. 
예원 전 성도는 말씀을 통해 뭔가 막혀있는 것들, 여러분의 삶에 평안을 빼앗아가는 것들로부터 완전 자유함을 누리며 영적 영향력 을 입혀나가는 그리스도의 절대 제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영적 자유함의 유일한 통로  
1) 영적 자유함을 얻는 유일한 통로  
➊ (갈5:1) 이 말씀은 바울이 지금까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신학적으로, 때로는 영적 아버지의 심령으로 강조했던 메시지의 결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의 축복을 빼앗기지 말고 온전히 누리라는 것임. 이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주어진 영적 자유이며, 죄와 저주, 사망의 모든 권세로 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근원적 자유임.  더  나아가 지금까지 얽매여 있던 모든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를 말함. 사실 유대인과 율법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 그런데 문제는 율법에 대한 해석과 접근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달랐던 것임. 사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님. 중요한 것은 인간이 모든 노력을 기울인 다해도 다 지킬 수 없기에 우리가 율법을 통해 죄인된 존재임을 깨닫고 그 죄로부터 완 전 자유함을 얻는 유일한 통로인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임.  


➋ 바울은 롬3:20에서 이 사실을 명쾌하게 요약하며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 있음을 말하고 있음. 
그리고 롬3:23-24에서는 어떻게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죄에 서 자유할 수 있는지 밝히고 있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임.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율법의 본질을 놓친 채 엉뚱하게 스스로 또 다른 규례들을 만들어 그게 마치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호도하고 억지 주장을 한 것임. 
이들 은 율법을 613개의 조문으로 분류했고 이 율법 조문을 지키는 것을 생명처럼 여겼음.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는 전혀 방향이 맞지 않는 인본주의의 극치였음.  

 

2) 참 자유함의 축복을 누리는 참 자유인  
➊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라는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그 복음 위에 굳게 서지 못하고 여전히 율법의 멍에를 메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의미임. 
당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참 자유함을 빼앗아갔던 한 가지 요소가 있었음. 
(갈5:2-4) 그것은 바로 할례 문제로, 사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 람과 언약을 맺을 때 그 징표로 행했던 것인데 이를 율법주의자들이 구원의 조건으로 만들어놓았던 것임.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할례가 결코 구원의 조건 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믿음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선포함(갈5:6) 
▶ 사단은 교묘히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파고들어 영적 진리가 아닌 서론에 마음을 빼앗기게 해서 정작 보아야 할 본론은 보지 못하게 만듦.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주어진 구원의 길만이 유일한 길이며, 이 길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더 이상 율법의 굴레에서 
매여 있지 말고 참 자유함을 누리 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임 
▶ 그런데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죄의식, 각종 상처, 질병, 실 패와 낙심, 각종 인간 관계 등 다양한 멍에를 메고 사는 분들이 너무 많음. 
이런 멍에를 지고 있으면 분노와 자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열등감과 우울증에 빠지게 됨. 
그것이 심해지면 중독과 자포자기에 이르게 되는 것임. 결과적으 로 한 걸음도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가 없게 됨. 
우리는 이러한 사단이 주는 멍에, 우리를 속박시키고 멸망길로 인도하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음.  
➋ 미국 워싱톤 DC 근교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에 가면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이 새겨져 있음.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임. 그런데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자유함의 축복도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 
예수 그리스도의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놀라운 희생을 통해 주어졌음을 놓치지 말아야 함. 이 자유함의 축복을 놓치는 순간 평안과 기쁨을 잃게 됨. 
특히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어 야 할 것이 자유와 자유인은 별개라는 것임. 
자유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졌음. 
문제는 이를 참으로 누리는 것임. 
우리는 죄와 저주, 사단과 멸망, 모든 사주팔자와 운명에서 완전 해방된 참 자유인임을 붙잡으시기 바람. 
비록 실수하고 넘어졌더라도 눌리지 마시기 바람. 참 자유인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속지 마시기 바람. 
예원 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의 축복을 확실히 누리는 증거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자유를 위하여 부름받은 자  
1) 완전 해방된 성숙한 자유인의 모습  
➊ (갈5:13-15)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 자유함을 얻은 우리가 어떠한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실천적인 부분을 언급함. 
무엇보다 우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고, 영적 자유를 누리고 그 자유함을 다른 사람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것임. 
그 첫 발걸음이 복음으로 Oneness의 축복을 누리는 것임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을 착각해서 육체의 기회로 삼아 방종을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님. 
또 나는 자유하니까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행동해도 된다는 말도 아님. 
그래서 요한 칼빈은 자유를 “참된 자유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으며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할 수 있는 의지의 해방을 뜻한다”고 정의함.  
➋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자유는 종노릇하기 위한 자유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 
언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고서 이제는 다시 종노릇하라고 하느냐고 할 수 있는데 그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함. 여기서 종 노릇 하라는 말은 복음적 Oneness를 이루라는 말임. 
모든 만남과 사건 속에서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선입견, 편견, 상처, 분노, 질투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임. 
이것이 율법과 과거의 문제로부터 완전 해방된 성숙한 자유인의 모습임.  

 

2) 영적 자유함을 누리는 핵심  
➊ 어떻게 이 자유함의 축복을 완벽하게 누릴 수 있는가? 진리를 더 깊이 알아갈수록 자유함을 누리게 됨(요8:32). 
여기서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놀라운 영적 비밀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참 자유함을 누리게 됨 
▶ 이것이 3오직을 그렇게도 강조하는 이유로, 3오직은 영적 자유함을 누리는 핵심임.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로 인생 결론을 내야 함.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적용하면, 
각종 멍에에 메일 이유가 하나도 없음. 그리고 우리 인생의 방향은 오직 하나님 나라임. 세계복음화는 237 나라 5천 종족 현장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임.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될 때 임하게 되어 있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음. 공중 권세 잡은 흑암세력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임.  
➋ 그래서 오직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함 그래야 땅 끝까지 증인된 삶을 살게 됨.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말씀의 전제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것임. 성령이 내주, 인도, 역사하실 때 우리가 237 나라 5천 종족 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게 됨. 
그래서 오직 성령 충만을 통해 우리의 한계와 수준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야 함. 결과적으로 237 나라 5천 종족 복음화라는 언약적 비전을 붙잡고 기도해야 함.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하늘 보좌가 움직이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237에 빛을 비추게 됨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 세계를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함. 진리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체험하시기 바람. 
강단 말씀과 각종 훈련을 통해 현장에서 실제 복음을 증거하면서 이 영적 자유함의 축복을 사실적으로 체험하며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입혀 나가는 그리스도의 절대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 론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구소련의 반체제 작가였던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1917년(러시아 혁명 시기) 러시아에 자유가 주어졌는데 그 자유를 사용할 줄 몰랐던데서 러시아 역사의 비극(공산화)이 시작되었다”라고 했음.  


영적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영적 자유함을 놓치지 말고 올바로 누려야 함. 복음이 주는 축복을 잘못 누리면 복음의 영향력을 입힐 수가 없음. 
그래서 예배와 강단이 중요함. 강단은 복음이 주는 축복을 올바로 맛보도록 인도하는 영적 이정표가 되기 때문임. 
예원 전 성도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강단 말씀을 올바로 붙잡고 복음이 주는 참 자유함을 누리고 증거하여 또 다른 영혼을 자유하게 하는 생명 구원의 전령사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