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데이 차한지 기자 |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수년간 아스팥트에 한을 묻고 피를 토하는 시간을 보내고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법정소송에도 굴하지 않는 대한의 여전사 롤콜문화재 위명순단장의 생생한 현장수기를 기록에 남기고 먼 훗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기고문을 받아 연재하기로 한다..
너 해봤어, 회오리가 되어 작은점 하나가 회오리 바람이 되었다.
0000년 3월 31일 밤 11시 24분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쓰려니 마음이 벅차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일을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 너 해봤어, 회오리가 되어 “나 한테 걸리면 죽는다?”
날자와 시간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ㅁㅈㅇ” 의 이름을 보면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박근혜후보와 ㅁ가가 토론회때 ㅁ가가 침해가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박근혜대통령이 탄핵되고 ㅁ가가 청와대 후보로 나온 얼굴이 내 눈에 대통령으로 보이는 걸 무시했다.
설마,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굉장한 불안함은 어쩔수없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잊어버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청와대로 들어간다는 2017년 5월 10일 취임 방송을 보고 불안하고 잠이 안왔다.
문뜩 2012년 대선 재외투표에서 ㅁ씨 투표율이 72.1%로 나왔다는 것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높게 나왔을까? 그것도 재외 투표율이 ? 무슨일일까? 그동안 투표율이32%에서 왔다갔다한걸로 기억이 되는데,,,,
여태껏 처음있는 일이기 때문에 뉴스영상에 올라온 투표율은 갑자기 이게 맞아?.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ㅁ가 이름을 풀어보면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문제가 많은 인간, 문제가 많은 인간, 문제가 많은 인간,,,,,,,,
나는 그 때부터 더 잠이 안오고 불안함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나만 불안한가?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궁금했다.
아무튼 뭔지는 모르지만 불안하고, 일이 손에 안잡혔다.
청와대 들어가는 사람 때문에 불안하다니? 그런데 왜? 내가 불안해야되지?
내가 왜???? 이런 마음은 처음이다.
그 때 (재외 투표율을 tv에서 보고)부터 ㅁ가를 주시하게 되었다. 뭔가 일을 저지를 인물같았다. 추상적으로 보이겠지만, 그때는 정말 불안해 하고 있었다.
아무튼 불안함은 증폭되고 있었다.
이때만해도 투표, 개표참관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그런게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 관심이 없었다.
방송에서 토론회를 하고 있었다. 배철수가 진행하는 ㅁ가와 시민과의 대화? (2019년 11월 19일) 저것도 토론회라고? 아무튼 불만 반, 틀안에서 짜고치는 고스톱 같았다. 대학생들 페널 출연진들은 삥둘러 앉혀놓고 웃기지도 않는 쑈를 보는 것 같았다. 무슨얘기를 하는건지? tv에 ㅁ씨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비치는 순간 깜짝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악마(상)으로 변해 있었다? 취임식하던때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하고 두손으로 눈을 비비고 내 양쪽 눈을 다시씻는 행동을 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쩜 이런 소름이 끼치는 일이 ,,,. 그리고 ㅁ가의 행동에 말할 수 없는 걱정이? 그 악마상을 본 후에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어느날 부터 내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좌빨, 좌파, 빨갱이, 너무 이질감이 느껴져서 그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
무슨 공산당이야? 카톡으로, 문자로, 전광훈 목사의 설교가 계속올라 왔고 나는 계속 지워버렸다.
전광훈목사는 누구고?, 또 이춘근박사는 또 누구며?, 청와대 광야교회는 또 모며?
계속 새로운 제목의 유투브 내용들은 나라 걱정되는 썸네일에, 나는 폰을 내용들을지우면서 멀쩡한데 뭐가 어떻다는 거야. 새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무작정 지워대고 있었다.
아무튼 마음은 불안했지만 다 무시를 해 버렸다.
몇 달을 그렇게 넘어갔다. 갑자기 내가 내눈으로 확인을 해보면 될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내 자신이 창피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에라 행동으로 옮기자. 현장을 가자.
