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정보화 시대에 기업리스크 관리시대 및 증거재판주의 시대에 데스크식 변호사가 외국 필드식 변호사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탐정 활용이 필수이다. 따라서 본지는 대한민국탐정진흥원, 탐정기관총연합회와 업무제휴를 통해 2026년 1월호부터 시리즈로 탐정 관련 기사를 본지 지면신문에 지속적으로 게재하기로 했다. 다음은 연재 기사 제목 모음이다. - 탐정업 내에서 전문 분야별 분화(예: 기업 조사, 보험 조사, 가사 조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 디지털 포렌식, 사이버 조사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탐정 활동의 현재 수준과 과제는 무엇입니까? - 현재 탐정업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내부적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탐정업이 변호사, 법무사 등 인접 직역과의 협력은 현재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의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요? - 탐정의 윤리성 확립 및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업계 자율 규제 노력은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 탐정 활동의 성공률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탐정업이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이유와 역할에 대해 회장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십
용인 죽전테라스앤139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직폭력배 연루 용역들의 반복된 폭력 사건과 그 뒤에서 이를 자금·지휘·위임으로 뒷받침한 교보자산신탁,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수사조차 하지 않는 경찰의 알 수 없는 대응과 관련해, 이 사건은 단순한 현장 다툼이나 민사분쟁이 아니고 ‘법 위에 군림하는 무법, 폭력을 휘두르는 기업이 지금도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던지게 만드는 초유의 사건입니다. 이에 용인 죽전테라스앤139 시행사인 주식회사 보정PJT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Q. 본인 소개를 하신다면? A. 본인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죽전테라스앤139’ 주택사업의 시행사인 주식회사 보정PJT 대표입니다. 저는 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교보자산신탁㈜(이하 ‘교보자산신탁’)의 책임준공의무 불이행, 신탁재산 무단 사용, 조직폭력배 등 용역 깡패 동원, 유치권자·시행사·입주민 등을 상대로 한 특수폭행·주거침입 및 점유 강탈 행위 등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교보자산신탁의 갑질과 불법행위로 인해 시행사와 수분양자·입주민, 인근
2년을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실적을 보고 3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임용이 되었지만 결국 2년 만기를 앞두고 안동시로부터 연장불가 통보서를 받아 실직을 했던 오세담 감독이 이번에는 부산진문화재단 소속 백양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기술감독으로 일하다가 이번에는 6개월만에 또다시 재단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아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2026년 1월 6일 인사위원회를 앞둔 오세담 감독을 긴급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정리해봤다. <편집자주> Q.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신다면? A. 2022년 안동시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식 열정 임기제 공무원 퇴출 사건과 똑같은 일이 부산진문화재단에서 또다시 벌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저는 백양 문화예술회관의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2025년 12월 31일 입사 6개월 차인 부산진문화재단 소속 백양 문화예술회관 무대기술감독인 저는 해고 통보를 재단 측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해고 통보를 내린 사람은 단 한 사람입니다. 저의 6개월 수습 기간 평점을 줄 수 있는 해당 팀장이며 또한 나머지 점수도 줄 수 있는 현재 공석인 재단 사무처장의 직무대행까지도 겸하고 있는 인물이 전권을 쥐고 저에게 100점
