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데이 염진학 기자 |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COVID-19의 장기화 여파가 서서히 지나고 이제는 코로나 이전의 관광 트렌드 기조가 변화되는 가운데, 국내의 관광객들이 한때는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렸던 베트남 다낭에 요즘 매일 1만여 명의 한국 여행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베트남에서 10년째 가이드 생활을 하는 베트남(하노이, 호치민, 달랏, 다낭 등) 전문 가이드 김정국 이사가 다낭을 소개했다.
▲ 베트남 다낭지사 김정국 이사
첫째. 다낭에는 디스커버리 채널이 선정한 세계에서 아름다운 3대 해변인 미케비치 해변이 있고,
둘째.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 눌려 삼장법사 돌아오기를 5천 년간 기다렸다는 오행산이 다낭에 있으며,
셋째. 썬짜 반도에 있는 사찰 영응사는 30층(67m) 높이의 해수 관세음보살님이 들어주시는 소원의 기도는 효험이 있고,
넷째.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신라의 고승 해초 스님이 다낭을 다녀갔고, 대중가요 인기 가수 남진이 근무했던 해병 청룡부대 주둔지가 있었으며, 유네스코가 역사유적으로 지정한 아담한 항구도시 호이안이 있다.
▲ 베트남 다낭 국제공항의 입국장 모습
다섯째. 98년 기나긴 시간의 프랑스 식민지 시절 식민정부 관리들이 즐겨 찾던 아름답고 멋진 별장 있는 지역이고 4차선 케이블카를 건설 중인 국립공원 바나산 있다.
여섯째 . 한양 사대문 안과 경주를 합쳐놓은 듯한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 왕조의 고도 "후에" 등 베트남 다낭 관광은 이렇게 여섯 곳이 백미라고 말했다.
또한 베트남의 역사와 풍습, 국민성 등 우리 여행객들이 알고 싶은 내용을 프로 가이드답게 막힘없이 설명해 주었다.
인구 120만 명이 있는 다낭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과 에메랄드 바다와 푸른 신록은 청정 도시 다낭은 상징하게 하며, 그 위를 가로지르는 많은 유람선 있었고, “주말이면 불을 뿜어대는 용다리는 다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다”라고 말했다.
▲ 베트남 다낭 미케비치 해변
아침 5시면 커피를 내리는 길거리 카페와 6시면 좌판을 까는 길거리표 서민들의 국수 "퍼"와,
활기찬 모습에 소박한 시민들의 일상들이 김정국 가이드를 감상에 빠지게 하기도 했단다.
이른 새벽 집 앞을 청소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과 파자마 바람에 돋보기 너머로 신문을 살피며 커피를 마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다낭의 뒷골목 서민들의 삶과 그들의 정서가 우리 한국의 70, 80년대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우리 민족이 공자님의 유교를 정치, 사회이념으로 받아들인 것은 불과 700년 전이지만, 베트남은 무려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한무제 때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 식민역사의 시작과 함께 유교도 받아들였으니 우리 한국보다 1,400년 먼저이며, 조상을 공경하고 장유유서를 따지는 베트남이며, OECD 중에서 선진국인 우리 국민이 배워야 하고 사라져가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우리 한국인이 가졌던 그 미덕을 고스란히 간직한 민족이 베트남인임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 베트남 다낭 신라모노그램 호텔 수영장 모습
또한 베트남 하면 베트남전쟁을 먼저 연상하지만 흥부와 놀부에 등장하는 연 흥부의 조상은 베트남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와 베트남은 먼 옛날의 인연으로 시작해서 현재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까지 왔으며, 순결한 베트남 처녀의 순백의 아오자이는 베트남 여성의 강인함을 알 수 있으며, 한국과 베트남의 씨줄과 날줄을 교차하는 역사와 문화 그 사이사이 행간의 숨은 한국과 베트남이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이 다낭 여행이라 말했다.
▲ 베트남 다낭 미케비치 해변 전경
이번 여행에 기자는 다낭에서 해박한 지식과 유창한 베트남어로 한국의 외교관 역할을 하는 베트남 다낭 지사 가이드 김정국 이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베트남과 한국이 좋은 관계를 갖고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제2의 외교관 가이드가 돼주고 국내 여행객이 베트남 다낭을 방문하면 좋은 추억을 많이 쌓고 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개인, 단체여행 행사 전문 가이드 김정국 이사(☏ + 84-896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