유투브 검색으로 집회장소를 확인하고, 추운겨울이었기 때문에 옷을 단단히 껴입고 광화문으로 방향으로 전철을 탔다.
쿵쾅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광야교회를 물어 물어 현장에 도착했다. 청와대를 평생 처음으로 가는길이라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갔다. 어렸을 때 서울 구경하러 창경궁 담벼락을 따라서 엄마랑 가족들이랑 가족나들이를 와보곤 처음이다.
분수대 방향에 청와대는 처음 발길이라 앞으로 어떤일이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저녁예배를 드리기전 저녁식사를 마치고 쉬는 시간 이었다.
추운겨울 날씨에 사람들은 눈에서 뒹굴러도 안추울 정도로 옷을 몇겹으로 입었는지 껴입고 껴입어서 하나같이 행동이 둔해서 움직이기도 불편해 보였다. 어그적 거리고 걷는 걸음걸이가 딱 그 북극에 귀여운 펭귄들이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목도리로 똘똘싸메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몇겹에 바지를 입었는데도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가 여전히 냉하기 때문에 오래 앉아계시기엔 추우신지 푹신한 엉덩이 깔개를 얹고 또 그위에 얹어서 몇개를 겹쳐서 앉고는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도란 도란 다른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라도 할까봐 그런지 아주 조용히 얘기중 이었다.
어떤분들은 주위를 아랑곳 하지않고 두손을 쳐들고 하나님!! 소리를 높여서 기도를 계속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두손을 높이 쭉 힘있게 하늘을 향하여 들고, 얼굴도 위로 들고 하나님 저왔어요. 꼭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방언기도를 하는 분도 계시고,,,, 나는 옛날 초신자때의 기도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일주일 동안 부흥회를 하는 것처럼 기대도 되고 내 마음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조용히 주위에 상황을 살펴보고 난후 이단 집회는 아님을 확인을 한후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나누는 말들에 귀가 솔깃해서 기도는 하는둥, 마는둥 하며 눈을 떴다 감았다 상황을 자꾸 보게되었다.
(청와대 광야교회는 경복궁 역 4번출구로 나와서 청와대 분수대 광장쪽으로 100m 정도?가다보면 경찰 대형버스들이 쭉 도로에 세워져 있었고, 경찰버스들이 주차한곳을 지나서 차도에 2개 차선을 플라스틱으로 된 빨간색, 파란색 의자들이 즐비하게 줄을 맞쳐서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식사를 배급하는 차량도 나와있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어서 사람들은 종이 커피잔을 한잔씩 들고 마시고 있었다.)
예배는 시작 되었고, 어느새 그 많은 빈의자가 많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예배 중에 목사님의 말씀으로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주사파,,,,정말 큰일 이구나.
그동안 뭔지 모를 불안감이 이거였었구나? 나를 괴롭혔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진짜 빨갱이가 있네 ? 이질감을 느꼈던 그 좌파, 빨갱이, 종북좌파,,,단어가 이제는 내입에서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저녁 예배에 참여하면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당장 무언가 해야 되겠다는 불같은 마음에 광야교회에서 봉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인원이 차고 넘친단다.
봉사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튼 나도 무언가를 시작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 강하게 괴롭혔고. 그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가 오히려 좌불안석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저녁 예배만 드리다가 밤에 철야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철야를 시작할때는 청와대 광야교회에 있던 천막과 텐트들을 세종문화회관 공원쪽으로? 그러니까 세종문화회관 쪽 공원으로 이동시킨, 아니 분수대에 있는 청와대 광야교회가 문ㅆ한테 쫓겨난 날이 나의 첫 예배를 드리던 날 이었다.
어떻게든 ㅁ씨는 청와대 광야교회를 없애기 위해서 온갖 악한 수단으로 광야교회를 흩트러지게하고, 모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을 때 였다.
