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후 부정선거 현장 목격

  • 등록 2025.01.24 22: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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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어있는 투표지가 분명 부정선거

 

위명순 단장  | 과천 중앙선관위앞에서 7개 텐트집회 시작

개표후 부정선거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갔다. 머릿속에는 붙어있는 투표지가 분명 부정선거 맞는데,,, 나는 답답하고 분했다. 힘들게 촬영한 그 영상들을 쓸수가 없다고하고,,,힘들게 구한 관외봉투도 그 여자 목사 한테주고 이제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과천에 있는 중앙선관위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겠다는 마음은 바로 실행에 옮겼다.


중앙선관위 앞에 집회신고를 2틀전에 하고 4월21일 과천 중앙선관위앞에서 텐트집회를 시작했다.
두사람, 세사람, 다섯사람, 사람도 늘어나고 텐트도 늘어났다.
과천 중앙선관위 정문을 바라보고 중앙선관위 목을 죄야 된다는 생각으로 정문 양쪽으로 작은 텐트를 설치를 했다. (대형 텐트는 우리가 밥먹고, 회의하는 장소로 쓰고 과천선관위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장소 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후에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비도 피하고 밥이라도 편안히 먹으라고 대형 천막을 사와서 셋팅을 해주시고 가셨다.


중앙선관위 정문앞 차도 건너편에는 다섯 개의 텐트를 쳤다. 처음에는 모두 8개의 텐트를 쳤다. 그후에 대형 천막 텐트가 더 늘어났다.


과천중앙선관위는 4월인데도 산밑에 있어서 매우 추웠다. 선관위 건물은 비스듬한 산을 깍아서 지은 건물이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산을 등지고 있어서 해가 산에 가려서 빨리 사라졌다. 그러니까 선관위 정면을 바라보고 우측에 해가 나타나서 비추고는 왼쪽으로 해가 진다.
4월 날씨 치고는 너무나 춥고 냉기가 빨리 돌았다. 우리가 집회를 여러곳을 하다보면 유난히 추운곳이 있는데서 초동에 대법원 정문 자리도 싸늘하게 춥고, 종로에도 그렇게 추운자리가 있다. 왜 고위 공무원들이 있는 자리는 유난히 더 추운지 생각을 한번 해 보게 되었다. 감옥이나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이거나, 한이 맺힌? 장소인 것 같았다.

 

내가 머물고있는 작은 탠트 안에 바닥은 고무매트를 몇 개를 겹쳐서 깔고, 침낭을 두 개 겹으로 깔고, 그 위에 침낭을 덥어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냉기에 몸을 떨었다.
핫팩을 목 앞쪽, 뒤쪽에, 등에, 배에 붙이고,,, 잤는데도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등짝이 시려서 떨려왔다. 보도블록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잡을 길이 없었다.
집회를 처음 시작했을때는 핫팩이 없어서 아껴써야만 했다. 그때는 핫팩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편의점에서 살수 없었다. 과천시내와 15분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계속되는 추위에 너무너무 추운밤을 보냈다.


아침은 오뚜기밥, 라면, 김치(처음에는 김치도 없었다.)로 떼우고 과천 중앙선관위 앞은 출근하는 직원들을 500명을 향해 매일 아침 8시20분 부터 부정선거 밝히라고 엠프켜고 마이크로 외친다.
공선감tv로 촬영을 하고 처음에 나는 마이크를 잡지 않고 그저 촬영만했다.
엘피엔 기자로 일을 하기 때문에 중립을지키고, 말을 잘못하면 기자증 날아간다고 (?) 엄포를 놔서, 아무튼 말을 아꼈다. 집회하다가 지치면 음악틀고, 나는 유투브로 촬영하면서 오전 집회끝나면 밥을 바로 먹을수 있게 스스로 밥 당번을 자처했다.
집회 촬영, 밥 준비를 맡았다.


식수는 유치원옆에 식물원 화장실에서 통이란 통은 다 물을 받아 날랐다.
어느날부터 식물원을 차단을 시켰다. 물을 사서 먹어야 되는 상황이었다. 아까와 죽는줄 알았다. 밥은 주로 햇반을 먹고. 커피 물 끊이는 누런 주전자에 물을 삼분의 이 정도 넣고 끊이다가 김이 올라오면 햇반을 끊는 물속에 풍덩 풍덩집어넣고, 몇분을 더 끊인다 밥이 다 익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햇반 뎁힌 물을 붓고 주전자에 라면을 끊인다.
그렇게 세끼 식사를 해결했다. 비닐 독을 먹고 있었다.
라면을 끊이는 동안에 햇반은 다식어가고. 햇반을 계속 먹다보니 햇반에서 나오는 고유의 냄새가 방부제? 냄새라고 해야되나 아무튼 유달리 어떤회사 제품은 햇반 냄새가 유독 심했다. 그리고 라면 특유의 밀가루 냄새가 나를 힘들게 했다.


처음 얼마동안은 라면만 먹어도 아침이 꿀맛이었다. 맛있게 잘먹던 햇반, 라면이 보기도 싫었다. 그렇게 하루를 햇반으로 떼우고 나면 몸이 조금 풀리고 따듯해져 왔다.
에너지도 조금 생겼다.

 

사실 내가 싫어하는 것 중에 라면인데, 일년에 한번이나 먹을까?하는 그런 라면을 아침, 점심, 저녁, 시도 때도 없이 먹다니 라면밖에 먹을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날은 과천중앙선관위에 위문을 오시는 분들 손에는 짜기라도 하셨는지, 검정비닐봉지 봉지마다 빵을,, 소보로, 단팥빵, 크림빵,, 이름모를 빵이 넘쳐나고 남아돌아서 오시는 분들에게 빵을 다시 돌려 보내드릴때도 있었고, 또 어느날은 김밥을 35줄 사오시는분 그날은 김밥이 넘쳐나게 많아서 그 다음날 아침까지 김밥으로 떼우고,, 빵만 잔뜩 쌓일때가있고, 김밥만 남아 돌때가 있고,, 내가 싫어하는 빵과 라면을 이렇게 매일 먹다간 영양실조로 죽을 것 같았다.


라면도 하루 이틀이지, 으으으 진짜, 어쩔수없이 먹어야 되는 라면
어찌 해야 되나 걱정이,,,
그리고 밤이 되는게 너무 싫었다. 과천 선관위가 퇴근하면 더 온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냉냉한 기운이 더 심했다. 낮과 밤 기온차이가 심했다.
자고나면 등짝이 시려서 짜증스러웠다.


나는 꼬질 꼬질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씻지를 못한다는건 정말 죽을 맛이다.
집 생각이 절로 났다. 집 나가면 개 고생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렇게 따뜻한 물이, 뜨거운 물이, 아무 때나 샤워할 수 있는 집이 고맙고 감사하고, 그리울줄이야 ,,

 

거기다가 화장실도 문제였다. 너무 멀어서 밤에는 무섭고 무서웠다.
과천선관위를 바라보고 좌측으로 쭉 도로를 따라서 직진하다보면 막다른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양쪽으로 개천이 흐른다. 그 개천을 건널수 있게 세맨으로 뚝을 만들어 놓았다.

