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명순 단장 (기고) | 공선감을 쫓는 형사들 구리선관위는 감옥 리스트, 고발 리스트, 손해배상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공선감tv, 구리선관위앞에서 방송하던 유투브들의 동영상을 밤새 캡쳐하고, 시민들의 얼굴을 캡쳐했다.
또 캡쳐하고 그 캡쳐된 자료들을 토대로 시민들의 고발장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성명불상의 얼굴들을 치부책을 만들어, 고리대금업자가 조폭한테 넘겨서 시민들의 얼굴 몽타주를 주고, 돈을 받아오라고 하는것처럼 말이다.
이형사 일행은 챙피한줄도 모르고 그 많은자료들은 서류봉투에 넣을수가 없어서, 허리춤에 끼고 다녔다. 형사 두명이 한조가 되었다.
구리선관위 주위를 침을 질질 흘리며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얼마나 많이 그짓을 했는지? 그 캡쳐된 치부책은 너덜너덜 찢기고 사방이 흠집에 종이가 아파한 흔적들이 역역했다.
새우잠을 자며, 김밥으로 삼시세끼를 떼우며 버티고있는 우리의 동지들을 저렇게 야멸차게 찾으러 다니는 험상궂은 형사들 얼굴에 찬물이라도 끼얹져 주고싶었다.
구리선관위 하수인들 같은니라구.
구토가 올라왔다. 그 형사들은 나를 살짝 달랬다. “그냥 묻는 말에 답만하면 되요.”
어느때는 험상굿은 얼굴을 무섭게 협박하듯이 했다가, 밥줄이라? 열심히 샅샅히 살피고 다녔다.
하루는 저 멀리에서 서성대는 형사의 뒷 모습이 보이면 삥돌아서 다른 길로 가버렸다.
술래잡기가 힘들다고 생각을 했는지?
아예 그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
형사가 다가와서 “구리 경찰서 정보관 누구입니다.”
“이름을 알려주세요.”
“이름이 뭐예요?”
그리곤 그 한손에 들기 힘든 그 치부책을 들추며, “이 분 아시는 분이시죠?”
“이름을 알려주세요.“
한번은 형사둘이 인창동 아파트를 서성대고 있었다.
나는 마주치기 싫었다. 다른곳으로 이동했다. 형사는 나의 반경을 알고 있었다.
또 하루는 공원에서 교대하고 쉬고 있었다.
”아고 여기들 계셨네요.“
”날자 정해지면 오셔서 물어보는거예 대답만 해주세요.“
”그냥 간단해요.“
”겁먹을거 하나도 없어요.“
”편하게 알면 안다 뭐 그런거요”
공원에서 처음 이ㅇㅇ형사 일행을 만났을 때, 그의 얼굴에서 때 올게 왔구나.
순간 피할 수가 없다는 (,,,,,,,).
61. 밧데리님
공선감TV의 탄약고는 밧데리다.
구리선관위에 5층 복도, 화장실내에 콘센트를 모두 차단을 시켰다.
4층도 차단. 마찬가지다.
밧데리를 급히 충전할 곳과 밧데리 구입이 시급하다. 오래 견딜수 있는 밧데리.
당장 밧데리가 시급했다.
밧데리님은 24시간용 대형 검정 밧데리 2개 그리고 소형 여러개를 구입해 달려오셨다.
“와~아~”
항상 승용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주시는 분이다.
식당에 밥값을 미리 결재를 해놓셨다.
언제부턴가 (ㅇㅇㅇ?)는 부정선거의 싹을 없애고 있었다. 공선감TV는 감시중이다. 부정선거에 앞장선 모든 유투브 채널은 강제 정지가 계정삭제로 폭파시키기를 일쑤다.
중요한 현장을 촬영중일 때 미리 구독자분들에게 부탁을 드려놨다.
촬영중에 캡쳐를 하고, 녹화를 해두기로.
구리선관위 회의실에 문이 열릴때마다 공선감TV도 뒤따라 후다닥 촬영하고 다시 원위치로 뛰쳐나온다.
회의실 내부를 촬영할 때 구독자분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급히 캡쳐를 찰깍.
이미지를 들고 구리선관위 현장으로 달려오신다.
007작전 탐정팀 가동 중이다.
