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명순 단장 | 이제 문화전쟁입니다. 어둠은 빛의 축제를 위한 기다림이다.
이 어둠의 주체는 누구이며 어떻게 생성되었나? 대한민국의 어둠이다.
많은 애국국민들, 깨어나는 2030, 질문을 시작한 3040에게 나의 일기와 동행하기를 희망한다.
너 해봤어?
안나의 일기, 차용과 오마주는 오늘 대한민국의 (어둠), (어둠의 세력)에 대한 충격 때문이다.
HYBRID- (하이브리드 전쟁)
우리의 대통령은 육필원고에 취임사에 국민께 알렸다.
디지털과 아나로그가 융합한 (하이브리드 부정선거)다. 비상계엄 증좌다.
우리의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말씀하셨다.
독이든 설탕을 먹은 과학과 진실,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배척하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경고였다. 어둠의 실체다.
어둠은 아이러니, 이율배반, 부조리로 뒤틀어 버린다. 우리 사회의 선과 악의 가치를 호도함은 물론 병적인 이념사고를 확장한다.
극단주의, 팬덤주의, 전체주의, 네오막시즘의 확대 재 생산이다.
(하이브리드 전술)로 위장함이다.
과학과 진실,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는 매도당한다.
홍위병의 광란처럼 병증은 깊어져도, 오히려 디지털 정보확장은 의도적으로 제동할 수 없다.
어둠은 반지성주의이자 하이브리드 부정선거다.
삶속에 스며든 (문화)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나의 선택은 (오래된 미래), (영혼의 미술관) 책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들의 미래는 오래전에 마련된 열매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의 뿌리에서 답을 찾는 여정이다.
앙랭드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의 원제는 (치유)다.
ART의 치유과정을 역설하였음에도 온유함, 친절함, 지극히 섬세한 필치로 비전문가에게도 다가서는 힘이 있는 책이다.
ART를 통한 치유의 책임을 설계하였다. 책을 파는 책방이 아니다.
인문학적으로 넓고, 깊고, 높으며 풍요로운 이야기를 담아 오픈 스튜디오, 오픈 토론광장, 방송의 영혼의 미술관 책방이다.
물론 반지성주의를 역설한 대통령의 외침과 만나고 있다.
영혼의 미술관 책방은 (문화전쟁)의 제 1캠프로 명명하였다.
좌파가 쌓아온 노정의 낱낱은 실로 방대하다.
경실련, 환운, 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의 20여년의 여정이 하이브리드로 진화한다.
한겨레신문에서 오마이뉴스의 전환처럼 이제는 두루킹에서 여론조작에 이르는 광의적인 전략차원이 되었다.
(아름다운가게- 박원순), (좌파- 민들레영토)의 아나로그적인 전술이 이제는 대깨문, 개딸, 얼개로 맘까페처럼 정교한 커넥션을 작동한다.
거대한 (하이브리드 반지성주의) 카르텔이다.
대통령께서 2023.3.24. 서해수호의날 55인의 영웅들 Roll-Call 진행을 보게 되었다.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한 치유는 독이든 설탕을 먹은 그들에 대한 Roll- Call의 정신을 만나게 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6.25전쟁 193,067명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받친 우리모두의 영웅들의 이름을 한분 한분 불러주는 대한민국 롤콜 문화제다.
나는 이태원 사고가 일어나자 좌파 시체팔이를 막기위해 해밀턴 골목에서 노란리본이 아닌 (하얀나비) 문화제를 토요일마다 개최 하였다.
그리고 수도서울 유서깊고 아름다운 종로 (르네상스공원)에서 대한민국 Roll-Call문화제, 광장선언문, 바통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일년여의 (문화전쟁) 이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지키라는 나라에 부름에 응했던 젊은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워싱턴 DC 6.25참전 기념비의 비문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의 휘호다.
왜? Roll-Call의 정신과 울림이 요구되는 것일까?
왜 노란리본이 아니라 (하얀나비) 문화제가 요구되는 것일까?