갖은 피박을 만들어 괴롭히고 있었다. 도로에 팬스를 몇m씩 뛰엄 뛰엄 팬스를 쳐놓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것도 검문을하고 밤에 화장실도 검문을 걷혀야만 갈수 있었다. 제제하는 수위가? 늘어나고, 높아지고 있었다.
청와대 광야교회에는 트럭위에 대형모니터를 설치하고 그 앞에 목사님들께서 예배를 진행하시고, 도로가 옆에는 작은 천막이 2개 정도만 있었다. 올겐과 방송장비 컨설박스만 천막안에 설치를 하게끔 허락을 해서 비 좁은 천막속에서 몸을 좌우로 돌릴때도 옆사람과 부딪치며 예배 진행을 돕고 있었다. 차도로 두개를 열어주고 그곳에 의자를 나란히 옆줄과 앞줄에 맞추어 놓고 그리고 작은 천막안에는 행사 진행팀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들어갈수는 없었다.
예배를 드리고 올겐을 보관하는 곳이고 예배를 드리고 난후에는 올겐과 방송장비등이 비나 눈에 젖지 않게 예배에 필요한 중요장비들, 비품들을 보관해두는 천막으로 쓰이기도 했다.
아마 2019년 12월쯤? 전광훈목사 사모님께서 연주하는 오르간이 보관된 천막과 예배드릴 때 쓰는 집기류만 넣어둘수 있는 천막만 있었다.
하루는 겨울날씨인데도 비가 무겁게 주룩주룩 많이도 내렸다.
갑자기 내린 비에 몸이 땅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보도블럭 사이 사이 골을 타고 들어가는 무거운 비에 겉옷과 바지까지 축축하게 젖어서 내 바지를 땅에서 잡아끄는것처럼 마음까지 꺼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겨울날씨가 다 을씨년 스럽겠지만, 겨울에 내리는 비가 흔치않기 때문에 그런지 기도하시는 분들은 가져온 소지품들을 챙겨서 촘촘걸음으로 어디론가 빠져나간 자리는 그날따라 훵하게 느껴졌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비에 옷이 젖을세라 비닐 우비를 잔뜩껴입었다.
옷위에 비닐 우비를, 또 그 위에 두 개, 세 개 겹쳐서 입고, 단추로 고정 시켰다.
나 또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우비가 비에 젖고 얼어서 일어나거나, 앉을때도 불편하고 비닐이 찢어져서 너덜거리고, 비닐소리가 둔탁하게 바스락 거렸고, 걸음을 옮길 때 비닐이 펄럭거리며, 한걸음, 한걸음이 둔탁하고 힘들게들 걷고 있었다.
회색 비닐우비는 독일군인들을 연상케했다.
머리에 철모만 쓰면 영화에서의 후퇴하는 독일군의 패잔병들이 따로 없었다. 군화발로 질퍽대는 전쟁터를 걸어가는 축쳐진, 딱 패잔병들의 모습.
어쩜 우비가 독일군 그 비옷과 색깔까지 너무나 똑같았다.
그런 상황도 아랑곳 안하고 열심히 나라를 위해기도에만 힘쓰는 이분들의 발을 잡아놓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미친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지? 이해나 할까? 숙연해지고 그분들 그누구도 화난 얼굴은 없었다. 온화하고 환한모습으로 서로 배려하고, 먼저 손내밀고 배푸는 분들이,,,
그분들이 보고싶다.
갑작스런 겨울비를 피할려고 그 작은 천막에 들어갈 틈을 찾고있었다.
위에서 밑에까지 허술하게 천막과 천막사이을 살짝 묶어놔서 얼마든지 조그만 통로?로 삐집고 들어 갈수 있었다. 그런데 깜짝놀랐다. 그곳엔 여러사람들이 비를 피하려고 좁은 공간은 차마 들어가서는 안되는데, 하면서 나는 무거운 발을 천막 안쪽으로 딛기가 민망스러웠지만 눈 딱감고 한발 집어넣고, 누군가가 나가라고 할까봐 또 한발을 얼른 집어놓고 시침뚝떼고 몸을 천막안으로 꾸겨집어넣었다.