 

이쪽 뚝에서 저쪽 뚝으로 넘어갈려면 산밑 개천쪽으로 몇 개단 내려가서 세맨 다리를 건너서 다시 세멘계단을 올라가서 산밑에 울툴 불툴한 길을 따라서 우측으로 가면 등산객용? 남녀 칸을 막아놓은 간이 화장실을 써야만 되었다. 너무 더러워서 다시는 죽어도 가기 싫은 그런 화장실이었다.
그리고 목욕탕을 갈려면 20분 정도 걸어서 마을로 내려가서 목욕탕을 가야되고, 씻지못하는건 최악이고,,, 이렇게 악 조건 일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괴로운 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악과의 전쟁은 시작 되었고 그렇다고 멈출수는 없는 상황,, 얼굴은 시커멓게 핏기가 없는 얼굴이 꼬지리가 되어가다니,,,

 

그리고, 이런 저런일로 집에도 다녀와야되고, 잠깐 텐트를 비우면 비운틈을 타서 시청에서는 현수막을 끈어가고 자리를 비울수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과천 경찰서에 항의를 하니 집회신고를 해도 집회장소를 비우고 자리를 뜨면 또 현수막을 떼어 갈 수밖에 없다는 반 협박식의 전화를 통화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어쩌랴 우리의 기세를 어떻게든 시끄러움을 없애려고 누루는 힘이 보이지 않게 작동을 하고 있었고, 감시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럼요. 그럼요. 하며 음료를 손에 쥐어주는 과천 경찰서, 그리고 경찰서는 선관위에서 헌법기관이라고 안보이게 누르고, 눈에는 안보이는 먹이 사슬이라고 할까? 뭐 그런것들이 우리 뒤를 보고 있었다.
그 뒤로 집회장소를 꼼짝없이 24시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할수없이 돌아가면서 밖에 일을 보게 되었다.
과천중앙선관위 집회는 매일 이렇게 반복을 하게 되었다.
* 아침8시~부정선거 노래를 시작으로 집회시작, (중앙선관위 출근09시~)
* 점심 11시20분정도 부정선거 노래~,(점심시간 12시~)
* 저녁5시40분부터 집회시작, (퇴근시간 저녁6시)
* 토요일 오후2시 집회


모든 집회는 중앙선관위 출근, 점심, 퇴근시간에 맞추어 진행을 하였다.
이러니 나갔다가도 일을 다 못보고 뛰어와야 했다.
그리고 간간이 애국자분들이 오시면 너무나 반가왔다.
마실 차라도 챙겨드리고, 또 토요일마다 집회는 외부에 계신분들이 함께 참석하면서 시작했다. 토요일 집회가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차량집회도 했다 .


중앙선관위에서 집회를 하고 중앙선관위앞에서 차량집회를 시작해서 과천정부청사역으로 이동하면서 다음 과천시내 삼거리까지 턴해서 과천 정부청사역에서 집회를 마쳤다.
일반 시민들이 중앙선관위까지 온다는게 보통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아니면 올수 없는 거리다. 과천 정부청사역에서 하차해서 8번 출구로 나와서 1300km? 되는 거리이고, 역에서부터 걸어서 오기가 힘들다.


중간에 표지판도 없고 도로에는 차들도 뜸하고 선관위가 어디있냐고 물어볼대가 전혀 없다. 중앙선관위는 이렇게 오면 된다.
(정부청사 8번출구에서 직진, 좌회전, 우회전, 직진, 우회전, 그리고 100m 하하하하하하)
중앙선관위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따라가도 찾기가 아주 힘든 곳이. 과천 중앙선관위다.

 

과천 중앙선관위 앞에 도로를 건너서 화단이 있고, 화단앞에는 낭떠러지처럼 3층정도되는 낮은곳에 세멘트로 된 커다란 운동장이 있는데 그곳은 헬기장이다.
그곳에 있을 때 헬기가 뜨고 앉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헬기가 그 운동장에 내려앉을때환자를 싣은 침대를 내려놓고가면 119차가 와서 환자를 싣고가거나 119차에 환자를 싣고오면 헬기에 태워서 가곤 하는 장소이다.

 


애국자들은 운동삼아 걸어서 오신다고 하는데, 도착하면 물이라도 따뜻한 커피라도 잘 대접하고픈 마음에 컵라면, 비빔국수, 무엇이든 재료가 있으면 해드리고 빈대떡도 부치고 모든 재료들을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드렸다.
없는 재료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하는 나를 보고 고마워들 하셨다.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귀히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더 관심도 받고 더 많이 오시게 되는 계기가 된것같았다.


하루 하루가 바쁘게 후딱 지나갔다.
ㅇ집사, ㄱ집사, 위집사는 삼총사처럼 움직였다. 마음들도 잘 맞 았고, 그런데 어느날 외부에 일을 보러 나간 ㅇ집사님이 전화가 왔다.
“집사님 빨리, 빨리 삼거리로 오세요” 그 목소리는 많이 놀라고, 급하고, 무거웠다. “ 아는 얼굴들인데 사고난것같다고 ?” 그러고 보니 한 20분정도 되었나? 엠블런스 소리가 계속들렸는데,,
사고현장은 말하고 싶지않아서 여기서 그만 써야겠다.

 

사실 그 전날 밤 늦게 어떤 새로운 얼굴과 나타난 사람들이 잡음을 냈고, ㅇ집사님과,
ㄱ집사가 집에 일보러가고 그 사고 전날 사람들에게 sos를 쳤었다. 급하게 아침에 달려오신분이 ㅇ**전도사님과 또 어려울때마다 나타나시는 애국자님께서 달려와주셨고, 또 얼마 있다가 한분이 또 오셨다.

 

고맙고 감사한 아침인데 계속 사람들을 불편하게하고, 갈라치는 소리, 찢어지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웠다. 사건은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날 양주에서 교회 사모님 두분이 맛있는 간식거리를 많이 준비해 오셔서 밤에 새로오신분들과 감사기도를 하고 먹자고 “ㅇ전도사님께 감사기도를 해주세요” 하고 내가 전도사님께 부탁을 드렸는데,
새로운 얼굴과, 그 저쪽편에 있던 여자는 너무 불편의 달인? 이신 사람들이 “뭔 감사기도” “그냥먹자”,고 계속 우기고 있었다.


나는 “안됩니다. 시간걸리는 거 아니니까 감사기도하고 먹읍시다”
감사기도를 드리고 먹자하는데 기도할려고 하면 그냥 먹자고 쌩 떼를 부리고, 참 이사람들 하는 행동이 이해가 안갔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엔 감사기도를 하고 다과를 먹게 되었다. 때와 장소도 모르고 그저 불편하게 만드는게 평소의 모습인것처럼 갈라치기, 싸나운 좌파행동들?을 서슴없이하고 오히려 그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했다.


가치관이 다른 저쪽에 있던사람?이라 불안은 했지만, 표출을 안하고 그동안 감추고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삐뚤어져 있는 행동은 심각했다.
불편하고, 예민해져서 아침에 처음으로 그곳을 방문하신 분들을 힘들게했다. 새로 오신분들을 갈라치기하며, 잡음을 내고 그 일이 일단락 매듭이 지는 것 같으면 또 넌스시 이상한 질문을 해서 불편한 자리를 만들어버리는, 그리고 질문에는 눈에 안보이는 가시가, 갈코리가 드러났다.