젊은이들의 자유마당이 절실함을 깨달았다. 민들레영토, 아름다운가게를 뛰어넘는 대한민국 문화마당의 연결이다.
인사동, 대학로, 홍대거리, 명동, 가로수길,,,,에 자유마당을 운영함이 마땅하다.
물론 영혼의미술관 책방의 정신처럼 월등한 차림표를 마련하여야 한다.
나는 (블루보틀)의 Brand 응용을 하기로 하였다. 창업의 과정또한 바로셀로나 구단의 자본철학을 담아 자유대한민국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 된다.
자유진영의 첫 문화전쟁 전선이 구축될 것은 확실하다.
나는 전국에 200여곳의 명품 자유마당을 설계하고 있다.
로마, 파리, 런던, 오사카를 시작으로 전세계에 Network 구축하는 자유마당 프랜차이즈 프로그램을 꿈꾸고 있다. 좌파들이 꾸며내는 억지스러움, 음모, 비아냥, 자기부정에서 벗어나 전 인류와 함께 사랑받고 소통하는 자유시장 철학을 담아 내려한다.
영혼의 미술관~ 죽음의 역사에 이르는 100권 책의 선정은 나의 책방이 하려고한다.
나의 최소한 시작점이다.
너 해봤어?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안나의 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일기를 연재하며.
헌법재판소, 국회의원, 언론에 (담론)을 제시 하려고 결심했다.
어린 소녀의 일기가 철옹성 같았던 독일나치의 만행을 무너뜨리고 고발하였듯.
하이브리드 전술로 무장된 반지성주의와 부정선거 카르텔은 결코 빛의 축제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주영회장, 박정희대통령의 도전정신에서 용기를 얻어 내가 본 (붙어있는 투표지)를 국민께 알렸던 이야기를 (연재⟹ 출판)을 하며, 문화 전쟁을 선포한다.
하면된다. 할수있다의 믿음이다.
나는 인사동에서부터 자유마당을 설계하였다.
국민의 참여와 성원이 함께하여야한다.
바로셀로나 구단의 구장에 쓰여진 (THE CULB) 클럽 그 이상의 자부심이다.
자유민주주의 국민께 간절히 소망한다. 책출판을 통하여 얻은 수익금 전액은 영혼의 미술관 책방에 창업, 운영에 쓰여진다.
자유대한민국 자유를 지키는 전당으로 발전할 것을 약속드린다.
공선감tv 유투브 첫 방송 하는날 범인들을 찍다?
“여보세요. 성북구선관위죠? 참관인으로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될까요?
투표하는날 도우미 그런거 할수 있을까요?”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단칼에 “인원 다 찼어요.” 쌀쌀 맞기도 해라.
“뭐라구요? 다 찼다구요” . “아니 날자가 많이 남았는데 다 찼다구요? 인원이 많으면 추첨을 통해서 배치한다구 들었는데요?”
“아 글쎄 다 찼다니까요? 마감 되었다구요.”
화가나서 “뭐라구요? 왜 선관위들 맘대로 마감합니까?” “날자가 많이 남았고 인원이 많으면 추첨을 통해서 배치 하는걸로 아는데 왜 날자가 남았는데 마감을 하냐구요?”
(나의 열받은 입은 계속 중얼중얼 “공무원이면 다야.” “죽었어” “야멸찬 얼굴들을 방송으로 찍자” “냉정도 해라 그냥 지나칠수 없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얼굴들을 보고 싶었다.)
“내가 직접 성북구 선관위로 찾아가서 확인 하겠습니다.” 하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이대로 있을수가 없었다. 어떤 결정을 하면 그것을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분들이 계실거라 믿는다. 나도 그런 부류다
내가 무얼 하겠다고 다짐을 먹었는데, 처음부터 막히는게 용납이 안되었던 것이다.
옷을 주섬주섬 주서 입고서 성북선관위로 달려갔다.
성북구 선관위 건물 뒷 골목에 차를 주차하고 1층에서 카메라를 켰다. 공선감tv 유투브 실시간이 되는지 확인을 했다.
