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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역사 기행] 탄금대기(彈琴臺記)

 

우리투데이 이승일 기자 |  이 비석은 충주의 역사와 지리, 인물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석의 높이는 183cm, 폭은 66cm, 두께는 34cm 인 화강석으로 1954년에 세워졌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이다.
또한 땅이 기름지고 교통의 충북 충주시 중앙로 3 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부터 세 나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세력을 다투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신라의 특수 행정 구역이었던 오소경 중 하나인 중원소경이 설치되는 등 이처럼 충주는 예부터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충주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으로, 뛰어난 음악가 우륵, 대 문장가 강수, 명필 김생 등이 배출되어 이 고장의 문화 예술을 꽃피웠으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 탄금대 전투 때 활약했던 신립, 병자호란 때 활약했던 임경업 등이 배출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 비석은 이 같은 과거의 영예로움을 이어 받아 문화의 원천이 되고 인재가 모이는 고장이 되려면 지역 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올바른 전통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비석의 글은 최남선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충현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