먼저 촬영되었던 영상 장면을 캡쳐한 이미지와 비교 분석한다.
문제의 전산장비 전자개표기의 이동 움직은 없었다. OK.
62. 공개정보신청 접수자를 고발한 구리경찰서
공개정보신청을 구리 경찰서에 접수를 했다.
(2020.6.8.연합뉴스) 중앙선관위가 구리선관위를 통해서 22명을 성명불상자로 민원인들을 고발을 했다.
민원인 중에 본인도 고발자 명단에 얼굴이 올라가 있는지 걱정을 하고 계셨다.
“걱정하시지 말고 구리 경찰서에 가서 공개정보신청을 해서 알아보세요.”
옆에 계신 분이 알려 주셨다.
바로 경찰서로 갔다. 안내서에서 안내를 받았다. “접수장을 내고 확인하면 됩니다.”
“양식에 접수하고 기다리세요.“
분명히 그날은 명단에 없었는데?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구리경찰서는 공개정보신청을 접수한 이름을 보고 고발장에 이름을 한명 더 올렸다.
이런 억울함이 또 있을까?
접수장에 써있는 이름을 보고 고발장에 이름을 올리다니, 땅을 칠일이 벌어졌다.
비겁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어떤놈들인지?
75살 이나 되신분을, 어떤놈들에게 잘보이겠다고? 그짓을 했는지?
착찹했다.
63. 국투본 긴급회의에 나타난 불청객
출석날자는 다가오고 있었다.
정보관이 뀌뜸을 해준다. 변호사를, 꼭 변호사를 구하세요.
변호사 비용이 없는데 변호사를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발만 동동구르고 있었다.
ㅂㅇㅇ변호사는 변호사비가 얼마고, ㅅㅇㅇ변호사는 얼마라고 말을 해주었다.
ㅅㅇㅇ변호사님과의 약속을 해놨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분들이 급한 마음에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국민들에게 변호사비를 후원해달고 하고 접수하란다. 그래도 부담이 너무컸다.
청평에서 ㅁ의원님이 비밀 긴급회의를 한다고 귀뜸해 주었다.
쩡여사랑 같이 밤에 갔다.
펜션 현관에서 반가운 얼굴로 반겨주셨다.
야외에서 고기 파티를 하고 있었다. ㅅ목사가보였다. 껄끄러운 눈치다.
그 카드 후원금에서 변호사비를 몇백을 찢어먹으신 훌륭하신 분이시다.
펜션 방에서 옷을 갈아 입을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ㅅ목사, 여자유투버, 국투본 관계자 두사람이 ”저 두여자는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요?“,,,
불편한 욕을 나에게 퍼붓는 것을 쩡여사가 들었다.
쩡여사는 팔짝 팔짝 뛰었다. ”우리가 왜 저런욕을 들어야 해요?“
”저는 가겠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따라 나갈수가 없었다.
대의적인 명분을? 세워놓고 가야되기 때문이다. 내 목적은 따로 있었다.
식사 자리로 나갔다. 밖에서는 고기를 굽고, 응접실에는 민의원을 비롯한 장군들과 어른들이 계셨다. 나는 ㅁ의원에게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왔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구리선관위를 지키라고하시고?“
”왜 우리를 방치하십니까?“
”물질로 도우시던가?“
”인원을 조달 해 주시던가?“
”변호사를 붙여 주시던가?“ 하고 말을 이어갔다. (생략)
그리고 내 말이 끝났다. 앞에서 사모님과 식사를 하시던 이ㅇㅇ박사님께서 ”그럼 그럼 공선감을 도와야지“
”누굴 돕겠어요.“라고 말씀을 해주셨다.,,(생략)
그리고 바로 일어 났다. 함께 식사를 하시던 어른들께서 인사를 하시며, 힘써 보겠노라고 명함을 주셨다.
그리고 또하루가 지나고 또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초초해졌다.
무료 변호를 해주시겠다고 원주에 계신 변호사님께서 연락이 왔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64. ㅇㅇㅇ변호사님 도와주세요.
ㅇㅇㅇ변호사님께 전화를 했다.
”변호사님 위집사입니다.”