유투브 방송을 켜고 관공서를 들어간다고 생각하니까 긴장도 되고 실수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큰 기침을 하고 단단히 굳게 주먹을 쥐고, 저들이 왜 참관인 마감을 했는지 증거를 남겨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실시간이 되는 것을 또 확인했다. 처음으로 유투브를 하는날이라 가슴도 콩당콩당 뛰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서 성북구 선관위 유리로 된 현관문 안을 들여다보고 직원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계단쪽으로 가서 다시 한번 유투브가 되는지 촬영은 되는지 다시한번 또확인하고 성북구선관위 복도에서 공선감tv 유투브 실시간 방송을 하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참관인하고 싶어서 왔어요.” 하고 말했다
그런데 제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성북구 선관위 직원들이 다들 일제히 고개를 쳐들고 놀래서 바라보는 모습이 아프리카 몽구스 동물원 같았다. (성북선관위 직원들이 귀엽다는 것은 전혀 아님)
성북구 선관위 직원들은 아차 싶어서 마스크를 여기서 저기서 주섬 주섬 쓰는 꼴이란 웃겼다 . 그냥 하던대로 하지.
아까 그 참관하겠다고 전화한 진상?이란 얼굴로 다들 알아보는 눈치?였다.
“참관인 접수를 받아주세요. 투표 참관을 해야 된다니까요?”
“투표할 때 도우미라도 일을 하게 해주세요.”
책임자되는 여자가 다가와서 (성북구 개표참관할 때 흰옷입고 있던 그 여자 이름이 “방ㅅㄱ” 1810도 되고, 1680도 된다는 그 여자가 국민들은 저 여자를 범인들 중 한사람 이라고 부른다?) “접수는 끝났다고 몇 번을 얘기를 해야되나요?” 하면서 “다 마감이 되었어요.”
나는 “법에도? 추첨하라구 되어 있는데,,, 아 글쎄 왜 마감하냐고? 추첨을 하라니까 날자가 많이 남았는데 뭔소리여요. 빨리 접수받으세요.”
“안되요. 마감 됐다니까요.” “접수받으라구요.” 그러길을 여러번 옥신각신하다가 그 성북구선관위 직원은 안되겠다 싶은지 짜증스럽게 말하던 얼굴을 갑자기 확 겸손하게 바꾸고, 두손을 올렸다, 내렸다, 가라고, 손을 현관문쪽으로 향해 가리키며, 여러 제스추어로 휘둘러대던 손을 공손하게 모우고 일그러졌던 얼굴이 미소를 띠며 친절하게 아양을 떨면서 “종로선관위로 가시면 자리가 있을거예요.”
책상위에서 노란 스티카를 떼어낸 쪽지에 볼펜으로 종로 선관위와 전화번호를 적고 자세하게 위치를 가르쳐준다. 그쪽지를 얼마전 까지 갖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면 접수를 받아준다고 가보란다. 피곤하니까 종로선관위로 떠넘기는 상황? 이였다 .
그런데 여기서 잠깐
엄청 무서운 사실은 유투브 첫날 “범인들을” 찍었던 것이다.
그 노란 쪽지에다 종로선관위 전화번호와 위치를 자세하게 써주던 그 성북구 선관위직원들이 바로 개표현장에서 전자개표기 고장난 것을 바꾸고 잔여투표용지가 바닥에 딩굴러다니게 나둔 사람들이다.
(2020.4.15. 성북구 갑.을 개표현장을 공선감TV로 찍던날 그날 개표현장에서 개표를 지휘하던 바로 그 직원들 이었다.)
그 범인들을 유투브를 처음 시작 하던날 찍었다니까요. 와아 정말 무섭다.
공선감tv 동영상을 보면 나온다. 저 범인의 얼굴이.
2020년 4월15일 성북구 개표참관인중에 성북구선관위 직원 방*경이
(어제 전자개표기 투표지 분류기를 어제는 잘 됐는데 ?,
셋팅을 해놧는데, 1810도 되고, 1680도 된다는?) 도무지 알아 들을수 없는, 무슨 얘기하는거니? 숫자를 셋팅 해놨다는 거야? 뭐야? 저 여자가 바로 그 여자입니다 .
