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데이 이동현 기자 |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오우도(oudo) 갤러리 카페는 '다섯명의 친구+섬'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카페이다. 그곳은 가장 먼저 외부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어서 날씨가 좋을때는 야외에서 커피를 즐길수 있도록 되어있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아이보리색의 벽면에 그림들이 전시가 되어 있고 조명이 은은하게 비쳐주는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 겸 갤러리이다. 친구와 연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모습 자체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인다. 한편 이곳에서는 'WINTER ROSES'라는 전시회가 2023년 12월 20일부터 올해 1월 23일까지 전시중이다. 커피를 즐기는 공간이 '갤러리'라는 문화와 접목이 된 갤러리 카페는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투데이 이동현 기자 | 강원도 춘천시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갑 지역구가 '강원도' 선거에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허영 지역구 국회의원과 국민의힘 비례대표 노용호 국회의원이 맞붙고 있으며, 춘천중도에서 그동안 '레고랜드'문제로 3년간 시민단체를 이끌어왔던 무소속 오정규 후보까지 가세해서 가장 핫한 지역구로 주목을 받게 됐다. 특히 국민의힘 비례대표 노용호 국회의원은 1971년 5월 14일생으로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으며 현북초등학교, 현북중학교, 강릉명륜고등학교, 관동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관동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1년 8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53보병사단에서 행정병(일반행정 특기)으로 복무하였으며, 1993년 12월 2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신한국당 시절부터 공채 당직자로 일해 온 정통 정당인으로 정치 경력이 오래되었지만, 출마 경험은 거의 없었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권인 20번에 배정받았으나, 결과적으로 19번 허은아 후보까지 당선되어 아쉽게 낙선하였다. 윤석열 후보가 20대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영 의원이 윤석열 정부 첫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임명
우리투데이 이동현 기자 | 남동아나톨리아 수출협회(GAIB)가 주최.주관하는 트루키예와 대한민국간의 B2B MEETING 행사가 1월 17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 지하1층 다이아몬드홀에서 성황리에 진행중이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트루키예 업체 총 16곳이 테이블별로 회사 및 제품 소개를 위해 앉아있고, 국내 수입업체 및 식품업체 관계자들이 통역사를 통해 상담을 자유롭게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남동아나톨리아 수출협회 뷸란트 가야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행사가 양국의 업체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한 가운데 활발한 미팅이 이뤄져서 감사하다"며, "이번 행사를 준비해준 관계자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한다"고 전했다.
우리투데이 이동현 기자 | 경기도에 2020년 8월 4일 '인터넷신문'으로 등록된 여주저널이 2024년 1월 15일부로 일반주간신문 등록을 마쳤다. 보통은 '일반주간신문'이 추가로 '인터넷신문' 등록을 하는게 일반적인데, 여주저널은 반대의 경우이다. 일부에서는 굳이 인터넷시대에 '지면신문'이 굳이 필요하냐고 비아냥을 하지만 그건 언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다. '인터넷신문'이 처음 등장할때만 해도 마치 '종이신문'은 종말을 맞이할것처럼 떠들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종이신문'은 아직도 존재하고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심지어 그당시 '인터넷신문'들은 오히려 퇴조하는 분위기이다. 종이신문의 경우에는 '인터넷신문'이라는 부가적인 서비스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심지어 종이신문의 한계라는 속보성을 '인터넷신문'을 통해 보완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신문'은 종이신문이 없다보니 '지면신문'이 있는 '인터넷신문'에게 밀리는 법이다. 특히나 지역에서는 그런 부분이 확연히 차이가 나고 있다. 지역에서는 '종이신문' 없는 '인터넷신문'은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번 '인터넷신문' 여주저널이 2024년을 맞아 '지면신문'을 등록한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투데이 이동현 기자 |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지역언론 '강화뉴스' 발행인이 1월 16일 확인 결과 드디어 '김정택 발행인'으로 고쳐져 있다. 그동안 '이필완 발행인'으로 있던 부분을 이제서야 수정한 셈이다.
우리투데이 이동현 기자 | 경기도 고양시에는 '고양신문'이 존재한다. 그런데 정기간행물 등록관계를 확인해보면 일반주간신문은 1989년에 '경기도'에 등록을 하고, 인터넷신문은 '서울특별시'에 등록된것으로 나온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게 가능하다면 굳이 광역단체에 '정기간행물 담당 공무원'이 있을 필요가 있나?