“구리경찰서 고발건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위집사님 구리선관위 고발건은 큰 문제가 없을것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하셨다. “네에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몇일전에 구리선관위 허ㅇㅇ 선거계장하고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허계장님 23명 고발한거 취하하면 우리는 떠나겠습니다. 라고 말을했습니다.”
“허계장이 말하길 대뜸 (중앙선관위에 전화)를 해봐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서 다시 허종배 선거계장에게 물어봤습니다.”
“중앙선관위에서 연락왔냐고 물어봤더니 연락이 없답니다.”
“구리선관위 원ㅇㅇ 국장은 뭐라고 하냐고 물어봤는데 아무 미동도 없다고? 합니다.”
“변호사님”
“구리선관위에서 23명을 고발했는데”
“왜 중앙선관위에 전화를 해야 됩니까?”
“중앙선관위는”
“ 정부이고”
“정부는 문제인인데”
“어떻게 이게 아무 문제도 아닙니까?”
“변호사님 !! ”
변호사님께서 “위집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러네요.” 하시면서
“의정부 지방법원에서 보낸 구리선관위의 고발장 서류들을 보내주세요”라고 하셨다
그리고 저의 변호를 맡으신다고 서초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말씀을 하셨단다.
65. 사랑이 많으신 ㅇㅇㅇ변호사님.
변호사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k한테 연락해서”
k와 함께 변호를 해주시겠다고 k한테 전화해보라고 말씀을 하셨다.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k한테로 전화 번호를 눌러대고 있었다.
“변호사님께서 변호를 해주신다고 하시는데 같이 합시다” k가 하는 말이
“나는 경찰서를 매일 드나들다싶이 하기 때문에 이길수 있어요.”
엥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짓는 일을 잘하듯이, 변호사란 변호 전문가를 뜻하는데,,,,
농사짓는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호사가 된다고?하는거랑 다를바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나 변호를 할수있다면, 변호사란 전문적인 직업 전문업이 왜 필요하다는 말인가?
변호사, 전문가들에게 사건을 왜 맡기는지?
답답하지만 “같이 하자.”라고 또 말을 했다.
k가 자기는 “법률사무소하는 분 한테서 조언을 받는데 이길수 있어요”라고 답을 한다.
“한번 조언받는데 30만원 입니다.”라고 말을 덧 붙인다.
“30만원 들고?” 법률자문을 함께 같이 받자고 오란다. 기가 막히고 말이 안 통하고, 뻔뻔하기까지 했다.
돈을 들고 오라고? 카드에 남은 돈은 어쩌고? 화가 치밀었다. 참고 다시 물었다.
혼자해도 돼냐는 뜻으로
“괜챦겠냐고?”
“글쎄 괜챦겠냐고?”
“괜챦겠냐고?”라고 세 번을 물어봤지만,
“혼자 할 수 있다”고 다부지게 본인의 의사를 딱부러지게, 정확하게 표현을 했다. 더 이상의 긴통화는 소용이 없음을,,,,알았다.
변호사님의 변호를 거절해 버렸다. 그것도 단호하게.
단 칼에
변호사님께서도 고심 끝에 어려운 결정을 하시고 전화하라구 말씀하셨을 텐데,
구리선관위앞에서 10일동안 있다가 간 k가 여러 사람들을 동원해서? 위집사를 괴롭히는 것을 알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정을 해주신 변호사님의 깊은 사랑을 이렇게 우습게 팽개치다니?
이해가 안갔지만 k의 결정을 존중하고 전화를 끈었다.
변호사님께 k의 입장을 알려드렸다. 너무 기가 막혀 하셨다.
“그런 사람이 대표 맞아요? 쯔쯔쯔 ”
66. 구리선관위가 “부정선거 사형” 피켓을 모두 없애다?
우리가 구리경찰서에 출석하던 바로전 전날 오후에
구리선관위는 직원들이 퇴근하기 한시간 전쯤 되었을까?
선관위 현관 왼쪽 옆에 벽면에는 부정선거에 대한 피켓들과 현수막을 허ㅈ배를 비롯해서 전직원들이 일제히 동원되서 마구잡이로 한번에 달겨들어 벽에 붙은 현수막을 뜯어 제끼고 있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벽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떼는 모습이 신이 나 있었다. 깔깔대며 흥이 나있었다. “계장님 이건 어떻할까요?” “이거는요“
허ㅇㅇ와 그 일당들을 보면서 어떤 촉을 느꼈다.