결국엔 애국자님이 벌떡 일어나 건너편 텐트로 가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 저런 사람들하고 있으면 안되요.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어려운 길인데 오는 사람들을 막아버리는 저런 사람들하고는 잠시도 더 이상은 못있겠어요.”
“긴급하게 와달라고 전화로 부탁을 해서 새벽부터 먼길을 왔는데”


“에이! 난 잠깐이라도 같이 있을수가 없어요” 화가 나셔서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나셨다.
“난 더 이상 못 있을랍니다.” 에이 !
“사람이 마음이 편해야지 어찌 저리도 사나운지, 뭔 여자가 저리 싸나워”하고, 버럭화를 내시고 가버리셨다.


전도사님도 가신다고 하기에 붙잡고 사정얘기를 했다. 그후에 한분이 또 오셔서 감사했다. 이럴땐 얼굴안 보는게 상책이다 싶었다.


불편하기도 하고, 내가 쓰는 작은텐트에 세 명이 같이 쪼르르 텐트속에 업드려서 우리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전도사님과 애국자분과 저는 분위기 전환이라도 해야되겠다 싶어 폰으로 유투브 검색을 했다.
유투브를 열어서 확인하면서 외부에 상황을 검색을 하는중에
“우리에게 좋은 희소식이 없을까?” “여기 봐봐요”


“앗싸 민의원님이 증거보존 신청을 했데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다함께 “와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싸 우우우우우“ 하고 소리를 소리를 쳤는데,,,옆 텐트에서 갑자기
”증거 보존 신청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찢어지는, 앙칼지고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싸움이라도 걸겠다는 심사같았다. 그 싸나운 여자는 우리얘기를 여태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목소리를 좌파?라고 한다.)
우리에게 찬물을 확 끼얹는 소리를 해 댔다.


3명이 눈들이 똥그랗게 놀라서,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마음이 서로가 통했다. 숨을 죽이고 저런 여자와 얘기해야 도움이 안될것이 분명하다는 뜻으로 눈으로 말을 주고 받고는 대꾸를 안하고 무시했다.


어쩌다 저런 여자가 이곳에,,,,하고 슬픈 얼굴들을 하고 말았다. 같이 있어서는 안될 그런? (그렇지 않아도 함께있는게 너무 불편해서 평소에 꼭 있어야 될사람들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중 이었다) 옆 텐트에서 그 여자는 그 동안 우리 얘기를 엿듣고 있으면서 우리가 혹시 본인욕을 하면 공격할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않은데, 왜 가면을 쓰고 여기에서 있는것일까? 돌변적인 언어 행동들은 문제를 만들어댔다. 그런데 저쪽에 세 사람중에 밤에 왔던 남자는 언제갔는지 안보였다.

 

지금 싸움이라도 해서 쫒아낼까? 이 생각 저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찼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 시동거는 소리가 들리고, 자동차가 조용히 스르르 이동을 하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 운전하는 남자에게 놀래서 ”어디가냐고요“ 묻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급한일이 생겨서 어머니한테 가봐야 됩니다“ 말을 주고 받는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그럼 나도 가야된다“고 ”같이가자“고 쫄랐다. 남자가 ”혼자 가야된다“고 하니까 그 싸나운 여자가 자기를 데려가라고 다급해진 목소리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옆 텐트에 있던 그 여자는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는 ”혼자 가겠다“ ”알아서 혼자 가라“하고, 여자는 같이 가야한다고 악을 바락바락쓰고 있는 그 광경을 차마 우리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우리를 아프게 했기 때문에 하이톤 목소리가 찢어지는, 갈라지는 소리로, 텐트 밖에서는 박살이 나는 소리로, 한동안 난리를 쳤다. 그러더니 쫌 있다가 자동차 소리가 부우웅 쎄에쌩~~~쎄에엥~하고 무섭게 악쎌을 발아대며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다시한번 눈을 크게 떴다 뭔일이지?
스포츠 카 경기장도 아닌데, 이 짤은 거리에서 뭔 차를 저리 달릴까? 바로 좌회전을 해야 되는데,,, 쎄에 쌩하는 여러번 악쎌을 무섭게 발아대는 소리는 그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심정을 악쎄레다는 밝는 소리가 말을 하고 있었다?
도로는 차가 그렇게 무섭게 달릴수 없는 길이었는데. 쌩하고 달려가는 차소리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고, 불편한 시간은 그렇게, 차소리, 엔진소리, 하이톤의 불편한 싸우는 소리를 모두 싫고 갔는지 그 후론 한 동안 조용했다. 휴우


이제 봄날의 평온이 찾아왔다.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싸우던 사람들의 차가 떠나고, 아침에 달려오신 그 두분은 이곳에서 하루를 버티는게 얼마나 힘든지 인식을 많아 하신 것 같았다.
이제 조금 안심이 되셨는지 얼굴이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편안한 미소로 저에게 ”이제 좀 쉬세요.“ 하고 ”저희들은 일어나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일어나셨다.
나는 그분들을 잡을수가 없었다. (고마운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20, 30분? 앰블런스 엥엥대는 소리가 계속나고 있었다.
나는 계속 텐트속에서 유투브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집에 다녀오겠다고 가신 ㅇ집사님이 전화가 왔다.


내가 아는 얼굴인 것 같은데 사고가 난것같다고 삼거리로 빨리오라고,,,,
사고현장에는 검정 자동차가 좌회전을 해야되는 곳에서 직진으로 100m를 이빠이 악셀을 밟아서 쌩하고 그대로 직진으로 붕 날아서 개천 건너편 저쪽벽에 세멘으로 높게 쳐진 벽에 쳐박혀서 까꾸로 세워져 있었고, 자동차가 박힌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지나가는 남자들 들이 하는얘기가 ”아고 여자가 얼마나 성질나게 했으면 차를 저렇게 갔다 박아버렸을까? 쯔쯔쯔 “. 사람들의 얘기이다. 나는 너무 놀래고 무섭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남자들은 자동차가 처박힌 상황만 보고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안보고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전혀 눈치를, 상황전개를 모른다.
남자들은 신기하게도 정확히? 판단을 하는데,,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아는것일까? 뇌 구조가 틀리나? 아님 무언가 한 개의 뇌 구조가 더 있는것일까? 이해구조가 있나?
그런데 여자들은 왜 모를까?

 


과천중앙선관위 토요일마다 집회

 

토요일마다 집회를 하고 차량시위도 했다. 컵라면과 물을 많이 비축을 해뒀다. 그날도 자주하는 빈데떡을 빼놓을수가 없었다.


집회를 하면 도움의 손길도 많이 필요했다.
자주오시는 젊은 애국자님들이 집회에 참석하실 때마다 ”애국자님 진행요원을 맡아주세요.
애국자님께서 맘에 드시는 분 5섯분께 진행요원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셔서 그일을 함께해 주세요“ 하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또 다른 분께도 ”안전요원을 맡아서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진행요원에게 부탁드렸던 처럼 그리고 위치와 어디를, 어떻게, 무엇을,,, 지켜야 되는지도 알려드렸다. 그 뒤부터 그분들은 과천중앙선관위 집회가 있는날에는 진행요원으로, 안전요원으로 말씀을 안드려도 알아서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감있게 도와주시고 가 셨다. (감사합니다.)