땅 바닥은 질퍽대고, 홈이 패인곳에 물이 차서 흙탕물에 눈까지 녹아내려서 발 디딜곳도 없었다.
가로수 주위에 나무와 나무사이를 버팀목 삼아 천막을 쳐있는 장소는 울퉁불툭 튀어나온 돌 때문에 발을 편히 놓을때도 없었고, 비에 젖은 나의 어그부추는 그바닥에 흙 물을 빨아들여서 발이 빨리 시려왔고, 어느새 얼어버린 발을 동동구르고 있어야만 했다.
춥고 몸이 떨려왔지만,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기도에 힘쓰고 있어서 아무 추운 내색도, 불편함도 표출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서로 목례로 답하고 웃음을 미소로 보내며 눈 인사를 하고 있었다.
대단한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 이었다. 벌써 오랜기간을 쉬지않고 기도에 애쓰는 분들을 보니 같은 동질감에 내가 불편해도 앞에 사람을 위해 자기 자리가 더 편하다고 권하고 그 자리를 내어 주기도하고 끌어준다.
참 정말 놀라울정도로 대단해 보였다. 집 걱정은 아예 내다 버리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와 아 정말 아름다운 풍경.
그 청와대 예배현장은 정말 뜨거운 눈물이 절로나오게 하는 이 장소는 감동의 물결이였다. 얼마나 추울까? 꼼짝안하고 기도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 하나님 어찌 이런일이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알게되어서요,,,,,,,
내가 너무 늦게 알았다는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그날도 저녁예배가 끝나고 밤 철야 기도를 하기위해 남아서 의자에 앉아 기도를 하다가 겨울추위에 나는 더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비닐천막으로 집기들을 덮어놓은 커다란 짐들사이를 창피한줄도 모르고 눈, 바람만을 피할수만 있다면 무조건 비집고 들어가만 했다.
그런데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밤에 청와대 광야교회에는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국민들을 감시를 하고 있었다. 인원은 몇 명인지, 새로운 사람은 누군지? 정보관들은 이곳 저곳을 2명 이상이 함께 행동을 하며 상황을 보고 하고 있었다.
몇일 있다보니 하나씩 정보관들의 동태가 눈에 들어왔다. 저들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겠지. 경찰복을 입은 사람만이 경찰이 아니고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경찰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청와대 앞에 분수대 공원이 있고 공원 건너편에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그 화장실까지 가는게 어려웠다. 검문을 심하게하고 어떤때는 임시팬스를 쳐놓고는 아예 기가 먹었는지 다른곳으로 화장실을 가라고 아예 사람취급을 안해주었다.
그 나쁜 정보관이 교대를 하고 다른 정보관이 올때를 기다렸다가 검문에 응하고 겨우 화장실을 가게 되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동안 철야를 하시던 어떤분은 그 정보관들하고 친해서 검문도 없이 무사 통과를 해주기도 했다.
그 공원 화장실에는 밝게 전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고, 히터가 밤새 켜져있어서 어찌나 따뜻하고 행복한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다음에 화장실 갈때는 박스를 깔고 쉬러 가고 싶었다.
따뜻한 화장실을 나가기가 너무 두려울 정도로 싫었다.
밤이 어두운 나무가 있는 공원에 혼자 행동은 위험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뒤로 하고 갈수밖에 (조금 더 머무를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다.)
다시 추운데서 떨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혼자생각에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집에 가지,,,
한번은 철야를 기도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깨어나니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도로에 얼굴을 내밀고 자고있었다. 너무 기가막힌일이 아닌가?
눈을 뜨고 보니 말도 안되는 나의 처한 상황이 어떠한 설명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럴수가 있을까?
아뿔싸 이런,,,,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얼굴에는 하얗게 성에 서리가 눈썹 머리카락에 끼어 있었다.
