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5월 10일 대계 이주정 선생 기적비 제막식

  • 등록 2025.05.06 14: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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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투데이 이승일 기자 |  고성이씨법흥문중.고성이씨안동종회(회장 이재업)은 2025년 5월 10일 명호서원 앞 반구정에서 '대계 이주정 선생 기적비 제막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재업 회장은 "고성이씨 문중사에 혁혁한 공업을 이루신 대계 이주정 선생께 보은하고자 후손들이 기적비를 세우고 조촐한 제막식을 거행한다"고 전했다.

 

대계 이주정 선생은 1750년(영조 26년)~1818년(순조 18년)에 증조부는 팔회당(八悔堂) 이시항(李時沆), 조부는 이원복(李元馥), 부친은 이홍보(李弘輔)이며, 외조부는 이덕룡(李德龍)이다.
3살 때 모친상을 당하고 묘소에서 지극히 슬퍼하여 보는 이들이 모두 애처로워할 정도였으며, 후에는 계모인 김씨를 정성껏 섬겼다.
자라서는 남병(南屛) 정박(鄭璞)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으며, 1776년(정조 52)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에게 나아가 영남 주리론(主理論)의 맥을 잇는 계기가 되었으며, 스승인 이상정의 도학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었으므로 서원에 함께 배향해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28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46세 때인 1795년(정조(正祖) 19) 을묘(乙卯)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 8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방방(放榜)하던 날에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에게 정조가 이주정의 세덕(世德)을 묻자, 번암이 답하기를, “그 글은 대적할 자가 적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글보다 더 낫습니다.”라고 극력 칭찬하였다. 정조가 인재를 얻은 것을 기뻐하여 십일과(十日課)라는 시험을 재차 보이려고 하였으나, 이주정이 사양하고 물러갔다가 이 일이 기화가 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옥중에서 명을 받은 사운시(四韻詩)를 지어 올려 특별히 용서받고 나아갔으나, 스승인 남병 정박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직하고 호상(護喪)을 하러 가서 상사(喪事)에 드는
모든 비용을 손수 마련하였다.
정조의 국상(國喪)을 당하여 가주서(假注書)로 입직하였는데 일을 잘 처리하였다 하여 특별히 내구마(內廐馬)와 후추 등을 상으로 받았다.
1804년(순조(純祖) 4)에 성균관전적에 올랐다가 예조좌랑으로 전보(轉補)되었고,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나갔다.
1813년(순조 13)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고 3년 뒤에 다시 그 직을 맡았는데 이 때 수백 언의 상소를 올렸다.
1816년(순조 16)에 개성(開城)의 소윤(少尹) 즉 경력(經歷)을 맡았으니, 선대의 산소가 황폐해졌고 살던 향리에 아무런 표지가 없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승일 기자 xtls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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