집회를 하며 유투브방송을 하고 밤에는 텐트속에서 카메라 셋팅을 해놓고 촬영을 하고,과천 중앙선관위 정문앞은 매일 24시간 촬영을 했다.


선관위에서 구글에 공선감tv를 신고를 한 것 같았다. 갑자기 유투브가 작동이 되지를 않고, 처음보는 화면 고정으로, 헉 헉 이건 뭐지? 유투브 실시간 작동이 안되고 있었다.아 아 아 그거? 그게 이거이구나? 이해가 되는 순간 숨이 머졌다.
유투브 차단이다. 설마 내가 차단?
저녁때 선관위 앞에 차단기 앞에 높으신 양반들 퇴근할때 차에다가 부정선거 밝히라고 격렬한 몸싸움이, 시위가 있었다. 선관위가 과천경찰서에 신고하고 경찰들이 몰려오고 애국자들 몸다치고, 아침 출근때도 부정선거 밝히라고 마이크로 선관위 두드려 부수고.

 

공선감tv 방송이 스톱되어서 큰 낭패가 아닐수 없다. 급박한 일이 생기거나 오늘같은 일이 자주 있는데 내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급히 수습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처음격는 일이라 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물어봤다. 풀릴려면 3개월에서 6개월 걸린다고 했다. 구글에서 온 영문으로 경고장 내용들을 먼저 해석을 하고 대처를 해야된다고 한다.
유투브 전문가에게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고 잠을 청했다.


24시간 공선감tv 실시간 유투브 촬영이 얼마나 감사한지? 어떤일에 열심을 낼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행복한 것이었다는게 새삼 깨달아지고 나의 존재감 이었다.
속상함은 이루 말할수도 없었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했다.
6개월동안 유투브를 할 수가 없다니? 부글 부글 새우잠으로 새벽에 깨어났다.

 

이날은 토요일 이었다.
눈 뜨자 마자 카메라를 켰다. 유투브를 확인하자.
화면에 차단화면이 사라지고 평소와 같았다.
유투브가 작동이 안된다는 차단 표시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사라졌다. 야호 휴우 에예예예예~
pop을 틀고 춤으로 몸을 신나게 흔들어댔다.
어떻게 바로 회복이 되었을까?
정상으로 돌아 왔다. 실방이 다시되었다.


어찌 이리 바로 풀렸을까?
구글도 신고가 들어가면 써칭을 해서 확인을 하는데, 너무 열심히 촬영을 한 것을 알아주었는지? 그리고 그때는 처음이라 방송할 때 말을 줄이고, 현장에 상황만 촬영을 했었다. (기자는 촬영되는 현상황을 보고 판단은 보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무조건 촬영만 하고 있었다.


촬영만 24시간 사명감으로. 누가봐도 열심히 촬영을 했다. 아무튼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빨리 풀린 것은 아닐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과천 중앙선관위에 찐 애국자님들
공선감tv를 밤에 12시까지 방송을 종료하고 텐트안에서 잠을잤다.
구독자들이 밤에 잘때도 공선감님 방송켜놓고 주무세요. 우리가 지키고 있을께요.
어느때부터 구독자님들 부탁으로 24시간 실시간 방송을 했다. 내가 잠이들면 한쪽 다리가 카메라에 비추게하고 코고는 소리와 함께 유투브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 내 코고는 소리는 전세계로 방송이 되고 있었다.


과천 중앙 선관위 새벽 3시 30분쯤 텐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공선감님”,,, 이밤에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자동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나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스쳐가는 바람소리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텐트밖으로 고개를 빠끔이 내밀고는 여자분의 얼굴을 확인했다. 안심하고는 긴장감이 풀리면서 내 눈꺼풀이 천리로 다시 내려앉는다. 눈을 부비며 아군임을 확인하고는 긴장감이 풀려서 인지 머리가 무거워서 지탱이 어려웠다. 내 머리 무게가 이렇게 무운지? 처음 느꼈다 바닥에 내려 놔야만 될것같았다.


졸렵고 자고 싶은맘에 이밤에 무슨일로 오셨는지 알고 싶지가 않았다. 그만큼 피곤에 피곤에 지쳐있었다.


그분은 “공선감tv 방송을 보다가 걱정이 되어서 왔노라”고 “김밥을 많이 사왔다”고 먹어보란다. 엥 이밤에 지금은 자야될시간인데 “김밥을 먹는 것을 봐야 가겠노라고,, ”
“아 네 감사합니다. ” 저녁 6시이후에 먹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걱정이다.


잠이 쏟아져서 힘들어 죽겠는데 그 김밥을 “보는데서 먹어야만 간다”고,,, 해서 꾸역 꾸역 먹고 아마 그때 한줄을 다 먹었던 것 같았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문이 따로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어보니 김밥을 35줄? 평소에 매일 햇반 라면먹는것만 보셔셔 걱정을 많이 하고 가셨다.
그날 아침, 점심, 저녁까지 김밥파티를 했다. 그래도 남아 돌았다.
또 어떤분은 댓글에 금방 맛있는 간식을 1시간안에 사오겠다고 하고는
새벽에 날라 오셔서 응원을 해 주시고 가시기도 하시고, 치킨, 피자,,,. 그리고 밤에 지킬사람들이 없다고 s교회분들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그분들은 토?를 달지를 않았다.


오케이하고는 밤에 춥든지, 이불이 있든지, 없던지, 아예 불평이없는 귀한분들, 끊이지 않는 기도로 함께 하시며 그 추운 날씨를 견뎌내신 그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느날 텐트에 처음보는 남자분이 가끔씩 찾아와서는 부정선거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가곤 했었다. 그 사람이 바로“미디어a”였다. 인천에서 오시는 전도사님, 아들 손잡고 오신분도, 약사분,,,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낮에 다마스 택배가 과천선관위 정문앞에 누런박스를 몇 개 내려 놓기 시작 했다.
다른 차들은 선관위 안으로 들어가서 하차를 하는데, <선거물품> 이라고 박스에 인쇄가 되어 있었다.


카메라로 얼른 촬영,
그리고 여성당이 있다는것을 처음 알았다. 그날 마포에서 퀵서비스로 오토바이가 저녁 7시쯤 도착 했다. 이상해서 커피 대접을 하면서 물었다. 선거때 비용을 얼마를 썼는지 비용 산출을 제출하여야 되는 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퀵으로 공문을 배달 하러 왔다고,,,어느날은, 밤인데 퀵 오토바이가 정문에 와서 섰다.

 

그날도 음료 대접하면서 물으니 과천중앙선관위에서 usb를 (테라급) 긴급 구매 배달하러 왔다고, 대형 쓰레기차가 왔다가 한참만에 나가는 차를 뒤따라 가다가 돌아오곤 했다. 선관위 직원들중에 특수 직업? 새벽에 5시30분에 출근 기계실에 미리 셋팅을 해놓는 팀이 있고, 밤 늣게까지 중앙선관위에 모든 시스템을 정리, 마무리하고 오토바이로 퇴근하는 사람들이며 중앙선관위에 하루 24시간 상황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구독자가 28,000만명

와아 !!!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눈을 의심했다.
구독자가 700명이 었는데 7,000천명에서, 그 다음날은 15,000명, 28,000명 정신없이 늘어났다. 그 쾌감이란 정말 신났다.


