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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안병욱 교수, 다섯 번 태어나는 인생, 철학적(哲學的)으로 보면 인간은 이 세상에  다섯번  태어난다. 

우리투데이 김요셉 기자 |  첫째번의 탄생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의 생명(生命)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탄생이다.

이것은 하나의 --운명이요, 타의(他意)요 섭리(攝理)요 불가사의(不可思議)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떤 운명이, 어떤 존재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 세상에 내어던진 것이다. ​실존철학자의 말과 같이 우리는 이 세상에 내어던져진 존재다. 인간은 타의에서 시작 하여 타의로 끝난다.나의 탄생도 타의요, 나의 죽음도 타의다. 인생에는 타의(他意)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

생물학적 탄생에서 나의 존재가 시작한다. 우리는 이 탄생을 감사 속에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번의 탄생은 사랑(愛)할 때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깊이 사랑할 때우리는 새로운 생을 발견하고 체험한다.

사랑은 도취요, 황홀이요, 환희요, 신비(神秘)다. 이 세상에서 이성(異姓)에 대한 사랑처럼 강한 감정이 없고 뜨거운 정열이 없고, 아름다운 희열이 없다. ​

사랑할때 우리는 즐겁고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다.

사랑앞에는 양심도 침묵 하고  이성도 무력하고 도덕도 빛을 잃고 체면도 무너진다. ​그만큼 사랑은 강(强)하다.

사랑은 어떤 때는 죽음보다도 강하다. 신(神)이 인간에게 준 축복(祝福)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불나비가 불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생명을 끊듯이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경우가 세상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사랑을 슬기롭게 관리해야 한다. 

 

세번째의 탄생은 종교적(宗敎的) 탄생이다.

하느님을 알고, 신을 체험하고 절대자를 만나고 초월자(超越者) 앞에 설 때다. 그것은 종교적 탄생이다. 그것은 생의 심화요, 삶의 혁명이요, 존재의 중생 이다. 그것은 낡은 ---자아(自我)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다시 태어나는 신생(新生)이요, 소아(小我)가 대아(大我)로 비약하는 존재의 큰 변화다. 누구나 이러한 탄생을 쉽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탄생을 체험 하지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것은 감사(感謝)의 생이요, 참회(懺悔)의 생이다.  

 

네번째의 탄생은 죽음 앞에 설 때다.

죽음은 생(生)의 종말(終末)이요, 존재의 부정(否定)이요, 인생의 종지부(終止符)요, 일체가 끝이 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요, 사랑하는 모든 것과 영원 히 이별하는 것이다.  죽음에는 허무감이 따르고 공포감이 따르고 절망감이 따른다. 죽음은-- 예외없이 우리를 --찾아오고 예고없이-- 우리를 엄습한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으뜸 가는-- 한계상황이다. ​

죽음 앞에 선다는 것은 나의 종말 앞에 서는 것이요, 허무(虛無) 앞에 서는 것이요, 한계(限界) 앞에 서는 것이다. ​죽음을 심각하게 느낄 때 우리의 생은 엄숙해지고 진지해지고 깊어진다.

투철한 사생관(死生觀)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은 생(生)을 살 수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의 탄생은 철학적(哲學的) 탄생이다.

자기의 사명(使命)을 발견하고 자각할 때다. 그것은 철학적 탄생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살고 이것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질 때우리의 생은 심원(深遠)해지고 성실(誠實)해지고 확고(確固)해진다.  

인간생애(人間生涯)의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使命)을 깨닫는 날이다. 인간은 사명적 존재이다. 나의 생명(生命)이 나의 사명(使命)을 만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의미(意味)와 가치(價値)를 깨닫고 성숙(成熟)한 자아(自我)로 성장한다. ​

나는 무엇을할 것이냐, 나는 어떻게 살 것이냐, 이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이다.이 물음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주는 것이 사명감(使命感) 이다.  인간의-- 자각(自覺) 중의 가장 중요한-자각은 자기의 사명의 자각이다.

자기의 사명을 자각할 때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기(自己)가 된다.  

 

생리적(生理的) 탄생에서 나의 존재가 시작한다. 사랑과  신과 죽음과 사명은

나의 인생에 새로운 탄생과 새로운 빛을 가져온다.​    

 

(안병욱安秉煜, 1920년 ~2013년 철학자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