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데이 염진학 기자 |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광양의 산성들이 아름다운 풍광과 탁 트인 조망을 자랑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사색과 멍때리기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광양에는 마로산성, 불암산성, 봉암산성 등 백제시대에 축성된 석성(石城)과 고려시대에 축성된 토성(土城)인 중흥산성 등 4대 산성이 있다.
▲ 마로산성
산의 정상부에 축조돼 적의 감시와 방어에 활용됐던 산성은 주변의 풍광을 조망하고 울창한 숲과 여백의 공간을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관광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또한, 흙이나 돌을 이용해 정교하게 쌓은 산성은 축성 시기의 건축, 토목 기술력과 사회문화상을 엿보기에 좋은 역사유적이다.
광양의 4대 산성을 오르다 보면 막대한 인력과 비용,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성이 한 도시에 4개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 불암산성
흔히 산성이 적을 방어하고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기 유리한 군사·행정 요충지에 축조된다는 점에서 광양의 4대 산성은 광양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하게 한다.
마로산성(사적 제492호)은 광양읍 북쪽 해발 208.9m 마로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말안장처럼 가장자리는 높고 가운데는 낮은 마안봉 지형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성벽, 망루, 건물지, 우물터, 집수정 등이 확인됐다.
산성 내에서는 마로(馬老), 관(官), 군역관(軍易官) 등의 글씨가 새겨진 수키와와 토기 등이 출토됐다.
지난 3월, KBS 1박 2일 팀이 마로산성에서 연출한 유쾌하고 발랄한 사색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하며 전국적인 멍때리기 명소로 등극시켰다.
멍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는 뜻의 신조어로, 마로산성은 아름다운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는 ‘놀멍’, ‘달멍’, ‘바람멍’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봉암산성
불암산성(도지정기념물 제177호)은 비촌마을 불암산 남서쪽 해발 231.5m의 봉우리를 긴 사다리꼴로 테를 두르듯 둘러쌓은 협축식 석성이다.
호남읍지(1895), 광양읍지(1925)에는 ‘현 동쪽 50리에 위치한 성으로 500척이며 성내에 우물이 1개 있다’고 기록돼 있으며, 1998년 순천대박물관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600년 무렵 축조된 백제시대 산성으로 확인됐다.
문지(門地), 건물터, 우물 등이 발굴됐으며 기와류(격자문, 무문, 승문, 선문), 토기, 어망추, 석환 등이 출토됐다.
산성 한켠에 놓인 벤치에서는 수려한 억불봉과 맑은 수어호의 풍광에 경탄하며 산멍, 물멍을 즐길 수 있다.
진월면 신아리 해발 170m 고지에 자리한 봉암산성(문화재자료 제263호)은 둘레 약 100m, 외벽 높이 90cm 소형 산성으로 ‘신아리 보루’로 불린다.
봉암산성의 남쪽 일부는 허물어졌지만 대체로 견고하게 남아있으며 적의 동태를 살피기에 적합한 요새로 섬진강, 하동군, 진월면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봉암은 정상의 바위 모습이 벌들이 모여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으며, 산 정상은 호랑이의 얼굴이고 섬진강으로 내리뻗은 바위들은 발톱과 같다고 하여 ‘호암’ 으로도 부른다.
▲ 증흥산성
중흥산성(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은 6개 산봉우리, 골짜기 등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둘레 4Km의 포곡식 산성으로 고려시대 축성된 광양 유일 토성이다.
중흥산성 안에는 쌍사자석등(보물 제103호), 삼층석탑(보물 제11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42호) 등의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중흥사가 있으며 사찰의 이름은 중흥산성에서 비롯됐다.
정구영 관광과장은 “광양은 동쪽으로는 섬진강을 경계로 하동, 서쪽으로는 순천과 맞닿아 있으며 북으로는 구례, 남으로는 광양만을 끼고 여수, 남해군과 마주하고 있다”며 “광양 4대 산성은 광양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지정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단서”라고 말했다.
이어, “한때는 치열한 격전지였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산성을 오르며 사색을 즐기고 탁 트인 정상에서 산멍, 물멍, 바람멍 등을 즐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