하루아침에 구독자가 왜 늘어났는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로세로 연구소에서 (공선감tv 성북구갑.을 개표참관) 동영상을 보고 제일먼저 부정선거 공선감tv를 소개를 했다고한다. 그때부터 전국에서 공선감tv가 부정선거를 잡았다고 응원을 많이 오고 감사인사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여기 저기 방송에서 성북구 갑.을 개표참관 동영상을 방송해 주셔서 구독자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늘어났다.

 

대법원 집회 현장에서 ㅇ집사님 옆에서, 누군가가
“공선감, 공선감, 공선감이 누구야?” 내가 분명히 들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꿈도 야무지네, 다른 누군가 있겠지? 하면서도, 미묘하게 끌리고 있었다. 나 말고 누가 찍었지. 궁금도 하고 나말고 없었는데,,,?


“공선감이 누구야?” “그 사람이 개표참관 동영상을 어마하게 많이 찍었는데 공선감이 누구야?” “중요한 내용들을 많이 찍어서 공선감을 찾고 있다는데~ ”
“415부정선거 증거들이 많이 있어요. 유투브 공선감tv를 꼭 보세요” 증거 자료들이 있다고사람들이 공선감, 공선감, 공선감을 찾았다.


미국에서도 공선감tv를 찾는다고. 크크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그 공선감의 주인공이란 것을 전혀 몰랐다.
나말고 다른사람이 또 있는줄 알았다 ? 나보다 몇 년 전부터 부정선거에 앞장스셨던 ㅇ 회장님이 내가 참관했던 자료를 보여 드렸을 때 형편없다는 식으로 차마 말로는 못하고, 얼굴을 돌려버렸던 충격적인 일들이 다시 생각났다.
밤새 촬영한 동영상들이 쓸모없다는 것을, 그때 심정은 참혹하고 암울, 아무튼 망신스럽고 챙피했었다 .


그 후로는 내가 (415 성북구 갑.을 개표참관 촬영을 했다는 얘기를 한동안 절대, 절대 말을 안했다.)
쥐구멍을 찾고싶고 접시물에 코 박고 죽고 싶었던 챙피한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어후. 어떤 사람인지 나도 궁금해졌다. 내 영상은 보기가 싫어서 전혀 들여다 볼 생각 조차 안했다.
(가로세로 김세의 대표님 감사드립니다.)
가세연에서 415 부정선거에 대한 방송을할때, 공선감tv에서 촬영한 2020년 415총선 개표참관 성북구 갑.을 현장 영상자료를 송출할때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 송출하거나, 확대해서 슬로우로 송출때할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항상 더하거나, 빼거나, 편집을 해도
공선감tv 제공이라고 자막방송을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자막처리로 방송을 보고계시는 국민들에게 알려주셨다.
이 영상은 (공선감tv가 제공하는 자료영상) 이라고,,,,, 공선감tv를 많이 응원해 달라고,
공선감tv를 예우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말을 안하시지만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멋진 김세의기자님 참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다른 방송들은 대게 악마 편집?을 하는 유투브들이 많이 있었다.
성북구 갑.을 개표 영상을 항상 공선감tv 로고를 지우고, 편집을 해서 본인 촬영한 것처럼 둔갑을 시켜서 방송을 하고는 오히려 뻔뻔함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놓는 형편없는 기자들 좌파를 욕할 자격이 되는지,,
“공선감tv를 가리고 편집”해서 본인들이 촬영한것처럼 그렇게 내보낸 방송들이 많았다. 붙어있는 투표지 영상을 내보낼 때도 양쪽을 지우거나 공선감tv를 지워버리고 편집, 방송 송출. 경고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방송들을 알고 있지만 말하지않겠다.)


공선감tv 영상제공자를 가리거나, 지우고 쓰는 방송들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씁쓸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얻어낸 값진? 영상들을 악마편집?을 하시다니 불쌍한 분들이 많이 계셨다. 그런방송들은 아마도 고생하면서 촬영을 한번도 안하셨을 것 같았다.
본인들이 정말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밤을 새어가며 촬영을 해봤다면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 뒤로도 악마편집으로, 그 영광을 독차지하려는 욕망들은 계속 되고 있었다. 편집은 교묘했다. 윤리관, 도덕관, ,,개나 줘 버려 그래도 사회는 잘 굴러간다? 정말 그럴까?
그런일들이 나를, 자기를 병들게 한 것은 아닌가? 전과자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저리도 발버둥치고, 아이들까지 망가지고 자멸의 길로 가는데도 그러려니 하고 있으니 말이다. ㅠㅠㅠ
공선감tv로 촬영해서 올라온 영상이 2년동안 무려 1만 6천건이 넘었다.


(구글에서는 그렇게 많은 증거 영상들을 삭제하고, 차단하고, 딱히 이유도 없었다.
갑자기 옛날에 찍었던 동영상까지 커뮤니티 위반이라고 하루아침에 공선감tv 채널이 없어졌다. 폭파를 당한 것이었다. 그 힘들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촬영한 동영상이 온데간데 없어지다니 너무 가슴이 아파왔다. 부정선거 채널 낙인이 찍히고부터 일주일정지, 한달정지, 딱히 예민한 영상도 오디오도 없는데 정지, 삭제.
나는 처음부터 광고가 없었다.


촬영한 영상을 휠링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혹시나, 광고를 해줄려나 하고 누르면 바로 노란딱지를 붙였다.
그래도 2020년 까지는 노딱만 계속붙였지 지금처럼 어떤기본도 없이 유투브를 탄압하다가 하루 아침에 폭파한적은 없었다.
아니 그러면 그때 노딱붙이고 그때 차단하고, 그때 경고를 하지 구글 코리아에 민주당에 한ㅅ혁 인터넷치면 나오는 이름이다.


이 사람이 그 자리에? 앉고 부터는 왜 뚜렸한 이유도 없고, 해명도 없고,, 독재? 하는짓보면 이번에는 구글이 폭파될 차례인것같다.
차단을 밥먹듯이 하고 아동용 표시 안 했다, 조폭단어, 백신 니들이나 맞아라, 백신속에
꼬몰꼬몰,,,, 공선감tv를 폭파 시켰다.
그리고 난후 다시 공선감 채널을 만들었는데 구독자가 없었다.
구독자가 없는 채널이 촬영하는것도 삭제하고 차단하고, 경찰이 표적수사를 하듯 구글의 표적 채널이 되어 버렸다.


지금 까지도 유투브 촬영을 시작하면“원활한 송출이 안된다”는 자막이 계속뜬다, 그리고 예민한 현장촬영은 버퍼가 너무 심해서 말소리가 끈기고, 화면이 뭉개져서 얼굴도 알아볼수가 없다. 동영상이 계속해서 얼마간 스톱되었다가 시작되고를 반복해서 상황을 알수 없게 악마 조작이 되어버린다. )


다시 또 시작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구독자와 상관이 없이 정말 열심히 촬영하고 뛰어다녔다. 2년동안 ?
1만6천개가 넘는 영상들은 하루에2~3건은 촬영한 숫자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아무튼 24시간 촬영하고, 하루도 안쉬고 선관위를 감시하고 집회를 아침, 점심, 저녁,,,하고 하하하하하하하

 

4월 너무 추워서 핫팩이 필요해

4월 매서운 찬바람에 비가 오더니 바람은 더 거세게 불어댔다. 8개의 텐트들이 난리가 났다.
처음 설치해 놓은 텐트는 자리를 이탈을 할정도로 바람에 텐트는 몸살을 알았다. 텐트를 날려버릴 기세다.