(다시는 이 시위하는 사람들을 안봐도 된다는 시원하다는),
(다시는 못 보게 될거라는),
(보기 싫었는데 잘됐다는), 것처럼 저들에 행동은 자신이 있었다?
저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몸으로 말을 해주고 있었다” 아 아 나를 조사를 받다가 다시는 못오게 감옥에 라도 집어넣기로 하는건가?
저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는것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감히 자신있게 (부정선거 사형)을 떼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물건을? 함부로 손을 대고 없애버리고 있었다.
정ㅇㅇ 키다리가 증거물 촬영을 하고, “이건 어떻게 할까요?”
“케이스에 잘보관했다가 찾으러 오시면 돌려드리세요.“ 친절도 하셔라
내 눈과 마주친 허계장은
”찾으러 오세요“
”잘보관 하겠습니다“
그 목소리는 화색이 돌았다. 좋아 죽겠다고 다시는 안봐도 된다는 확신을 하며 폰으로 증거물들을 찍고 있었다. 키다리는 엉거추춤하게 허리를 구부려가며 열심히 찍어댔고, 옆에 직원들은 허ㅇㅇ한테 작은 일까지 하나, 하나 물어가면서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삽시간에 썰렁한 벽으로 낮설어 보였다. 내 에너지도 쭉 바져버렸다.
너무 허탈했다. 쓸쓸함이 밀려왔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었다.
어쩌면 저들이 바라는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67. 유투버들 팬션모임.
유투버 휴식, 모임을 곤지암 펜션에서 가졌다.
나는 늦게 합류했다.
공선감, 바실리아, 미디어, 펜데, 일산,,,,,, 제이, 쩡여사,,
내일은 공선감이 조사받는 날이라 미디어는 계속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에 있었던 선례들을 얘기를 해주었고, 조슈아는 밤새 폰에 있는 자료들을 노트북에 옮겨주시느라고 잠 한숨 못잤다.
폰을 압수될 것이고, 바로 구속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미리 예방 차원에서 모든 것을 열어 두고 준비중이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오메기떡을 유투브 실방으로 팔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오메기떡 광고에 바쁘다.
한쪽에서는 귀여운 여자들이 짹짹짹? 떡 광고가 대박이라고 박수로 화답을 하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새벽까지 이루어졌다.
밤에 도착하신 변호사님들은 야외에서 고기굽고 맛있게 드시고 바로 가셨다.
떡 팔다가 지친 유투버는 슬며시 자리를 뜬다.
나는 애써 잠을 청했다.
내일을 위해.
68. 구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
구리경찰서로 운전을 했다.
비가 내린 여름 아침이다.
비가 많이와서 패인 시골 도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구리경찰서에 도착했다.
공선감tv로 실방을 했다. 조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서 건물 맞은편 도로에 세워진 커다란 태극기가 높이 아주 높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태극기?
구리에는 유독 대형 태극기를 많이 설치를 해놓았다.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내가 조사받을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대형 태극기만 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태극기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때는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가던 발을 멈추고 애국가가 끝날때까지 태극기를 향하여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가슴으로 부르고 있었는데, 그 태극기가 오늘은 왜 이렇게 작아보이는 건 왜 일까?
”힘차게좀 날자!“
”힘차게 펄럭이라구!!!“ 태극기 한테 말을 하고 있었다.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고 싶었다. 오늘따라 힘이 없는 태극기가 내 모습 갖기도 했다.
한사람, 두사람,,,조사받는 우리를 응원하러 구리경찰서로 모여들고 있었다.
핸드폰은 압수당할까봐 아예 전원을 꺼 놓고, 내 차안에 구석에 꼭꼭 숨겨놓고 빈몸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구리 경찰서 안에는 아예 가져가지 않았다.
우룡이 아빠도 공룡을 쓰고 퍼포먼스를 해주셨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조사받는 동안 애국자들이 경찰서 민원접수실, 귀빈실을 내 주어서 실방하며 편하게 쉴수있게, 구리경찰서에서 배려를 해주셨단다. 그곳은 아무나 와서 있는곳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장소 제공을 해주신 경찰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조사를 받을려면 민원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서 다음 건물로 가야만 조사를 받을수가 있었다. 그 다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접수대에서 간단한 접수용지에 신상을 적고 대기실에서 앉아있었다.
