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교회, "진정한 Oneness 공동체! (갈6:1~5))"

  • 등록 2021.10.31 23: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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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투데이 이승일 기자 |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예원교회(정은주 목사)는 10월 31일 일요예배를 통해 '진정한 Oneness 공동체'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는 말씀을 전파했다.


다음은 이날 말씀의 요약본이다.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6: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복음의 시각을 가집시다.’
[서론] 우리가 매 주일 살펴보고 있는 갈라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을 완벽하게 누릴 것을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더 이상 예수 믿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신분과 권세를 마음껏 누리면서 영적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 문장으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영적 진리를 요약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참 자유함을 누리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 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며 영적 영향력을 입히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이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이런 열매 맺는 삶을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이루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서로 짐을 지는 영적 자세를 가질 때 진정한 Oneness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공동체는 홀로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약한 부분을 도와주며 함께 열매를 맺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는 영적 눈이 열려야 합니다.
  기독교 박해자였다가 회심하여 전도자의 삶을 살았던 인도의 썬다 싱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히말라야 산을 넘어가다 추위에 쓰러진 사람을 길에서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내 한 몸도 추스르기 힘든데 하며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 뒤에서 따르던 썬다 싱이 지체 없이 그를 둘러업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를 걸었을까? 산 넘어 내려가다 보니 앞서 쓰러진 사람을 외면하고 떠났던 사람이 길모퉁이에서 추위에 쓰러져 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어가던 이웃을 업고 있는 자기는 아직도 땀을 뻘뻘 흘리며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남을 살리는 것이 바로 자기를 살리는 길’이라는 너무나 소중한 진리 하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믿음 하나를 지키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 많습니다. 내 믿음을 지키기도 힘든데 다른 사람까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 같지만, 이것은 완전히 사단의 속임수라는 사실을 알고, 그 틀을 깨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 중심의 틀을 깨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자기의 믿음을 향상하는 영적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모태로 신앙생활 했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것도 잘못, 저것도 잘못이라고 하는 율법주의적인 환경 속에서 움츠러든 삶을 살았으니 영적 영향력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청각장애 판정 이후 저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를 고쳐달라는 기도에 집중해서 전국 기도원을 다 다니면서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현장을 향해 눈을 열게 하셨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바로 제가 사는 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리로 나아갈수록 제가 오히려 더 살아났습니다.’ ‘그것이 지금 예원교회가 있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도 나 중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리로 나아가는 영적 파수꾼, 영적 의사, 영적 대사로 멋지게 쓰임 받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짐을 서로 지는 복음 공동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1~2) ‘사도 바울은 진정한 Oneness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의 범죄가 드러났을 때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범죄’는 헬라어로 ‘파라포노마티’라고 하며 ‘아래로 떨어지다’라는 뜻인데 정로에서 탈선하여 어긋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범죄가 아니라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어떤 유혹에 의해 부지중에 저질러진 실수나 허물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창3장의 현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변에 있는 성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 공동체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3장의 옛 습관 옛 체질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정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순간 방심하여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의 눈을 가지고 감정, 혈기에 따라 비판하고 정죄해버리고 나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태로 바뀔 수 있습니다. ‘결국 Oneness가 깨지게 되고, 상처받은 사람은 더 큰 좌절과 영적 침체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일입니다. 사단의 뜻이 무엇입니까? 참소자입니다. 잘못된 부분을 구구절절이 드러내면서 정죄하는 것이 그 본업입니다. 마귀는 또 무슨 뜻입니까? 이간자, 분리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해서 분리시키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Oneness를 깨는 것으로 생각되면 일단 멈추고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온유한 심령으로 그 사람을 바로잡고 자기 자신도 그러한 부분에 넘어지지 않도록 영적 경계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심령은 무엇입니까? 온유는 지난주일 말씀 통해 살펴본 것처럼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온유한 심령은 내 감정의 지배가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는 마음입니다. 자기 기분이나 감정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눈으로 이해하고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심정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사람 곧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받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할 때 그 사람은 변화와 갱신의 기회를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짐’은 헬라어로 ‘바로스’ 라고 하는데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과중한 시련이나 고통,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유독 힘들어하고 쉽게 넘어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특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 한마디를 해도 복음적으로 해야 합니다. 연약해서 자꾸 넘어지는 사람에게 ‘아직 못 깨달아서 그렇다, 영적 문제다’라는 말을 하면 깨닫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큰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것과 같은 상처를 받고 영적 의욕을 다 빼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합니까? 그들의 짐을 나누어지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라는 것입니다. 롬14:1을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15:1에도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롬15:7에 이렇게 결론을 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복음 공동체는 믿음이 좋다고 일방 독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도와 함께 가는 것이 복음 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이렇게 할 때 조금 늦는 거 같아도 종국에는 더 큰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한 번 더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삶을 사는 것을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요13:34~35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롬13:10에 보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한 법을 주셨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사는 법입니다. ‘With Principle, 예수 생명으로 자신도 살고 상대방도 살리는 법입니다.’ 