비가 내린게 아니고 물을 부어댔다는 표현이 맞는다.
정말 춥고 비가 올때마다 텐트안은 비가 차고 넘쳐서 몸도 젖고 갖고온 옷, 신발, 배낭, 침낭잡동사니,등등,,,다 젖어서 다음날에는 나무위에 걸쳐놓고 햇빛에 말리기도하고
텐트 가장자리에 놓아둔 잡동사니들은 신경을 안썼더니 비와 흙 먹던 과자 부스러기가 한테 뭉쳐서 그 광경이란 거지가 따로 없었다. 두꺼운 비닐을 구입해서 8개 텐트 지붕을 덥어쒸웠다.
이제 안심이 되었다. 바람에 끄떡없게 고정을 확실히 해 놨다.
텐트 바닥까지 매트를 여러개 깔고는 따뜻하게 잘생각을 하니 행복했다. 오늘은 잠을 잘수 있겠지?


하고는 매트위에 매트 깔고 또 깔고 잠이 들었는데, 뭔가 수상했다. 축축하게 옷이 젖어 있었다. 과천선관위 앞에 인도는 비스듬하게 보도블록이 깔려있어서 비가 흘러내리게 되어있었다.
텐트 속에 땅바닥에 흘러들어온 빗물과 내려가는 물까지 매트가 물을 흡수하고 있었다.
아뿔사 매트가 스폰지야? 물먹는 하마 매트는 처음?


매트가 물을 이렇게 신나게 빨아들이 다니 미쳐 생각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 밤에 조치할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침에 시내에 나가 또 비닐을 사왔다.


매트밑에 비닐을 깔고, 그리고10cm 높이로 비닐을 텐트안에 가장자리에 깔아야만 안전할것같았다. 그런데 비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불면 그것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시 클립을 구입해서 탄탄하게 촘촘히 고정을 시키고나니 마음이 놓였다.
아무튼 별 경험을 다해본다. 이 과천 중앙선관위 부정선거 !!!
이가 부드득 갈린다.


밤에 갑자기 내린 비에 텐트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이 비물젖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몸을 움직이는것도 싫고, 겨울에 시장에서 파는 동태처럼 꽁꽁얼어버린 것처럼 꼼짝하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밤에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참말로 난처했다.
비를 동반한 태풍은 작은텐트속을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며칠동안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그리고 바람이 태풍으로 바뀔때면 텐트속도 물난리로 안전하지가 못했다.


비가 물을 부어대기를 여러날. 이제 더 이상 피할곳도 발을 뻗을곳도 없을때가 여러번. 비에 젖어서 매트가 찍꺽 찍꺽 매트 위에 발을 살짝 올려놓으면 괜챦겠지,,, 하는 순간 물이 쭈욱 올라온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는데.
추위에 떨리는 밤을 새우잠으로 피곤에 지쳐자고,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발이 물에 잠겨서 일어나곤 했다. 나는 바보인가 텐트를 아무리 잘쳐도 비난리에는 꼼짝없이 당하고 있으니 바닥이 세멘 보도블럭이어서 텐트고정하기가 어려웠다.


비와 태풍이 함께 할때는 1인용 텐트가 초라하기 짝이없었다. 텐트위에는 비맞지 말라고 비닐을 덥어서 클립으로 고정해놓았는데 처음에는 클립으로 고정이 안되었을때는 흉하게 더 보였고, 배로 치면 난파선,,,
양쪽에 두 사람은 자주 외출을 다녀왔다


내 왼쪽에는 1인용 텐트에 ㅇ집사텐트가 있었는데 항상 늦까지 기도소리가 들리고, 아침에도 제일먼저 새벽부터 그 기도소리에 깼다.

핫팩이 고마웠다.
핫팩이 없었으면 어찌 내가 견딜수가 있었을까? 과천선관위에서 버틸수 있었던 힘은 핫팩에서 나왔다.
잘 때 뒷목에, 허리에, 배에, 핫 팩을 붙이고 잤다. 그 소중한 재산1호? 핫팩이 떨어졌다 이추위를 견딜수 있는 방법은 핫팩밖에 희망이 없었다.
핫팩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 핫팩은 행복이다. ㅋ


공선감tv로 방송을 하며 핫팩 노래를 했다. 핫팩만이 추위를 견딜수 있다고, 핫팩이 떨어졌다고, 방송으로 핫 팩의 필요성, 중요성, 노래 소리를 들은 애국자들이 과천중앙선관위 위문?을 올때 손에 핫팩을 선물로 가져오시곤 하셨다.


ㅅ교회에 목사님께 핫팩이 여유가 있으시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ㅈ목사님께서 경찰에 타겟이 되어있어서 목사님께서 더 힘들어지거나 불편한 문제를? 만들면 안된다고 단번에 거절하셨다.
ㅈ목사님께서 힘들어지시는걸 그 누구도 원치않았고, 알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나는 옛날에 영업을할 때 그집에서 못팔면 물건과 상관이 없는집에라도 팔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바로 돌아서지를 못하고 목사님 밤에 사람들 없을 때 주시면 안될까요? 바닥에 까는 매트라도, 그 교회에는 광야교회에서 쓰던 텐트며, 매트며,,, 차고 넘쳤다.
나중에 알았지만 중앙선관위앞에 설치한 텐트들 일부도 다른사람들을 통하여 ㅅ교회에서 지원받은 것을 알았다. (감사합니다)


핫팩 노래를 많이하고 다녀서인지 양주에서 오시는 목사님 사모님께서 연락이 왔다.
“집사님 빨리 ㅅ~교회로 오세요.” “핫팩이 앞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누가 다 가져가기전에 빨리 빨리 오세요”라는 연락을 받고 교회로 운전을 했다.
와아 내눈을 의심했다.


s교회 앞마당에 버려진 핫팩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산더미처럼 쌓여서 터지고, 딱딱하게 굳어버린것도, 포장지 칼라가 변한것도, 뿌연 먼지에 싸여서 망가진거며, 버려진, 핫팩들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아무리 주워담아도 그대로 였다.


커다란 우유프라스틱 박스에다 가득 차곡차곡 담아서 차에 싣고 운전하면서 신이 났다.과천 중앙선관위에 설치된 대형 텐트안에 넣어놓고는 발바닥에도 핫팩을 붙이고 잤다.
과천 중앙선관위에 있는동안 잘쓰고 그 후에도 2021년 겨울까지도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과천 중앙선관위 앞에는 2020년 4월 21일 텐트가 지금도 설치되어 있다. (ㅅ~교회에 감사드립니다 )

 

과천중앙선관위에 까만우산 (2020년 5월 5일)
중앙선관위 앞에는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에 집회를 마치고,
2020년 5월 5일인가? 텐트안에 있는데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고개를 갸우
뚱하게 만들었다. 이시간에 왠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고는 텐트밖으로 뛰쳐 나왔다.