대기실에 대각선으로 화장실이 있고, 그 옆에 조사실 팻말이 붙어있었다. 대기실에 앉아서 물한잔을 따라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구리경찰서 정보관님들께서 오셨다.
왠일이시지 이시간에 다 같이 오시다니?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정보관들이 나란히 나를 향하여 쭉 줄을 맡추는 것처럼 하시더니
얼굴은 싱글벙글 이시다. 좋으신 일이 있으신가 보다.
오른쪽 손에 힘을 주면서 높이들고는 한목소리로.
“위집사님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하는소리에 다들 깜짝 놀랬다.
쪄렁쪄렁 우렁찬 목소리는 경찰서안을 들었다. 놨다. 1,2층을 튼 높은 공간이 정말 흔들렸다.
조용하던 경찰서안이 파이팅으로 울려퍼졌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내눈이 똥그래졌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앗싸 신난다. 살도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나는 “경찰서 안인데 ,,, ? 이래도 괜챦나는 표정을 안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감사하고 고마울수가 감동 그자체였다.
정보관님들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사 꾸벅 90도)로 하하하하하하하
한 경찰관이 오더니 “파이팅은 아니지” 그러니까 파이팅을 외쳐 주셨던 정보관님들 중에
한분이
“그럼 어때” 하고 메롱 하듯이 약을 올렸다.
조사 잘 받으라고 하시고 그 분들은 그 자리를 떠나셨다.
그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이란 지금도 생생하고 너무 기뻐서 눈물이 핑돌았다. 감사한분들 이런 환영을 응원을 받다니. 대박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수 없는 그날 내 마음속에서는 예쓰 예쓰 누가 이런 응원을 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란말이다. 경찰들에게 힘찬 응원을 받은 사람있으면 나오라 그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정말 감사하고 신이났다. “응원군단이 이렇게 많이 온 사람들 있으면 나와보라구 그래” 그것도 경찰서안에서 정보관들에게,,,,조사받기 직전에 말이야 그때 그분들 잘계시지요? 항상 건강하세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후 얼굴에는 웃움꽃이 피고 여유만만해진 내 어깨는 갑자기 더 짝 펴졌다.
발에도 쭉 힘이 생겼다. 걸음 이 틀려졌다.
그러지 않아도 씩씩한 걸음이 한걸음, 한걸음 더 힘이 붙었다.
너무 씩씩해져서,, 표시를 안낼려고 애를 쓰며 조사실로 형사, 그리고 변호사님뒤를 따라 들어갔다.
조사실안에는 또 한분의 형사가 앉아 있었다. 으그 그 짝꿍이구만 캡쳐된 그 치부책을 들고 함께 다니던 실과 바늘 형사님들.
그곳에서 오전에는 청량리 언니는 나보다 먼저 조사를 받고 민원실에 가 계셨다.
조사를 받고 나온 청량리 언니와 서로 엇갈리며 얼굴로 서로 눈 인사만 주고 받고 헤어졌었다.
나는 조사실을 들어가기전에 화장실을 먼저 다녀왔다. 조사실 문을 등지고 이덕주 형사일행이 앉았고 책상을 가운데놓고 ㅇㅇㅇ변호사님과 내가 이쪽에 앉아서 있었다.
이ㅇㅇ형사의 옆에는 항상 같이 다니는 형사가 있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이ㅇㅇ형사는 나에게 몇마디를 하고 형사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이ㅇㅇ형사는 굳은 얼굴에 무거운 표정이다. 엄한 얼굴이다.
책상위에는 질문할 자료집이 놓여 있었다.
a4용지를 묶은 조사 자료집은 때가 타고, 지저분해져 있었다.
많이 만진면서 생긴자죽들, 흠집들, 접혀지고, 중요한부분을 표시하느라고 접혀진 종이가 밖으로 삐져 나오기도 하고,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셨는지? 짤은 기간에 저리도 너덜너덜 해지다니,,,,그 자료 묶음을 보는 순간 질려버렸다.
오늘 다 조사를 할수 있을까?
옛날에 두꺼운 전화번호 책?을 보는 것 같았다.