갑진년 우리투데이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무명이 가시고 진리를 밝히는 갑진년 새해가 떴습니다. 음욕보다 뜨거운 불이 없고, 분노보다 빠른것이 없으며 어리석음보다 빽빽한 그물이 없고 애욕의 물결은 강물보다 빠르다. 허공에는 어떠한 길은 없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고는 참된 사물이 될수없고 세상의 모든것 영원한것 없으니 부처님은 내 것이라고 집착함이 없습니다. 나를 알고 내 마음이 작동하는 것을 보면 타인의 마음도 살피게 되니 갑진년에는 지혜로 서로가 상생하고 화합하고 아끼면서 살아가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대승불교 조계종 일운정사 주지 일운
Q. 다문화시대 비전과 프로세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네, 한국은 이제 다문화 시대입니다. 더구나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심각하게 경제에 타격을 주고 나라의 존폐 위까지 언급하는 시국이며, 또한 나라와 나라가 윈윈 해야하는 시대라고 봅니다. 조선소에서는 수 백조원 배를 수주 받아 놓고도 배를 만들지 못해 경제가 어려웠고, 농사와 수산업 또한 이제는 계절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법무부장관도 노동부장관도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야 경제활성화 및 어려운 노동문제가 해결됩니다. 앞으로 다문화 정책이 실용화되지 않으면 한국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저는 국가정보를 다루는 기관에 36년간 근무한 경험으로 국제적 인력문제를 해결해서 어려운 경제를 살리고 21c 다문화시대를 이겨내서 대한민국의 국익으로 승화시키고자 합니다. [ 약력 ] - 전 국정원 36년 처장 - 국제다문화플렛홈 회장 - 국제탐정사연합회 회장 - 이인수 행정사무실
21c 한국의 다문화 시대를 리드할 한족 리슈메이 회장과 (전) 충북경찰청 청장 박기륜 교수를 만나봤다. 박기륜 교수는 다문화인들의 한국에 전문인력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리슈메이 회장과 함께 가기로하고 2023년 12월 22일 개업식에 축하인사차 방문했었다. (박기륜 교수 : 전 충북경찰청장, 전 프랑스 리옹 인터폴 본사 아시아책임자 2년근무) Q. 리슈메이 중앙회장님,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되셨고 다문화를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A. 저는 중국 한족으로서 한국에 온지 8년입니다, 오기 전 한국어를 조금 배웠고 또 영남대학교 국어문화연구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운전면허도 취득하여 다문화인이 원하는 한국 어디든 찾아가 다문화인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한 법무부 비자서류 대행 통역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변호사와 노무사, 행정사들과 함께 밤낮으로 불철주야 노력하여 민원해결 통역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월급을 주지 않고 고용주가 추방시키고자 신고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합니다. 변호사와 노무사, 행정사 사이에서 통역사로서 법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업무를 하고 불법체류자의 억울함을 풀어나가는데 큰일을 하고 다문화
국제공인탐정사관학교 설립을 준비하는 한국판 셜록홈즈 유우종 한국인 호주공인탐정 1호. 한국의 탐정역사를 만들어가는데 평생을 외길 탐정의길로 살아온 유우종 주임교수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Q. 유우종 교수님의 탐정인생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1982년 고2 때 아버지형제가 9남매였습니다. 그중 막내 삼촌이 서울 풍전호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추락사로 사망 후 장조카인 나의 꿈속에 피를 헐리며 억울하다고 약 3개월 동안 나타났습니다. 또한 고향 주변에 지방법원 불법 법조브로커로 인해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는 시골 농부는 피해자와 가해가기 뒤바뀌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구치소생활 후 막걸리에 연연하다 돌아가신 것을 보고 억울한 사람을 줄이고자 탐정의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고2때까지 공부를 안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공부를 안한 분이 아닙니다. 주변 대학교 총장님께 들어보면 고등학교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인이 된 아버지께서 항상 “시켜서 하는 일은 일이 아니고”, “시켜서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큰 깨달음은 삶에 큰 도움이 되어 내 스스로 나의 인생을 선택하는데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