나에게 쪽지에다 깨알 글씨로 적어주던, 종로 선관위로 가라고 알려준 그 사람인 것이다. 그 하얀 옷 성북구선관위 직원아줌마 아찔한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방송 첫날 부정선거 범인을 촬영하다니 이게 있을수 있는 일 인가요?
평범한 일 인가요?
저 여자는 내 뇌리에서 죽을때까지 지울수 없다. 아니 없앨수가 없다.
그 옷이며, 얼굴, 목소리까지, 그의 손 제스추어,,,,그때 생각이 날때마다 소름이, 잔털이, 하나하나 솟는 것을.
저들은 지금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성북구선관위에서 오늘도 무사히?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성북구 선관위사람들? 아님 조작범들 이라해야되나?)
나는 그 적어준 쪽지를 들고 종로선관위로 갔다 .(나중에 안 일인데 4층은 서울 선거관리위원회이고, 5층이 종로구 선관위이다 그런데 4층이 종로구 선관위 인줄 알았다. 5층에 선관위가 또 있었는데,,,)
뭔 선관위가 저렇게 커? 학교 건물처럼 큰 건물앞에 운동장을 보는 순간 가슴까지 시원했다. 넓디 넓은 주차장에는 많은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서울시내 한 복판에 뻥뚤린 행복을 누리다니 여기계신분들은 좋겠다. 나도 넓은 주차장에 빨리 빠져나갈수 있는 장소를 찾아 주차를 했다.
그 넓은 운동장 주차장 한켠에 나무의자가 덩그러니 쓸쓸하게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학교 교정 향기까지 나는 그 의자가 왠지 편안했다. 그 바쁜 와중에 잠깐 평온함을 준 그 의자에 앉아서 종로선관위를 쳐들어 가야되기 때문에 단단히 무장을 해야 했다. 꼭 이곳에서 투표할 때 도우미를 해야지 결심을 했다.
유투브 실시간 촬영을 다시 셋팅을 했다. 참관인을 꼭 할수 있어야 된다. 참관인이 될 때까지 때라도 써야 된다.
크게 한숨을 고르고 입구를 찾으니 출입구가 오른쪽, 왼쪽 두 군데인데 나는 왼쪽으로 들어가는 문을 택했다.
들어가는 입구가 법원에 들어가는 문처럼 되어있는데 전자 차단이 되어서 아무나 못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신기하게도 다 열려서 차단기가 작동이 안되고 있었다. 경비도 없었다. 지키고 있는 사람도, 지나가는 사람도, 개미새끼 한 마리없는 입구를 나는 신이나서 유유히 통과를 했다.
그 차단기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체계가 잡혀있고, 일반 사무실에서 볼수 없는, 시스템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날렵하게 빨리 올라가야 되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혹시나 나의 그림자라도 비칠세라 2층으로 가볍게 후다닥 몸을 감춰 버렸다.
촬영을 하며 2층으로 첩보 작전을 하듯이 뛰어올라갔다.
2층, 3층이 텅비어있는 것 같고, 복도에는 불이 꺼져있어서 어둑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같았다.
4층으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니 4층은 사무실마다 한눈에 딱 봐도 명패가 선관위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쪽 복도에서, 저쪽 끝 복도까지 양쪽으로 사무실마다 명패가 붙어있어서 전체를 선관위에서 다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달랑달랑 붙어있는 명패에는 홍보계, 지도계, 선거1과, 선거2과, 회의실, 무슨실,,, 아무튼 양쪽으로 10개 이상되는 사무실이 쭉 나열이 되어 있었고 입구 현관문들은 하나같이 열려있었다.
왼쪽 첫 번째 사무실부터 문앞에서 사무실을 향해 큰 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했다. “참관인하고 싶은데 접수를 받는데가 어디인가요?”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다들 놀래서 (아프리카 몽구스들)을 연상케하는 일들이 또 벌어졌다.