치부책? 이라도 하고 싶다.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그 복사된 캡쳐책에만 눈이 갔다.
첫째 질문 수사의 절차인 이름, 주소,,, 개인신상을 물어보았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내가 너무 상세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님께서 눈에 힘을 주시며 싸인을 보내셨다.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후로는 내 입이 닫혀졌다.
(생략)
형사는 질문를 한다.
“묻는 말에 편안하게 말을 하시면 됩니다” 가볍게 나에게 말을 건넸지만. 무게가 느껴졌다.
형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 두꺼운 사진만 잔뜩 들어있는 콘사이스 사전, 주석처럼 많은 분량의 캡쳐된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며, 정보관이 그 캡쳐된 사진을 가리키며,
“이사람 아는 사람 맞죠?”하고 묻는 질문에
나는 묵비권으로 답(,,,,,,,,,)을 했다.
이ㅇㅇ형사는 캡쳐 사진을 보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옆에 있는 형사는 노트북에 빠지지않고 기록을 해나갔다.
이ㅇㅇ형사는 또 다음장을 넘기고는 캡쳐된 사진을 손으로 가르치며.
“이사람은 누구예요 ?” 하고 형사가 묻는다.
난는 또 묵비권으로(,,,,,,,,) 통과하고, 형사가 또 다음장을 넘기며 사진을 가리키며 “이분 자주오시는 분인데” “이름이 뭐예요“
나는 또 묵비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마 어마한 분량이다. 조사내용을 넘기며 똑같은 조사 질문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형사 둘이서 나를 취조한 내용들을 변호사님이 보는 앞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짬이 생긴 것이다. 휴우.
가다듬는 시간이 생기다니? 숨통이 트였다.
그런데 ㅇㅇㅇ변호사님이 나의 팔을 살짝 치면서, 변호사님께서 핸드폰에 문자를 보여주셨다. “k입니다”라고 써 있었다.
엥? 하필 이와중에?
“누구예요?”하고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으셨다.
그때 형사가 “화장실 다녀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휴식시간을 내 주었다.
조사실에서 나와서 변호사님과 문자의 “누구냐”의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문자를 보고 변호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 k집사요 지는 매일 경찰서를 들락, 달락 거린다고 혼자서도 경찰에 조사를 받아도 이길수 있다고 여러번 장담하던 그 k집사였다.
나는 변호사님께 k집사랑 같이 변호를 해주세요라고 변호를 부탁드렸다.
한 번, “변호사님 같이 변호해 주세요.” “안됩니다”
두 번, “변호사님 변호해 주세요” “안됩니다”
세 번, “변호사님 같이 변호해 주세요” “안됩니다” 완강하셨다.?
그리고 내가 답답해 하는 모습을보고 설명을 덧 붙이셨다.
“왠지 아세요?”하고 잠시 멈추었다가 변호사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k는 위집사님을 괴롭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양쪽 변호를 할수 있습니까” 그 말씀은 백번 맞는 말씀이시다.
변호사님께서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내팽개쳐 버릴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참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k와 통화를 할 때 전화에 대고 미련하다고 말을 해 버렸다.
“장자의 축복을 죽 한그릇에 팔아먹는 에서가 생각났었다.”
그리고는 오늘 “아차”하는 마음에 보내온 문자는 때는 이미늦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조사를 받는 이 시간에,,,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이ㅇㅇ형사의 조사는 계속되었다. 그 많은 캡쳐된 사진들을 조사받을려면 몇주는 더 걸릴것 같았다. 아니 몇달, 공선감tv에서 촬영한 실시간 방송들을 캡쳐한 얼굴들을 보여주었다.
이ㅇㅇ형사는 질문을 시작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
“여기에 저 사람은요?”여러명이 있는 캡쳐사진 속에 손가락으로 한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
“이사람 잘아는 사람 맞나요?” (,,,,,,,)
“계속 현장에 계셨던 분이던데요.” (,,,,,,,)
나는 사실 그 사진에는 아예 눈을 (동태눈)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올까봐 사진에 얼굴을 갖다대고 보는 척만 하고 있었다. 너무 심하면 형사가 눈치를 챌까봐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고 시선만 사진에 대고 아예 마음은 천정만 보고 있었다. 그 많은 캡쳐된 사진들을 넘기면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물어보다가,,,,,
갑자기 종이를 “훼에휙”하고 처음 장으로 넘겼다,
사진에 찍혀 있는 인물을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이분 잘 아시쟎아요.” “자주 오시는분.” (,,,,,,,,,,) 꿀먹은 벙어리다.