  사랑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주면서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 되는지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한 내용으로, 복음적 사랑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6장의 인물들을 보면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들에게 별명을 하나씩 붙여 주었습니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뵈뵈는 여러 사람들과 사도 바울의 보호자였고, 브리스가 부부는 전도자 바울을 위해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을 정도로 생명 건 동역자였으며, 가이오는 바울과 온 교회를 돌보는 식주인이었습니다.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이 대표적인 세 단어는 전부 다 함께 기뻐하고 주면서 기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무거운 짐을 서로 지고 서로를 돕는 진정한 Oneness의 축복을 누린 것입니다.’ ‘그 결과 로마 복음화의 응답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완전 복음 공동체를 이루어 237 나라 5천 종족 복음화의 응답 속으로 들어가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자기 짐을 지는 언약 공동체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6:3~5) 바울이 당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이 아닌 율법적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려 했던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해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살피라고 권면했습니다.’ ‘무너진 사람을 보고 나는 서 있다고 자랑하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 4절에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고 하면서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않다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설령 자기에게 자랑할 내용이 있더라도 그것을 자기만 가지고 있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하면서 자기 자랑에 빠진 것을 사도 바울이 언급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영적 교만에 빠지는 것만큼 큰 적도 없다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영적 교만이라는 것은 바울의 말처럼 스스로 속고 있는 상황 속에 빠진 것입니다.’ 자기는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창3장의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3장의 자기중심적 삶은 결국 창11장의 바벨탑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삶에서 벗어나 4절에 보면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5절에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짐’이라는 말은 1절에 언급한 짐과는 다른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포르티온’인데 앞서 말한 바로스 보다 훨씬 가벼운 짐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군인들이 행군할 때 지는 짐을 가리키는 말로 충분히 혼자서도 질 수 있는 짐입니다. 이 짐은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맡기신 직분을 가리킵니다. 자기의 일을 살피고 자기의 짐을 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역할과 주신 은사에 합당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남과 비교하는 것에 정신 빼앗기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2021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이 있습니다. ‘매년 청지기를 선정하면서 직분을 주는 것은 그 직분을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시고 축복을 주시기 위한 언약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해 응답받을 영적 푯대를 주신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직분에 대한 감각이 없을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직분을 받았는지조차 잊고 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열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이제 2021년도가 두 달 남았습니다. 사실 11월이 지나면 2022년 청지기를 세우니까 한 달 정도 남은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특히 직분 받은 분들은 남은 기간 정말 내게 언약적으로 주신 축복을 놓치지 않도록 올인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만족케 채우시는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사실적으로 체험하는 남은 2021년 직분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유명한 정신의학자인 폴 투르니에가 비판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비판의 근거는 훌륭하지만, 사단은 우리를 자신의 진영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 비판을 이용한다.” 아주 의미 있는 말입니다. ‘각자가 다 자기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지만, 결국은 사단의 속임수에 속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롬14:20에 보면 서로 비판하고 Oneness를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바로 생명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생명 살리는 하나님 사업의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서로 진정한 Oneness 공동체를 이루어 생명 살리는 237 치유 서밋으로 당당히 서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승일 기자 xtls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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