 

못보던 얼굴들이 과천중앙선관위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갑자기 사방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보는 장면에 내 눈은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를 끄는 까만우산, 부정선거를 알리는 캐페인을 젊은이들이 시작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부정선거 접근을 시도한 그 들은 까만우산을 들고 있었다. 첫눈에 반해버린 까만우산, 이렇게 젊은, 이쁜 사람들을 선관위 앞에서 구경을 하다니, 전쟁터에 지원병력을 대거 투입하는 것처럼 신나고 생기발랄한 상황이 벌어졌다.


텐트속에는 비가올때마다 젖어서 못쓰게된 노트며, 턴원서 명단들, 회원 명단들, 빗물에잠겨서 떡이된 종이들이, 물건도, 신발도, 옷가지며, 있었는데 아침에 해가 뜰때를 기다렸다가 침낭 작크를 최대한 열어서 화단위에 펼쳐널고, 겨울 옷들을 작은 텐트뒤에 화단 나뭇가지에 쭉널어 놓고 말리고 있었다.

 

어느때 부터인가 화단에 나뭇가지위에는 항상 빨간색, 파란색, 회색, 침낭이, 이불이, 겨울 뚜꺼운 옷가지들이 즐비하게 햇볕에 목욕을 하고 있었다. 보기가 싫었지만 그 방법이 최우선 이었다. 햇빛에 소독된? 침낭은 그래도뽀송뽀송 했다.


화단에 그 지저분한것들이 챙피해서 정신없이 텐트속으로 거둬들이고는 나도 텐트속에 들어가서 최대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들과 어울렸다.
특히 젊은 학생들이 왔다는게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가로세로 연구소 팀들이 중앙선관위앞 화단 파아란 잔디에 서서 김세의 대표와 김소연변호사가 과천중앙선관위의 부정선거를 인터뷰하고 헬기장 언덕 여기 저기에서 각자 부정선거 인터뷰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봉규박사의 부정선거 연설. 이름 모를 분들의 분노의 부정선거 연설이 계속되고 저녁늣게까지 부정선거 집회를 하고 아무튼 여태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처음으로 중앙선관위 앞에는 집회 인파가 왁자 지껄하게 시끄럽고, 마이크소리 연설하는 사람들, 음악소리로, 그리많은 인파는 감동의 물결이었다. 그 여운은 며칠을 갔다.
생동감 넘치는 집회 인파들로 신났고 난리였다. 선관이 앞에는 까만우산을 쓴 친구들은 두줄로 서서 퍼포먼스를 하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부정선거에 화난 젊은이들의 분노의 표출 까만우산, 그리고 우붕이들.
까만우산, 까만선그라스에, 까만바지에, 까만티에,,,
까만우산에 선거마크를 새기고,,,,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부정선거를 알게 되었으니 까만우산에게 맡겨라는 뜻으로 해석을 하고 싶었다.


한쪽에서는 부정선거집회에 오신 애국자님들에게 빈데떡을 해서 날으고, 컵라면 먹는사람들, 김밥먹는 사람들, 커피가 동이나서 물, 커피를 차로 사서 날으고, 계속되는 인터뷰에 민경욱의원님 얼굴도 보이고, 밤늦은 시간까지 인터뷰와 부정선거를 밝히라고 연설하는 분들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그날은 정말 행복한 날.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것은 그만큼 부정선거를 많이 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와아! 예쓰. 예쓰 에쓰

 

그런데 내 모습은 삐쩍하게 얼굴부터 말라들어갔고, 피폐해져서 북한에서 넘어온 밥도 못 먹은 사람들처럼 초라해졌다. 얼굴의 살이없이 살갓이 얇아지고, 광대뼈가 드러나고, 햇빛에 그을린 누런색에 거무틱틱한 얼굴로 불쌍해 보였다.
그런 상황인데도 외모에는 전혀 신경쓸 겨늘이 없었고, 쓸 수 있는 환경도 안됐다.
그렇게 그날도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그동안에 있었던일들을 더 자세히 쓸수가 없다. 지금도 부정선거 전쟁중.

 

 오독의 늪에서 깨어날
(너 해봤어?) 부정선거 나의 일기를 권한다.

 

<오독>은 착시와 같아서 현상적인 심리 상태를 왜곡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특별히 탁월한 집단, 지성집단이다. 국가의 시련과 함께 응전의 체득과 학습, 역사적 업적을 온몸으로 담아낸 지성의 보루다.
식민지, 분단, 전쟁, 혁명을 딛고 세삼스럽게 <내란>이라는 화두가 뜬금없이 회자되었다.

 

극명한 <오독>의 여지가 있을법한 역사적 사건이 2024.12.3.일 저녁 느즈막히 방송과 유투버, 카톡에 사건을 알렸다.
올커니, 아뿔사, 황당함, 당혹, 놀라움, 아비규환의 국민성토는 극에 달했다.
21C 대한민국에서 어찌 계엄군이 국회를 통제할수 있나?
뭐? <포고령> 지나간 먼 추억의 공간에서나 나올법한 계엄군의 군화발과 통행금지, 한발 더나아가 삼청교육대와 광주의 아픈 상처까지, 소환되는 듯 했지만 2시간여 만에 계엄은 해지되고 그만이였다.
평화로운 비상계엄종료다.

 

모두,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질타했다.


하려면 확실히 하던가, 어중간하게, 그 뭐냐는 비아냥부터, 술 한잔하고 화김에 내질렀다는 비판여론은 쓰나미처럼 대한민국 여론을 주도했다.
점차 비상계엄이 국회주도로 무산되며 안정을 되찾는 듯한 국론은 다음날 언론, 여론이 놓친 <선관위 계엄군> 진입으로 <?> 질문이 새로운 지형으로 옮겨진다.

 

<오독>의 명백한 변곡점이다.
<오독>은 이제 망상가로 대통령을 몰아가고 있다. 망상과 오독은, 개념의 갈래에서 만나고 있다. 오독은 대통령의 망상으로 전환되어 인격체의 질병으로 전이되고 그는 평범하거나,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균형감을 상실한다.


그렇다 그는 계엄선포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질병에 가까운 환자에 지나지 않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독>의 원형과 본질, 과연, 잘못된 사유의 전 과정을 지극히 평범한 논리위에 검증해 볼 용기를 우리 사회는 지녔는가 싶다.
일국의 대통령을 망상으로 휘몰아치려는 잣대에는 극명한 진실 또는 그에 적합한 명증이 사려깊게 있어야했다.


참 이상하게도 <오독>의 영역 중심에 <부정선거> 담론에 대하여는 외눈박이다.
왜? 그렇게 자지러지면서까지 손사래를 치며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을까?
내란 우두머리 졸이돌림을 치며 선동을 일삼는 확성기속에는 이상하리만큼 외눈박이 꽃이다.

 

<오독>은 국민 정서에서 비롯되었다.
대통령이 마주한 심대한 정보의 양과 영향력의 무게, 당신이 받아들여야할 스스로의 통제력, 통찰력의 무게가 오히려 친필원고에서 잔잔히 부연 되었지만 밑줄치고 도도리표를 삼아논 논쟁은 <부정선거>에 대한 엄혹한 고발이자 고해성서의 토변같은 고독감이었다.
피를 토하듯이.


