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로에 거주하는 대한체육회 강원당구연맹 전 배동천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손쉬웠다. 그 근처에 5층짜리 집이 없었기 때문에 한눈에 저곳이라는 확신을 가질수가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수석이 온 마당에 빼곡히 있었고, 인터뷰를 마치고 뒷편에 작업실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곳곳에 잠겨진 자물쇠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정말 빼곡하게 진열된 각종 '문화의 보고(寶庫)'였다. 필자는 이곳에 있는 작품들을 세상에 보여줄 날이 조만간 올것을 확신하며, 짧은 두시간의 만남을 끝마쳤다.<편집자주> |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Q. 우선 본인 소개를 하신다면?
A. 저는 1947년생으로 대한민국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몸으로 경험한 산증인입니다.
특히 대한체육회 강원당구연맹 회장을 하면서 당구계에서는 전국적으로 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현재는 세계수석박물관(석촌수석갤러리)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림 및 작사 등 예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 막내 삼촌은 전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지난 2010년 2월 23일 세상을 떠난 배삼룡 선생이며 코미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아직도 우리 국민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을겁니다.
이곳 세계수석박물관에 배삼룡 선생 추모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Q. 시인으로 문단 데뷔도 하셨는데?
A, 저는 지난 1978년도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수석에 신경을 쓰느라 많은 작품을 쓰지는 못했지만, 작시 ‘소양강 나그네’만큼은 애정을 갖고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목소리에 맞는 남자가수를 찾고 있는데 강원도 출신이면 더욱더 좋을 것 같습니다. 여성목소리를 담은 ‘소양강 나그네’도 있지만 ‘소양강나그네’는 남자가수가 불러야 제격이며 가사에 인생을 담아낼 수 있는 남자가수면 더욱더 좋을 듯합니다.
소양강 나그네가 방송에 어느 정도 알려지면 그 가수를 강원도 홍보대사로 추천을 하려고 합니다. 곡의 흐름은 ‘소양강처녀’를 만나는 남자의 심정을 담았습니다.
가수 김태희가 부른 ‘소양강처녀’는 강원도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소양강 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969년 반야월 선생이 작사를 했는데 작사의 모토는 '해질녘 소양강의 아름다운 풍경에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소양강처녀의 애절한 마음'을 녹여 낸 노랫말입니다.
'소양강처녀’ 가사 중에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나 소양강 처녀’로 이어지는 가사가 나옵니다. ‘소양강나그네’는 떠나고 오지 않는 애타는 소양강처녀의 심정을 담아 소양강에서 추억을 더듬는 남자(나그네)의 심정을 가사로 담았습니다.
2절가사 중에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에 소양강나그네는 “그 약속 바람 되어 흩날린 애증의 소양강에 그리움에 다시 찾은 소양강나그네”로 가사는 대칭을 그리고 있습니다.
곡의 모토는 강원도 동강에서 그렸습니다. 동강은 경치가 너무 좋고 하루가 모자라 텐트를 치고 3박4일 동안 시상을 적고 메모하고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지금도 ‘소양강 나그네’ 외에 ‘동강의 여인’ 노랫말도 있습니다. 이 가사도 곧 작곡가를 만나 강원도의 아름다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Q. 수석에 관해서 한말씀 하신다면?
A. 제가 돌과 접하게 된 것은 1970년부터입니다. 춘천은 강과 호수가 많아서 제대 후에 배낭 하나 메고, 산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다니면서 돌의 매력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게 벌써 50여년입니다.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족과 함께 산 게 아니라 돌과 함께 살았다고 할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돌 때문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수석의 받침대(좌대)를 만들기 위해 박물관 옆 작업장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어떤 날에는 아내가 ‘돌이 좋아. 내가 좋아’ 묻기도 한다며 그런 질문이 가장 곤란합니다.
인생 중반에 가산건설(嘉山建設)이라는 건설회사를 차려 대표이사로 아파트, 다세대 빌라를 지어 공급하는 건축업자로도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건설회사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시행사 상임고문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모조리 수석구입에 사용됐습니다.
자그마치 44개국 이상을 돌아다녔습니다. 수석이 많이 나오는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남미 대륙을 많이 방문했으며 유럽을 비롯해 이웃 나라 중국도 수차례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은 수석이 세계수석박물관(석촌수석갤러리)에 3,500여점이 모여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에서 돌 때문에 비행기가 이륙을 못 할 뻔한 촌극도 있었습니다. 수석을 포장 하고 당시에는 20kg정도가 용량 한도였는데 40kg 무게를 실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대한항공 직원이 브라질로 날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돌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영원하지 않기에 기부체납 등 수석을 사회로 환원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갈래로 찾고 있습니다.
Q. 당구에 대한 얘기를 하신다면?
A. 언젠가 당구 선수 3명이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서는 저에게 강원도 당구연맹 회장을 맡아 달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서류에 싸인을 했습니다. 그 뒤로 강원도, 지금은 강원특별자치도이지만 당구대회 하면 양구나 태백산 등 강원도에서 많은 당구대회가 벌어졌습니다.
사실 당구의 불모지와 같은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전국 단위의 당구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당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당구분야에서 제 후배이긴 하지만 이상천이란 세계당구월드컵을 우승한 우수한 당구선수도 있고, 최근에는 대한당구연맹이 국회의원과 당구 종목의 제도적 기반 조성과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당구는 스포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생활체육으로, 국민 건강 증진과 여가 문화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마지막 꿈은 이곳 강원특별자치도에 '당구실내전용경기장'이 건립되기를 희망합니다.
전세계 최초, 국내 최초로 당구실내전용경기장이 강원특별자치도에 생긴다면, 아마도 강원특별자치도는 당구의 메카가 될것입니다.
Q. 차후에 추가로 인터뷰를 진행할것을 약속드리며 마지막으로 한말씀?
A. 며칠뒤에 대통령 선거가 있고, 차기정부에서는 이곳 강원특별자치도에 많은 지원을 해줬으면 합니다. 강원특별자치도는 대한민국의 허파와도 같은 곳입니다.
많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환경적으로 매우 중요한곳입니다. 하지만 그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겪고 있고 나날이 젊은 사람은 줄어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가 젊은이들이 많이 올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교통 환경도 좀더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먼곳을 방문해서 인터뷰를 진행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차후에 좀더 시간을 갖고 얘기를 나누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