청와대 보도블럭은 너무 너무, 얼음장돌에 추웠고 얼굴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찔했다. 여기서 이 보도블럭에서 잠을 잤다고 이 추위에?????
그런데 신기하게도 편안하게, 잠을 잘잤다고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을 누가 이해를 할까요? 솜털에 쌓여서 잠을 아주 잘잔 기억 밖에.
그날 경험을 잊을수가 없었다.
내가 잠이 들은 공간은 쪼끄만 움막 같은곳이고, 누가봐도 들어가 잘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집회에 꼭 필요한 피켓등을,,두는 곳에 비닐로 된것들로 겹겹이 덥어 놓아 둔곳에는 조그만 틈새들이 있었다.
밤새 철야를 하다보면 갑자기 잠이 쏟아져서 어딘가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을때가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 길이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막혀서 몇시간 동안 차안에서 있을 때 자동차를 버리고 몸만 빠져나가고 싶을때랑 똑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졸려서 돌아버릴 것 같은, 눈을 감지않으면 어떻게 될것같은, 그 밤에 추위에 갈곳도 없고 집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은 정말 난처했었다. 그곳을 지키며 기도하시는 분들만 아는 비상 처소?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설마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하는 장소들이다.
철야 인원들이 많으면 그 장소도 들어 갈수가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잠이 들었는데 자는 동안은 정말 행복하게 잘 자고, 솜털속에서 잔것처럼 추운지도 모르게 게운하게 잘 자고 ? 일어났다. 그리고 몸이 아픈곳이라곤 전혀 없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이해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밤에 천사들이 찾아온다? 매일 철야에 추위에 지쳐있는 분들을 위해 밤마다 맛있는 죽이나 국, 뜨거운 차 종류를 끊여서 챙겨오시는 분들이 계셨다. 겨울 추위에 달달 떨다가 밤 12시경쯤
추위를 달래며 간식을 먹는 그 시간은 횡재한것처럼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세상에 부러울게 없는 것처럼 넘 맛있고 언제가 부터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 귀하신 분들께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청와대 광야 교회에 철야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때가 속히 오기를 기다리며 많은 분들이 기도를 했었다.
자유 대한민국에 가치관, 이념이 맞는 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나는 기쁘고 행복했다.
이분들의 기도 덕에 우리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분들이 내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이쁘고 귀하고 아름다웠다.
내 가족들은 얘기가 전혀 안 통한다. 나를 지금까지도 똘아이로 보고 있다.
제 정신이 아닌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옆에서 철야를 같이 하시던 분들이 많이 걱정을 하셨다.
“아니, 입 돌아가면? 어쩔려구” “그 추운데서 잠이들면 어떻하냐”고, “어떻게 위험하게 잠이 들었냐구” 하시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끔찍하다.
어떻게 그 환경에서 살아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잠이들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춥거나, 아프거나, 감기가 걸리거나, 기침이 나거나, 아무튼 거뜬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몸이 가벼울수가 있을까?
시골에서 농부들이 일하다가 너무피곤해서 아무데나 널부러져 자는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내 모습이 그랬을 것이다.
이때가 2019년 12월쯤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철야를 하다가 추위에 떨어서 그런지, 몸이 너무힘들어서 침도 맞고, 뜸도 뜨고, 해도 그 때뿐이었다.
몸이 따라 주질을 않았다. 멈춰야 겠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때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애쓰는 곳은 s교회 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새로운 일을 계속 찾고 있었다.
s교회로 가서 탐색을 하고 새벽 예배부터 하기로 마음먹고 이사를 교회옆으로 했다.
새벽예배를 드리러가면 s교회에 단 한사람도 아무도 없을때가 많았다. 교회전체가 청와대 광야교회에서 예배와 봉사를 하러 동원되었던 것 같았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담당 구역에서 목사님 내외분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목사님 내외분은 많은 교인들 챙기느라 아주바쁘셨다.
s교회에서 촬영을 돕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봉사할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고 하셨다.
