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났다.
졌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졌다고 생각하거나, 져서 서로를 탓하며 미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결과가 나오기도 전, 우린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결과와 상관없이 행복했고, 서로에게 고맙다고 여겼다.
우린 중도유적 복원과 역사 지킴을 기치로 선거에 임했다.
우리의 오정규 후보는 썩 잘 해줬고, 우리는 우리대로 최선을 다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춘천(갑).
결과를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면, 우리는 출마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거대 야당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므로.
매일매일 평가회의를 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이 또 와서 도우며, 그렇게 13일이 꿈같이 흘렀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누가 그랬다.
내가 후보명함 돌릴 군번은 아니라고. 그 친구는 민주당 계열에서 30년을 정치판에 있는 친구니, 그런 말을 할만도 했다.
- 그건 그렇지. 근데 난 종로에서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인데 하루 종일 춤춘다.
내 말을 들은 그 친구는 명함도 나줘 주고, 풍선도 불고, 전단도 나누고, 멋지게 지지연설도 했다.
우리는 중도유적을 포함해서, 가야사, 전라도 천년사, 홍익 삭제.. 우리 역사를 지우려는 세력을 알게 됐고, 더 이상 가만히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잘못이라고 여겼다.
힘은 미약했지만, 서로 십시일반해서 후보를 등록시켰고, 사무실도 얻었고, 유세차도 빌리지 않고 멋지게 만들었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라서 가능한 일이었고, 모두 재주가 넘치고 열정이 넘치는 이들이라 가능했다.
돌이켜보면 모두 아름다운 일이었다.
2년 전 지자체 선거를 도우러 간 적 있다.
후보를 돕는 이들 사이에도 서로 견제하는 그 파장이 심해서, 같이 선거운동을 해도, 사람들은 따로 였다.
우린 넘치는 돈 대신, 충만한 열정으로 모자라는 나머지를 모두 메웠다.
밥도 해먹었다.
그도 좋았다.
누군가 밥을 했고, 설거지를 했고, 밤 12시가 넘도록 회의를 했다.
선거라는 것을 통해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만났고, 이유 없이 일면식 없던 후보를 위해 명함을 나눠주러 춘천까지 왔고, 팻말을 들었고, 하루 종일 인사를 했고, 같이 웃고 얘기를 나누며 그래도 세상엔 돈이 아니라, 의를 위해 사는 이들이 있구나, 서로 힘이 됐다.
선거가 끝났다.
졌다.
꼭 진 걸까?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뿌린 이 씨들이 어디선가 자라서 언젠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거가 춘천에서 있었다.
행복했고, 한없이 고맙다.
중도유적 복원하라. 우리 역사 지키라.
- 영화<이태원살인사건> 작가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