갑자기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얼떨결에 대답이 확 토낼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의 이름을 자기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새로운 신선한 행동을 하면 말을 안할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얼굴에는 미소가 조사를 받으면서 웃음소리로 밖으로 나올뻔 했다.
칼기 폭파범 김현희를 조사를 해야되는데 묵비권 행사만 하니까, 열받은 형사가 진짜 한국말을 못알아듣나? 테스트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잉글리쉬,,,?”
“한국어?” 해도 또 말을 안하니까? 수사관이 생각 끝에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가다가 걸려서 넘어지는 척 하면서 칼기 폭파범 김현희에게 커피를 몸에 쏟았다.
김현희가 “앗 뜨거” 하는 순간 수사관이 “음 이런 ,,,,은 한국 말 잘하네”하고 “말해” 그때부터 수사를 할수있었다는 그런상황. 그것처럼.
이형사는 갑자기 앞장에 있는 사진을 훽 펼치고는 “이사람 이름이 뭐예요? 잘아는 사람이죠?”재 빠르게 다시 질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모른다고 했는데, 갑자기 다시 물어보면 진실된 대답을 얻을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미끼가 되어 일파만파로 계속 조사를 받고 있었겠지,,, ㅎㅎㅎ
사진에 있는 내용을, 사진있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본다. 크 그렇게 조사는 반복이 되고 있었다. 몇시간을 또다시 정리하고 보여준다.
이ㅇㅇ형사는 조사받을 때 질문에 답을 하는 나의 작은 움직임까지 빠지지않고. 취임새까지. 말을 안했다는 내용까지.
기재를 해 넣었다. 휴우
어찌됐건 마음이 후련했다. 2시간30분쯤 끝난 것 같았다.
캡쳐된 사진들 속에 얼굴들은 하나도 아예 기억에 없다.
(우룡아빠는 대형 공룡을 뒤집어쓰고 서초집회 행사에도 많은 참여를 하셨다.
부정선거 사형을 국민들에게 알리신 우룡아빠. 대형 공룡 제작비용은 80만원 든다.)
우룡 아빠의 퍼포먼스로 경찰서 정문 앞은 한동안 신나게 춤을 추며 시끄러웠다.
우리의 일행들은 음악에 맞쳐 함께 즐거워? 했다. 원주에서 오신 전도사님 일행과.
초원교회 목사님, 권사님, 허ㅇㅇ언니,,,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과.
맛있는 해물탕을 대접하신 분들. 구리경찰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계 몽 령 (대한민국 계몽주의를 위한 나의 선언)
16~18세기 유럽전역은 계몽주의 시대를 관통한다.
이백여년의 깊고도 넓은 사유와 논쟁속에 꽃을 피운다. 구시대의 정신적 권위와 사상적 특권을 반대하여,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제창하고 이성의 계몽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자유사상)을 꽃피운다. 불란서 혁명을 완성한다. 자유에 대한 계몽주의는 온인류에게 찬사를 받는 불란서 혁명으로 열매를 맺었다.
지금 2025년 대한민국은 (계몽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16~18세기 유럽전역의 계몽주의시대를 떠올리는 거대한 담론이다.
한국사를 전공하며 2030과 소통을 이어온 꽃보다 전한길강사는 (계몽령)에 앞장서 국민께 호소한다. 눈물과 오열이다. 오히려 감정에 복받쳐 전율을 전달한다. 그는 한국사를 전공했을뿐더러 강단에 서서 가르치는 일타강사다.
나는 꽃보다 전한길의 한국사 전공에 방점을 찍고 귀 기우리며 하나, 하나,
한점, 한점을 소화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계몽령)이다.
나는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으론 나의 (너 해봤어?) 신문연재를 거듭하며 꽃보다 전한길과 동행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한다. 또한 석동현변호사의 국민 변호인단의 시작에 깊은 공감과 참여를 선언한다.
2025년 대한민국 계몽령의 꿈틀거림을 벅차게 맞이하고 있다.