교회쪽에서 나를 볼때에 사실 그때에는 새로운 사람이 교회 일을 돕는다고 하면 많이 조심스러워 하였다. 이단 또는 가짜 성도라고 의심을 받을때였다? 내 교회에 예배를 지키고 또 s교회로 오는 분들도, 계셨고 갑자기 나라를 위해 많은 교인들이 s교회로 등록을 많이해서 교인들로 차고 넘쳤다. 하루종일 예배만 드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있는 교인들은 꼼짝을 않고 예배에 전념했다.
대단한 뜨거운 열기로 가득찬 예배는 어떤 전율이 감돌았다. 교회안은 하루종일 교인들로 가득찾고 화장실은 고장나서 물이 넘치고 발딛을곳도 없는데도 뭐 그리 좋은지?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교회를 지치기위해 밤에 철야를 하시는 분들로 교회는 항상 북새통을 이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단 말인가? 낙심이 되었지만 이대로 있을수는 없었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20대 때 방송장비 이케가미로 촬영을 하며 전국을 누비든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 촬영, 유투버를 하자!!
에스더가 생각났다 . 이때를 위함이란 생각이,,,, 행사촬영, 취재, 선교지 촬영, 설교테잎 제작,,,,,(바로 이때를 위함이야!!!) 생각이 굳쳤다.
아!!! 나도 이 광야교회의 기도와 설교를 24시간 나라를 위해 걱정하고 현장에서 하나님께 부르짓는 절실한 모습을 외부에 알려야지 훌륭하신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고 국민들고 동참하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나 낮이나 항상 현장에 계시는 유투버 한분이 계셨다.
밤마다 청와대 광야교회를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24시간을 추위와는 전혀 무관하신분, 집회현장, 기도의 현장, 광화문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제일 많이 촬영하시는 올프레스 방송, 남자분이 하루도 안빠지고 정말 열심히 촬영을 하셨다.
도대체 저분은 언제 주무시는지? 궁금했다. 잠도 없이 청와대, 광화문에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계신 분,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도 국민들에게 현장을 알리는 유투브를 하자.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을지로에있는 애국자 사무실인데, 한번 오셔서 회의에 참여,하라고 하셨다. 내가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반가움에 달려갔다.
그후로 을지로 모임 사무실에 몇번 갔었고, 그 사무실에서는 부정선거에 앞장서 계셨던분들이 선거에 문제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을 하고 계셨다.
맞은편에 사무실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사무실에는 k집사라고 전라도 전주에서 올라와서 부정선거 집회를 하고, 그 사무실에서 부정선거 피켓을 만들고 시간이 늦어지면 그 세멘 바닥에서 전기장판 하나 깔고 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라도에서 여기까지? 와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구나,
지역감정을 버리고 내가 일을 같이 돕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그후로 k집사가 가는곳을 같이가게 되었다.
어느날 k집사 일행가 같이 약수역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예배도 드리고, 회의를 하고, 그 교회 목사님과 얘기를 하게 되었다 .
목사님이 어제 밤 꿈을 꾸었는데 나와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났다고 꿈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하면서 엄청이나 반가와 하셨다. 같이 나라를 위해 일을 하자고 했다.
나는 너무나도 반가웠고, 그리고 그 목사는 내가 한 살 어리니까 동생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목사이니까 잘 섬겨달라고 덧붙였다.
그 목사는 우리나라에 부정선거를 미국에 알리고 싶다고 하면서 유투브를 시작하라고 권했다.
우리 나라의 부정선거를 미국에 같이가서 알리자고 했고, 촬영에 필요한것들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리고 빨리 유투버를 하라고 독촉까지 했다.
약수역에 있는 폰가게에 핸드폰을 개통하러갔다.
그런데 빨간불이 켜졌다 챙피하게도 말이다.