일제히 나의 목소리를 듣자 마자, 한쪽으로 목을 쭉 빼고 고개들을 쳐들고 보다가 불청객이란것을 순간 확인을 했는지? 나를 보고 놀란 토끼눈들을 하고 바라보다가 저들도 쓸데없는 사람한테 정신이 팔리는게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때부터 아차하고 마스크를 생각했는지 그 얼굴들이 또 여기서도 마찬가지 마스크를 찾아서 주섬주섬 삐딱하게 입에 걸치고는 저거 누구야?
빙따개덜? 같았다. 그냥 편하게 살라구 마스크 안쓰면 어때 지네끼리 있을땐 어차피 마스크 안쓰면서 칸막이로 막은? 다음칸 사무실도 난리 났다.
한창 우한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라구 난리를 치던 때였다. 아마 4월초 였던 것 같다.
나는 마스크를 안쓰고 다녔다.
저거 누구야?하는 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구 손을 막 저어가면서, 각 사무실마다, 다른 사무실로 가라고 손으로 내젖고 들어오지 말라고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양쪽 사무실마다 “에잇 누구냐구?” 난리가 나서 한바탕 소란 스러웠다.
“저 아줌마? 누구냐구? 이런 아줌마가,,”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 방마다 다물어 보고 다녀 봤는데 정말 진지하게 물어봤다.“ 저 선거하는날, 투표하는날, 사무원하게 해달고요? 어디에서 접수를 받나요?” 한 사람도 자세하게 안내를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를 치지말고, “무슨일 입니까? 무얼 도와드릴까요?”하고,
안내를 하면 되는데,) 서울선관위 직원들이 하나같이 한쪽 손은 흔들면서 들어오지말라고 하고 한쪽 손으로는 마스크를 찾아쓰느라 바쁘다. 선관위 직원들한테 니내들이야말로 왜 들 그러냐고 내가 묻고 싶었다.
결국엔 끝까지 양쪽 사무실을 다 돌고나서야 선거1과인지 2과인지 방에 들어가서 안내를 받았는데 설명을 듣고 집으로 참관인 되었는지 우편물로 보내준다구 하여서 일단락 궁금한 것은 조금 풀리긴 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참관인 신청을 받아주지 않아서,,, 걱정이 이만 저만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며칠뒤에 참관인 신청이 안되었다는 우편물을 받았다. 서울선관위는 선거를 할때마다 후보자등록을 하는곳이다.
나는 1층으로 내려와서 운동장 한켠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촬영된 것을 확인하고, 유투브를 끄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뿔싸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저녁에 공선감tv 유투브를 확인하다가 좋아요가 아닌 구독자도 없는데 싫어요. 무려 “47개가”? 와우 내 눈을 의심했다. 싫어요? 유투브 시작도 안했는데 첫날?
왜? 무슨일로? 나에게 이런일이 왜 일어났을까?. 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어.
“엄지손가락이 거꾸로” 되어 있었다. 싫다고 뭐가?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들었다. 서울선관위????
오후에 서울선관위와, 성북구선관위에서 있었던일이 생각이 나면서
“온몸이 싸하게 소름이 돋았다.”
도들 도들 살들이 일어났다. 솜털도 빠짝세워지고,,무서웠다.
“서울선관위”는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공선감tv 유투브라고 알려준것도 아니고, 전화만 받는 폰 따로, 촬영만 하는 폰 따로 쓰기 때문에 폰번호도?, 유투브 이름도 모르는데?,
싫어요가 무려 47개라고? 좋아요 47개 받기도 얼마나 힘이 드는데 싫어요를 47개
선관위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 모두가 눌러댄거다.
공선감tv 첫 방송에 별을 47개 받은 사람입니다.
종로선관위가 새삼 살벌하게 무섭운 곳이구나.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어떻게 구독자 도 전혀 아예 없는, 그날 처음 공선감TV 유투브를 처음 시작한 그날에
씁쓸했다. 기분이 싸아하게 묘한 이상한 기분은 뭐지?