애국 계몽운동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제국신문), (만세보), (대한민보).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 장지연, 주시경, 국문연구소, 한글소설, 한글신문, 일제 암흑기를 뚫고 (을지문덕전), (강감찬전), (이순신전) 우리의 애국 계몽주의 역사는 땀과 눈물, 열정으로 가득 채워진 뿌리가 성성하다. 본질적으로 애국 계몽운동의 모든 중심은 (자유사상)이다. 대한민국 독립과 대한민국 자유는 하나의 접점에서 만나고 있다.
애국 계몽운동의 역사는 (반국가세력)과 (체제전쟁)중인 오늘의 계몽령이다.
오히려 지금의 계몽주의는 우리의 자유가 영원히 그리고 돌이킬수 없는 암흑기를 맞이하는 (수렁)에 (빠질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을 통체로 집어 삼키려는 극단주의 발로다.
극단주의는
반지성주의, 팬덤주의, 전체주의, 네오막시즘, 안드로이드 왜곡장, 독이든 설탕을 먹은 국민은 저들의 선동, 전략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전쟁이 아니라 (내란선동)을 통하여 통체로 잡아먹는 어마어마한 위기가 오늘이다.
나는 (내란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라는 명제를 통하여 시대상황을 고발한다. 계몽령의 명제가 될 것을 확신한다,
대한민국 내란 범죄자는 이율배반, 아이러니, 부조리적 사유에서 관조함을 요구한다.
AFP 새로운 부조리, 한국상황의 진단에서 성격을 접근한다.
이상의 (날개), 죽은시인의 사회 (오켑틴), 혼불의, 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보다 어둡지않다는 문학적 사유를 접근하며 그들의 (범죄성격)을 해석한다.
*박근혜의 딸은 정유라.
*박근혜는 무당 굿 신봉.
*사드 전자파 참외.
*미국 소고기 광우병.
*후쿠시마 오염수.
도끼로, 총으로, 국회의원을 체포하라. 사살하라.
국민을 (공포)와 (분노)로, (충동질)하고, 딴전을 핀다.
동문서답을 계속한다.
노이즈마켓팅에 노출된 (언론)은 (유혹), (특종), (시선집중) 도그마에 중독되어 (여론)은 (오염)된다. 사법, 입법, 언론은 수습할 여지도 없이 타이밍을 뺏기고 만다. 오늘날 (정유라)의 증언과 분노가 그렇고, 꽃보다 전한길의 착시에서 벗어나 계몽령을 피토하듯 국민께 호소함이 그렇다. 계몽령은 시간 싸움이다.
국민을 깨닫게 하는 전쟁이다.
갑자기 나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토하듯 쏟아져 나온다. 1984년 발표된 사랑에 관한 철학적 담론을 담은 밀란 쿤테라의 대표적 장편소설 제목이다.
사랑과 성의 역사와 이데올르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4명의 등장인물과 함께 오랜 방황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인간의 존재가 참을수 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 가벼움과 무거움, 이라는 이분법적 측면에서 조명한 소설이다. 4명의 주인공을 통하여.
사랑의 진지함과 가벼움.
사랑의 책임과 자유.
영원한 사랑과 순간적인 사랑등.
이중적인 사랑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서, 인간의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의 (언론 생태계)는 (여론)을 (유린)하는 참을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전락시켰다. 언론 생태계의 계몽령이 너무도 시급한 상황이기에 우리의 언론, 여론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대한민국 사랑의 진지함.
대한민국 책임과 자유.
대한민국 영원한 사랑.
비유함이 나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계몽주의) 선험적(선천적 a priori)이, 그 어느때보다도 요구된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알수 있을까? (순수이성 비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실천이성 비판)
나는 무엇을 바랄수있나? (판단력 비판)
계몽주의는 임마누엘 칸트 (1724~1804) 인식론에서 시작되었고. 정립되었다.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자유를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할까?
나는 대한민국 자유를 위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나는 대한민국 자유에 무엇을 얻을수 있나?
너무도 명백하고 분명해 진다.
대한민국 계몽령을 위한 나의 투쟁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참없을 수 없는.
가벼운 여론, 언론을 맞서 싸워야한다. 대한민국 계몽령을 위한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