<부정선거>가 내재한 엄중한 결과물 즉 자신을 포함한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심판이 자명한 것이기에 차후의 정도가 스스로의 목숨마저 내놓은 결단이 수반됨을 알기에 <오독>은 극명하게도 대통령의 자필 소명마져도 외눈박이다.
그러기엔 계면쩍은지 <망상>가라는 비아냥과 2시간짜리 내란 우두머리라는 어처구니없는 프레임을 선동한다.

 

나는 <두루킹>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뜻 자체도 몰랐다.
어리둥절한 내용일 뿐이었다. 아예 여론조작이 댓글 조작으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조차 몰랐다. 아마도 지금까지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국민이 태반일것이 자명하다.

 

섬뜩할만한 국기문란, 국헌문란, 내란 범죄자의 법적 판단은 종결되었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울산 부정선거 심판을 이제야 목도하고 있다.
부정선거의 꽃인 정부, 정당, 지방권력, 경찰권력이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총동원된 부정선거의 금자탑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국민은 <오독>하고 있다.

 

두루킹과 울산 부정선거를 서슴없이 자행한 이들의 태도, 인격, 습관, 버릇, 가치관을 종합해보지 않더라도 <부정선거>에 대한 유혹을 저들이 쉽게 접었으리라는 생각은 어렵다.
문제인 정부의 주택정책을 <오독>키위해 통계조작을 서슴치않고, 젊은이들의 취업난에 불똥이 튈까 아예 <통계법>을 뒤 바꾸어 놓는가 하면 <사드>, <원전>의 국가 안보전략마져도 쉽게 국민의 <오독>을 유도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북한 평화 Show>의 전말이다.
삶은 소대가리라는 원색적인 비아냥에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숨죽이는 일국의 대통령 그자를,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았던 저 들의 뿌리를 곰곰이 직시함이 마땅하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은 <절대적인 오독>의 과정을 함께했다.


대통령의 12.3계엄선포에 대한 섯부른 판단과 예단이었다.
모름지기 대통령의 고뇌에 찬 용단을 함께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곰곰이 돌이켜보고 직시할만한 <여유공간>이 없었다. 2024년 파도처럼 몰려오는 국가적 과제들에 대하여 소화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그 공간, 시간적 고찰에 동행할 여지가 없었다.
여론은 대통령을 탄핵 내란으로 몰아갔다.
<오독>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랴!

 

AFP의 <새로운 부조리>라는 평가에 아이러니, 이율배반, 부조리 이미지에 대하여 상황을 음미 해보았다.
오 캡틴, 나의 캡틴 죽은시인의 사회 키팅선장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명백한 정의 <오독>의 부조리는 우리 사회를 부유할 뿐이다.

 

<오독>의 치유는 머리로 만나면 안된다.
가슴으로부터 꽃핀 정의를 숨김없이 낮은 호흡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처럼 안나의 일기를 촘촘히 공유하듯 조금도 각색되어진 원고가 되어선 안된다.
감히 <오독>을 치유할 치료제라는 나의 권문을 올린다.

 

“너 해봤어?” 정주영회장이 떠올랐다.
그가 이룬 모든 것은 <오독>과 싸움이자 투쟁이며, 승리다.
해보지도 않고 안될 것을 염려하고 좌절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일성으로 그는 선언하였다. 너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지마!
할 수 있다. 하면된다. 라는 긍정의 힘이 오늘날 선진 대한민국의 원대함을 이루는 초석이자 철학이 되었다.

 

<부정선거>의 담론을 <망상>으로 확신하는 분들에게 나의 일기를 권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나도 비상계엄령에 당황하였고, 뭐지? <내란>이라는 선동에 섬뜩했다.
돌이켜 보며, 살펴보며, 대통령의 친필소명을 마주하며, 핵심은 <부정선거>에 대한 척결이었음을 확인 하면서 <오독>에 대한 치유를 함께하는 동행을 시작했다.


너 해봤어
나의 <일기>는 극명하게 홀로코스터를 고발한 안나의 일기와 만나고 있으며 <부정선거>의 그림자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붙어있는 투표지를 직접보고 만난 나는 해보았고, 기록했으며, 국민께 알렸다.
명백한 정의로 가는 일기를 쓰게 되었다.
대통령이 쏘아올린 부정선거 <오독>의 망상에서 깨어나게할 나의 일기 <너 해봤어?>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우리모두는 올커니, 아뿔사, 황당함, 당혹, 놀라움, 실망 새로운 부조리의 늪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오늘 <오독>의 늪에서.
<하이브리드> 개념을 토로한 대통령의 피 눈물을 함께하며,

 

<오독>의 깨우침을 함께할 -
고김재홍동지, 최기호, 강현화, 김유성, 장영후박사(엔지어의 눈물저자), 허순옥, 백서스김정현, 제제님, 신나, 유레카, 김은혜, 김석만목사, 남명자사모, 조슈아, 임정빈집사, 박희연, 나유니, 양주사모님, 양주목사님, 미디어a, 하면되겠지 허영만, 오상종, 정희일, 허겸기자, 시니네가족, 이영한목사, 세계뉴스 조용권, 여의도 부장님, 김형철장군, 유승수변호사, 이봉규박사, 파주댁, 종이박사, 공병호박사, 공병호사모님, 원더우먼, 이천상, 정성과 봉사유투브, 포항공대교수, 파주장로님, 파주목사님, 박윤성, 포천 애국자, 류두환, 콕님, 김문희, 그레이스윤, 우파찬님, 정창옥, 전지영, 이진호, 대전팀, 울산팀, 김광훈, 나혜정, 구리사모님, 횡성전도사님, 김병규, 박상구, 이종만, 전주 애국자1, 전주 선생님, 전주애국자2, 이승근교수, 김지은기자, 안호찬기자, 가로세로 김세의대표, 박주현변호사, 도태우변호사, 권용진변호사, 평택목사님, 권오용변호사, 겨울님, 나혜정, 구자헌, 여의도 팀장, 통키, 태극기간다,

 

김수진, 고난극복, 곽은경, 끝장님, 뉴올프레스, 봉주르, 상진아재, 탑tv, 울림tv, 자대수, 이상순권사, 김형태, 이형복, 박창재, 현대카센타, 박용충, 한비자, 이홍주, 강주성, 권세계, 신정해, 갈매기, 김다해, 씨큐, 김영실, 김재헌목사, 이명조, 김민수, 구리고문님, 김영균, 시민a, 안용숙, 이금식, 조영훈, 허미애, 허제호, 김정호, 박정숙,허만혁, 이광현, 전예은, 청솔, 윤갑근변호사, 김형진변호사, 많은 참관인들, 트르스별님,한홍근, 최선희, 이혜경, 이창호, 박재순, 맹주성, 고성규, 이동석, 이병화, 윤정희, 우아님, 우파선물, 임종두, 이준규, 정성환, 울진기자님, 이지은, 한근수, 공주보안관, 논산애국자, 최영호, 조광연, 별님, 명재선, 김동규, 박상덕, 제천목사님, 전성희, 백봉학, 양전오, 전주양대장님, 조성희, 송경섭, 강경숙전도사, 대한민국애국자, 수학쨈, 고윤희, 양한별, 초원교회, 관악애국자, 김하영, 주옥순, 이석복, 박희도, 강영근, 양평애국자분들,


박동, 이름모를 찐 애국자님들,,,,,,,,,,,(하이브리드 수사팀) 너 해봤어?

위명순 단장 기자 cha59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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