어두운 밤 벌판에 혼자 서있는 나의 모습. 등줄기에서 땀이 났다.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용감한지 무식해서 용감한건가 ?
정말로 ?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유투브를 시작하게 되었고.
큰 상장을 받은 날을 잊을수가 없다. 싫어요 47개??????
아무튼 선관위는 무섭고 심상챦은 대상임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5. 드디어 415 개표참관인 신청을 하다.
그렇게 또 몇일이 흘러갔다. 계속 중앙선관위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
415총선이 있기전에 과천 중앙선관위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토요일마다 하고 과천시내까지 차량집회도 했다.
과천 중앙선관위에 면담을 신청하며, 부정선거의 대한 피켓과 함께 국민들의 항의가 매일 있었다.
그리고 총선 후보자 등록과, 선거에 대한 면담신청 접수를 하느라 중앙선관위 앞 정문에 청원 경비실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대고 큰소리가 오고 가며 말다툼이 계속있었다. 상담? 면담신청을 해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았기 때문에, 시끄러웠다.
한번 선거과 직원들과 얘기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힘들었다.
직원들의 얼굴이 궁금했다.
머리에 뿔이라도 달렸나? 궁금했다. 어떻게 생긴 놈들인데 면담을 거부하는거야? 직원들을 볼려면 상담신청을 하고 대기실에서 1시간을 기다려도 면담신청 무산이 되었다. 어쩌다가 끝까지 면담해달라고 싸워서 선거과 선관위 직원이 내려와서 무슨일인지?
질문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상부에 보고를 하고, 누가 와서 상담을 할건지? 아무튼 선관위는 면담실까지 가는게 하늘에 상이라도 타는 것처럼 까다롭고 하루종일 걸렸다. 경비실 밖에서 서성대며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으리님들 얼굴좀 보자
그날도 과천 중앙선관위 집회에 참석하러 전철을 타고 가는 중인데, 여의도 기독당에서 개표참관인을 접수하라는 주**대표의 문자를 받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와아 신난다 아직 기회가 있었구나!!!
나는 개표참관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고 뛰어다녔다.
참관인 접수를 할수있는곳이면 연락처를 남기고 다녔다. 여기 저기 해놓고 하루하루가 가슴이 조였다. 왜 나는 투.개표 참관인에 언제부터 목숨을 걸었는지 참관인이 뭔지도 확실히 모르면서,,,
문자를 받고 하루종일 시간이 안가는지 마음만 바빴다.
와아 !!! 지금도 참관인신청을 할 수가 있다고? 오 예예예
앗싸 속으로 외치면서 집회가 언제나 끝날까?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날따라 집회가 정말 늦게 끝났다.
두근두근하는 맘으로 전철을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차가 빨리 갔으면 좋으련만 공무원들은 6시 퇴근이니까 그전에 도착이 되어야 될 텐데 불야불야 갔는데 5시 50분 예스 .그때까지만 해도 관공서에서만 공무원들이 투.개표참관을 접수하는 줄만 알았다.
접수하는 사무실이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찾아다니며 드디어 접수하는 여의도 당 사무실도착 9층에 사무실에 도착, “참관인 접수하러 왔어요” 하니까 이쁘신 분이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서 서류뭉치, 아니 옛날 전화번호 책 같은 두께의 접수대장을 갖고와서 “여기에다 접수하세요.
” 엥 “이게 다 접수대장? 이라구요” 말문이 막혔다.
빈 접수대장을 보고는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투.개표 참관인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는데,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심해서 걱정이 되어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이거 무슨일이지? 전국이 참관인 신청자가 아예 없었다. 전 지역구마다 참관인 신청인 란이 공으로 비워있는 상태라니 큰일났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 될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어쩜 이런일이 생기다니 잠시 멍청하게 서 있다가 나는 바로 전화 번호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사람들한테 무작위로 사방에다 전화를 해댔다.
“참관인 접수하세여” 교회 아는 집사님들께 다 전화를 눌러대고 무조건
“참관인 신청하세요”
“대표님 참관인 접수하세요.” “전도사님 참관인 신청하세요.”
s교회에도 전화를 돌렸다.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참관인 자리가 전국에 다 비워 있어요.” 참관인 신청해야 됩니다.