전라북도 김제시의회가 2025년 12월 16일, 제4차 본회의를 끝으로 제294회 제2차 정례회를 마무리했다. 올해 2025년 마지막 회기인 이번 정례회에서는 2025년도 행정사무감사를 비롯, 2025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 및 2026년도 예산안 심의, 조례안 및 각종 안건을 심의하며 35일간의 긴 회기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행정사무감사특별위원회(위원장 황배연)는 지난달 11월 13일~21일까지 9일간 김제시 본청, 사업소 등 38개 부서와 19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고, 행정 전반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여 잘못되었거나 불합리한 행정 사항 총 773건(시정 78건, 주의 34건, 개선 493건, 권고 103건, 보고 65건)을 지적, 집행부에 시정 등을 요구했다. 또한, 시의회는 상임위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를 거쳐 제4회 추가경정 예산을 기정예산 대비 0.44% 감액한 1조 2,704억원으로 의결했다. 아울러 2026년도 본예산은 2025년도 본예산 (1조 1,285억원) 대비 1.3% 증가한 총 1조 1,430억 원으로 확정했다. 본지는 이날 김제시의회 문순자 행정복지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통
본 인터뷰는 충남 보령시에서 벌어진 보령시청과 보령경찰서가 지역주민을 어떻게 감시.감독하는지에 대한 실증적 증거를 통해 자세히 살펴봤다. <편집자 주> Q. 본인 소개를 하신다면? A. 저는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에서 12년째 거주하고 있는 백순실입니다. 농협조합원이며 농업경영체 등록자로서 농원을 운영하는 농부입니다. Q. 휴대폰을 해킹당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아왔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일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지난 3년여 동안 제 휴대폰이 해킹당한 발단은 저의 토지와 조한연 토지의 경계가 있고 그 경계 바로 앞에는 조한연 토지가 있고, 그 토지에는 조한연의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비닐이 너덜너덜 떨어져 바닥에 가득하고 썩은 폐기물과 폐플라스틱과 스치로폼 부스러기가 있어 바람에 날라와 저에게 피해를 줬어요. 비닐을 다시 씌우든 치우든해야 바람이 불면 저의 토지에 전면에 날라와 흙속에 파묻히고 밟히지 않도록 조치 요구했으나 조한연은 자연현상이라며 방치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2년 가까이 견디다 못해 보령시청에 만원을 제기했어요. 아마도 조한연은 보령시청에 제기한 민원을 문제삼아 이웃한 저에
전북 익산시 주현동 174-4에 위치해 있는 '주현교부'를 2025년 11월 9일 방문해 이교부씨를 만났다. 매주 일요일마다 모임을 갖는줄 알았던 본지 기자는 이날 한달에 한번, 첫번째 일요일에만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 발길을 돌리려다가 이교부씨를 만나고 가려고 면담신청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4층에 있는 이교부씨 방에서 독대를 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인터뷰는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편집자주>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Q, 간략한 본인 소개를 하신다면? A. 저는 1940년 음력 4월 28일생으로 전북 익산시 왕궁면 흥암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농부였습니다. 저는 어려서 어머님의 젖이 부족하여 다른 분의 젖을 얻어먹고 암죽으로 자라난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정 말기에 기억나는 것은, 왕궁 초등학교 창시자의 기념동상이 동(銅)이라고 떼어 갔으며 집집마다 구리, 놋쇠 그릇, 수저까지도 거두어가고 공출로 거두기 위해 일본 순사들이 칼을 차고 면서기들과 가택 수색하여 벼가 있으면 빼앗아 가는 것을 뒤따라 다니며 구경을 했고 저의 집에도 신을 신고 들어와 수색하던 것을
10월 25일 대전지방법원에서 1심 무죄, 2심 무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김을동 전 국회의원이 대법원에 항소하길 바란다는 전재진 작가를 만나 그 사연을 듣고자 이곳 충남 홍성군 광천면을 본지 기자는 10월 30일 방문했다. 그 충격적인 역사 인터뷰 전문을 게재했다. <편집자 주>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전재진 대표는 10월 10일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본지 취재본부 사무실에서 "이제는 말할수 있다"라며 "우끼시마호는 자폭장치를 안고 출항했다"고 밝혔다. < 편집자 주>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Q. 본인 소개를 하신다면? A. 저는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전재진 대표입니다. 지난 오랜 시간 오로지 우키시마호 진상규명을 위해 제 인생을 바쳤으며, 이제 드디어 얘기할때가 된것 같습니다. 우키시마호는 자폭장치를 안고 출항했으며 폭침된게 맞습니다. Q. 충격적인 내용인데 그점에 대해 한말씀? A. 거두절미하고, 우키시마호 기관실 쪽에 폭탄을 장치했습니다. 검은 페인트를 칠해 배 이름을 지웠습니다. 우키시마호는 마이즈루만으로 항진해 들어갈 때 안전항로를 항해했으며 우키시마호가 군함기를 앞세우고 마이즈루만으로 항진해 들어갈 때 앞에는 두 척의 호위정이 전진해 들어갔으나 조용했을 뿐 기뢰와 충돌하지 않았으므로 우키시마호는 안전항로로 항해했습니다. 「소해완료」라는 신호를 받고 입항했는데 당시 우키시마호 해군승조원이었던 와지마 사다오(倭島定雄, 항해사, 해군 대위)가 마이즈루방비대로부터 「소해완료」라는 신호를 받고 입항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