신원조회를 하던 사장님이 빨간딱지를? 해결해야된다고 하셨다. 이게 뭔일인가 싶어 역추적을 했는데 회사를 하면서 파산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몇 년동안 고생하다가 변호사를 통해서 빨간딱지를? 다 해결했는줄 알았는데
아뿔사 우째 이런일이 신용이 안되서 lg폰도 안되고, kt 여기도 안되고, sk도 안되도, 하루종일 사장님께 죄송하고 미안하고 아고 그날 생각하면 쥐구멍 찾고 싶은 날이었다.
어찌어찌 해서 개통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개통을 할수있게 되었는데 폰 금액을 반을?얼마는 현금으로 결재를 해야된단다. 그리고 나머지는 24개월 할부가 된단다. 어우 챙피해서 아무튼 현금을 여기 저기에서 빌리고 해서 갤럭시 20 그 당시 해상도가 최고좋은 것을 택해서 폰을 구입하는데 하루종일이 걸렸다.
어찌 폰 하나 구입하는 일도 나에게는 쉬운일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왜이리 어려운지 참 말로 너무 힘든 하루였다.
12시 점심때 가서 저녁6시30분이 넘어서야 핸드폰 개통을 마치고 지쳐버렸다.
유투브를 시작하는데 시작부터 또 왜 이리 어려운지? 상상을 못했던 일로, 하루를 다 보내고 LG폰을 손에 넣고는 드디어 유투브를 시작할수 있겠구나 안심이되고 한편 행복했다.
유투브를 처음 시작 할때는 정말 어려웠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실방을 할수있게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y교회로 빨리 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하던일을 멈추고 교회에 도착했다. 회의에 참석을 했다. 나도 의견을 낼려고 손을 들고 말을할려고 입을 떼는 순간 “위집사님은 나가서 커피 준비해 주세요.” 어느날은 “물을 따라 주세요” 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밥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또 급하게 오라고 해서 가면 그날도 밥 준비하라하고 한두번도 아니고, 주문한 건강식품 물건이 없어져도 모른척, 날이 갈수록 가관도 아니었다. 이번 집회때는 전국 대학생들이 300명? 이 몰려온다고 구라, 참석인원은 1~3사람 거짓말을 너무해서 화가나신분들이 늘어났고, 그 목사와 자주 다투고 같이 일할수 없다고 나가버렸고, 과천 중앙선관위앞에서 집회할때도 위집사 도와야 된다고하고는 후원도 받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한테는 빵조각 하나 없었다. 본인이 집회를 개최하는 사람처럼 의논 한마디없이 모르는 사람들을 집회에 세우고 우리의 계획은 무시한체 차량집회도 본인이 지휘하고, 체면치례만,,,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일삼았다.
“위집사는 왜 s교회목사님 말씀을 안듣지?” “그게 무슨말인가요? 나는 그 목사님을 한번도 뵌적이 없는데요” 어떻게 s교회 목사님 말씀을 안듣는다고 말씀하시나요?“
했더니 “본인말을 안듣는 것은 그 s교회목사님 말을 안 듣는거라고 했다. ” 어이가 없는 행동과 말은 그 뒤로도 계속되고 있었다.
한번은 s교회에서 인터뷰?가 있다고 밤10시에? s교회 스튜디오로 오라고 해서 가면 다른 유투브한테는 촬영시키고,,,,등등 할얘기가 많지만 여기서 줄인다,,,,하는 행동이 너무 지나쳐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과 상황을 국민들게 방송하겠습니다. ”했더니,,,?,,, 싹싹싹?
그뒤로 만날일이 없어서 너무 너무 살 것 같았다.
s교회 스튜디오에서 만난 전도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이후로도 다른사람들은 유투브 셋팅을 정말하루종일, 밤새 가르쳐주어도 현실에서 쓸수가 없는데 그 전도사님은 3분이면 나를 이해를 시키며 가르쳐주었고, 나도 바로 내꺼로 만들수가 있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다. 촬영하다가 모르는거 들고 뛰어가면 3분이면 OK, 목사님이 되시고 한번도 뵈었다.
항상 건강하시고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밤 낮없는 멋쟁이 목사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