몇시간을 그 자리에 앉아서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
은평제일교회에도 참관인 접수대장을? 보내고 정신없이 몇시간을 알렸을까? s교회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위집사님 제정신이예요? 아니 유세현장에 가야 되는 분들한테 전화해서 참관인하라고 하면 어떻합니까?”
“목사님 지금 참관인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고요 참관신청만 하고 가면 개표할 때 참관하는거 이기 때문에 겹치지 않습니다.”
“전국에 참관인 신청을 다 해야됩니다. 이런 좋은기회를 왜 안합니까?”
목사님께서 버럭 버럭 화를 내면서 다시는 그일로 “절대 전화하지 마세요. 다시는 이런 전화 하지마세요.....” “어~ 이건 가야되는데요 내목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무슨일이실까? 잠깐 와서 접수하고 유세현장으로 가라고 하시면 될텐요.” “글세 더 이상 이런 전화하시지 마세요....” 속으로는 어구 답답해 팔짝 팔짝 뛰었다.
“아니 목사님 참관신청을 할수있게 해주세요. 신청만 하고 유세현장에 합류하면 되는데요.”
사실 s교회에서는 253지역 전국선거구 조직을 짜낳다고 자랑을 하셨고 설교하실때도 여러번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전국이 비어 있을수 있을까?
이해가 안되었다.
내눈으로 확인을 해봐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나는 시간을 내서 잠실에 있는 S교회 전국선관위 253지역 감시단 사무실 오피스텔을 애국자님과 다녀왔다.
답답함을 풀어주는 시원한 대답 한마디도, 253감시단 노하우도, 단 하나도 듣지를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아무튼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의도 기독당사 사무실에서 참관인을 접수 하시는분은 정말 단아하게 예쁘신분이었다. 제가 참관인 접수를 해놓고 매일? 전화를 해댔다.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접수가 안되는것보다 계속확인을 해야만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만도 아니고,,,,
“접수 됐나요?, 확실히 됐나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또 다시 부탁드립니다” 확인됐다는 말씀을 하셔도 매일 확인했다. 그렇게 나는 확실하게 “성북구 개표 참관인”을 하게 된것이었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개표참관인이 되었다. 나는 그때 왜 그렇게 그일에 “개표참관인”에 목을 맸는지? 이해가 안될정도로 참관을 안하면 큰일이라도 날것 같은 생각으로 전화를 걸어서 또 확인, 또 확인을 했다.
그런데도 그 분은 단 한번도 화를 내시지를 안으셨다.
“신기할 정도로” 싫다는 표현도 없었고, 화내는 일은 더더욱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 맞다.!! 그분이 예수님 이셨군요. ?
맞다 그분이 하나님 이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코 끝이 시끈해온다. 감사하다는 전화를 드려야 되겠다. 고마우신분 지금도 어디선가 애국일을 하고 계시겠지?
그런데 왜 나는 언제 부턴가 개표 참관에 왜 이렇게 집요했나 “집착” 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언가에 “이끌림”에 개표참관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접수를 받아 달라고 여기 저기를 뛰어다녔던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길을 “이끌림”으로 했던 것이 맞는 표현이다.
415총선 장위동 사전투표소를 찍다(2020년 4월10일 새벽 06시~저녁7시30분)
중앙선관위 집회 현장에서 부정선거에 대해서 연사들이 말을 많이 하셨지만 참관인은 정말 어디를 촬영을 해야 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일단 나는 모를때는 용감하게 일을 벌여놓고 밤새 수습하는 경우가 있었다. 사전투표소도 무얼해야지? 어딜 찍어야지? 20대부터 촬영을 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중요한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며 찍는 버릇이 있었다.
사전투표율이 높이 나오는데 정말 그런지? 투표하는 현장에서 촬영을 해나야 되겠다는 생각에 4월 10일 사전투표소 장소를 촬영하기 좋은 위치를 알아두기 위해 하루전날 사전투표소를 미리 둘러보았다.
