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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데올로기 껍데기가 벗겨지고있다

사회주의로 무장한 기득권이 무너지고있다.

 

우리투데이 차한지 기자 | !!껍데기는 가라!! 교육감 조희연 판결을 보며 (기고 박동)

한때 우리모두를 몰입 시킬수 있었던 싯구가 있다.

비가 오는 날 이거나, 스믈스믈 소주잔 기우리고 싶을 때 아련히 스쳐갔던

뜨거웠던 유. 청소년시절, 장년시절 모두 사랑을 아끼지 않던 싯구다.

나의 사랑하는 조국, 신념, 정의, 진실, 얼게를 마주하며 흠뻑 젖어드는 몰입지대의 서장이었다.

 

40여년 우리의 고향이자 무대는 문화마당에 지나지 않아서 전통. 전승문화를 지키는 문화 동력에서 마주하는 절절함.

가끔은 뜬금없이 대학로에 다비탑 처럼 즐비한 시탑에 <껍데기는 가라> 반갑지만 반감도 함께 고유한다.

 

왜 일까?

오히려 시대의 싯구가 되어버린 껍데기는 가라의 껍데기 같아서다.

우리는 이미 문화우상 전통. 전승문화의 우상 늪에 빠진 반지성주의에 대한 연민을 잉태하는 어른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시의 여정이다.

 

시인이 천대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타고로 시인이 일제 암흑기에 강의 했던 울림이 소환된다.

한때 시대의식으로 까지 공유되었던 <껍데기는 가라>는 어느덧 삶속에 스며든 정의다.

결코 천대받지 않았던 우리사회의 ---,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울림은 반지성주의와 교육감 선거에 대한 쇠붙이다.

또 다시 법에 의해 신성한 교육의 장에서 단죄를 받았지만, 스스로는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괴리 아직도 민주화의 열풍이 거세던 투사의 논리로 국민을 마주하려고 하는 껍데기는 가라의 시성(詩性)이 새롭다.

 

 

요즘 우리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경각과 반성의 자리를 꾸리고 있다.

영혼의 미술관 책방이다.

한편으론 인사동, 대학로, 홍대, 명동, 청담동에 장르와 공간에 걸맞는 플렛폼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이 미래다.

문화가 답이다.

그리고 Angel이 답이라는 후원모금을 하고 있다.

중심에 <청소년>에게 향하는 뜨거움을 품고있음을 밝힌다.

대한민국 <청소년 Roll-Call> 문화제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1916~1970)의 저서 매카시즘 비판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독이든 설탕으로 정의했다.

파시즘, 킬링필드, 문화 대혁명, 트럼피즘에 이르는 광기의 반지성주의는 결코 쉽게 치유할수 없음을 경고한다.

 

그럼에도 막스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p55,56의 <교육자>에 대한 반지성주의 정의를 소환한다.

 

만약 누군가가 유능한 교수라면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의 가치 입장의 정당화에는 불리한 사실들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모든 당파적 견해에는, 예를 들면 나의 견해도 포함해서 이 견해에 주도로 불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교수가 그의 수강생들을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면 그는 단순한 지적업적 그 이상을 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너무나 소박하고 당연한 일에 대한 어쩌면 너무 장중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감히 그것을 도덕적 업적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습니다.

 

도덕적 업적- 편향적 교육관- 교육감법적 단죄의 연계는 너무도 당연한 유추다

 

껍데기가 되어버린 교육감의 반지성주의 정의다.

사회적 공정성 개인의 능력과 역량 경제적 효율성 다양성과 포용성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의 갈레속에 반지성주의 성격을 조심스럽게 유추하면서다.

 

한때 우리 모두를 몰입시킬수 있었던 껍데기는 가라 소중한 울림이 독이든 설탕을 먹은 반지성주의 <교육> 현장 앞에 바로 설 뿐이다.

 

껍데기는 가라! 교육감 조희연 판결을 보며.

 

이 시대 진정성 있는 국민들의 움직임이 꿈틀 거리고 있다 마그마의 에너지가 강해짐을 느끼고 새로운 시대 옳고 그름이 정의 되는 시대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