큰 행사를 하다보면 미리 리허설 장소를 둘러보고 메인 카메라는 어디에 배치를 해야되는지 좌. 우 카메라위치, 또 전체 훌씬 카메라 위치, 객석 카메라 위치,,,등등 어느 위치에 카메라를 배치를 해야되는지 리허설을 현장 촬영을 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있었다.
새벽 6시쯤 서둘러서 동네 장위동 사전투표소로 향했다.
2020년 4월10일 성북구 장위동 사전투표소 장소는 도로변에 있는 섬유센타?에서 새벽6시부터 시작 되었다. 투표소 정면을 봐라보고 카메라 셋팅을 하였다. 다행히 주차장이었기 때문에 자동차 사이로 촬영을 하게 되어서 투표소에서 볼 때 바로 눈에 띄지를 않았다.
사전투표소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주차장을 지나 건물에 있는 몇계단? 올라가서 책상에서 안내를 받고 좌측 투표소로 들어가게 되어있어서 밖에서 촬영하기에는 좋은 장소였다.
투표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나, 투표를 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내가 촬영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지나 다녔다.
몇시간이 흘렀을까? 입도 마르고, 배에서는 꼬르륵
번호를 눌러댔다.
“혼자서 촬영을 하는데 배는 고파오고, 화장실도 가야되고요” “잠깐만 오셔서 교대를 해주세요.”
도와달라고, 김밥좀 사오라고, 전화를 해도, 부탁을 드려도, 아무도 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사전투표소를 촬영한다고 하니까 전화를 받는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사전투표소는 왜 찍고 있어 이상한 사람이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요.
s교회 장위동 사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다.
역시 “사전투표소를 왜 찍고있느냐”고 이해를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전투표소를 왜 찍어야 되는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사전투표소를 왜 찍어야 되는지를 모르다니? 나는 외톨이로, 외로운 싸움을 싸우게 되었다.
다행히 S교회에 컴퓨터를 잘하는, 가끔 도움을 준 어린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김밥을 사서 같이 나눠먹고 사전투표소를 계속촬영을 할 수가 있었다.
(똑똑한 친구 잘있지? 이 나라를 잘 부탁해 !!)
허기를 채우고 저녁 투표함이 나올때까지 14시간정도 촬영을 했다. 그런데 힘들지가 않았다. 촬영이 체질인가?
오후가 되니까 성북구 선관위에서 투표소 들어가는 사람들 촬영을 하고 있다고 신고를 받고? 왜 촬영을 하느냐고 제제를 가하기 시작 했다.
그래서 촬영 장소를 쫒겨다니며,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 촬영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사전투표소에서 참관인들 같았는데. 사전투표소에서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곤 했다.
오후 3시쯤 이후에는 담배를 피우러 나와서 아예 들어가고 싶지 않은지 담배를 피우며 그 주위를 어슬렁 대며 빙글 빙글 2~30분을 맴돌고는 한참만에야 사전투표장소로 들어가곤 했다.
어쩔수 없이 참관을 하러 왔는지? 아님 투표 사무원 들인지는 알수없었다.
투표가 6시에 끝나고, 경찰들은 두사람이 20분정도 미리 와 있었고, 투표함을 실고갈 승합차도 1대 대기중 이었다.
그리고 투표소안에서는 마지막 정리를 30분이상을 지체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표함이 사전투표소 문을 열고 투표함을 양쪽에서 들고 나오고 있었다. 나는 나오는 투표함을 가까이서 촬영을 하면서 투표함을 따라 붙었다. 투표함에 붙어있는 봉인지도 촬영을 하고 투표소에서 나온 사람들과, 경찰들이 촬영을 못하게 막았다. 투표함을 실은 차가 큰 도로를 따라 달릴 때 까지 뒤에서 촬영 해 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다른 지역에 있는 선관위를 밤낮으로 24시간을 지켰다. 서울지역 선관위마다 이런, 저런 이상함을 포착하고, 어준이가 선관위에 나타났다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몸이 하나라 못가본게 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