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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예원교회,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삶!(갈6:11~18)"

 

 

우리투데이 김요셉 기자 |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예원교회(정은주 목사)는 11월 14일 일요예배를 통해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는 말씀을 전파했다.


다음은 이날 말씀의 요약본이다.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6: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서론] 오늘로 갈라디아서 강해를 마치고 다음 주부터 야고보서를 강해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갈라디아서의 중요한 핵심을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첫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지는 유일성, 절대성, 영원성을 분명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플랫폼으로 오직, 유일성, 재창조의 제자로 서야 합니다. 

 

 ‘둘째는 교회에 스며든 변질된 복음에 맞서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지 그 어떤 율법적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율법과 종교의 멍에를 다시는 메지 말라고 사도 바울은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복음이 주는 영적 참 자유함을 사실적으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 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 6, 11장의 서론에 속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충만의 권능을 힘입어 본론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생명 살리는 영적 본질을 위한 삶을 사는 것, 237 나라 5천 종족 복음화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절대 가치이자 최고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가진 한 가지 흔적에 대해 간증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흔적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도로써 지금까지 사역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은 수많은 핍박과 환난을 통해 자신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 자신의 삶을 대변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 또한 이러한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마지막으로 강조했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복음의 유익을 위한 삶의 모든 발자취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는 것, 교회에서 주어진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는 모든 것이 예수의 흔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삶은 결과적으로 영원한 상급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위하여 한 모든 사역은 결코 헛된 것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최고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삶을 살며 하나님께 최고 상급을 받는 증거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유일한 자랑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갈6:11) 사도 바울은 눈이 나빴기 때문에 대부분 편지를 대필하도록 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누가 받아썼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서신서는 주로 두기고가 옆에서 대필했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쓸 때 구술하여 받아 적게 한 후에 마지막 부분은 자신이 자필로 크게 기록함으로써 그 편지가 자신의 편지라는 사인을 대신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자기가 직접 큰 글씨로 썼다는 말이겠지만,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필해서 썼지만, 마지막만큼은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를 더욱더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쓴 것입니다. 바울이 뜨거운 가슴으로 유언하는 심정으로 쓴 본문을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적용해서 사실적으로 응답을 받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갈6:12~13)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복음과 종교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노력과 수고를 강조하는 인간 중심인 반면에 복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섭리를 강조하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당시 갈라디아교회에는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복음을 종교화시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 육체로 자랑하려 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과시를 위한 외식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할례받게 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자기도 할례받고 다른 사람도 할례받도록 강요했던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지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할례 문제가 당시에는 제일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끼리 만나면 가장 중요한 인사가 ‘할례받으셨습니까?’였다고 하니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육체로 자랑할 것에 빠지면 결국 하나님은 안 보이고 사람만 보이게 됩니다.’ 사람이 인정해줄 때는 좋아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실망하고 상처받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육체로 자랑하려 하는 자들이라고 정의 내리고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일고의 가치도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6:14~16) 율법주의자들이 형식적인 종교 생활과 자기 자랑에 빠져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사도 바울의 유일한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구원을 주는 참 복음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고 안 받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새로 지으심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임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고후5:17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재창조의 역사가 임하며,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강의 삶,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놀라운 긍휼에 감사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자랑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바로 우리로 하여금 새로 지으심을 받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면 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너무나 많았던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박사학위 몇 개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벌과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지키는 것에 올인하여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 삶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랑거리로 여겼던 그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빌3:7~9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전부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사실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디까지 나아갔습니까? 고전9:16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빌1:18에는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리스도만 전파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유일한 자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에서 인생 최고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설교의 황태자로 불리는 스펄젼 목사님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묵상하다가 십자가 장면이 나왔습니다. 제 마음속에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를 구원한 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왜 내 마음속에 감격이 사라졌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감격을 상실했다면 우리의 신앙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감격이 변함없이 넘치고 그분만을 자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영적 정상 상태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영적 정상 상태 생명력 넘치는 현장 전도 제자의 삶을 다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언약적 한(恨)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7)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의심과 할례에 대한 율법적인 질문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흔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티그마타’라고 하는데 이것은 소나 양에게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나타내거나, 주인이 노예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의 몸에 낙인찍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란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이 예수의 소유가 된 흔적,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로 인해 받게 된 고통과 고난의 상처를 가리킵니다. 
  고후11:24~27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해 어떠한 고난과 핍박을 받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실 복음을 위해 이렇게까지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예수의 흔적이 자신이 사도임을 분명히 입증하는 것이고, 이런 고난을 이겨낸 것은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이런 고난을 겪은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복음을 지키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적인 문제로 인해 복음을 가리지 말고 더 이상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의 언약적 한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여러분 가슴에 남겨진 한(恨), 그 예수의 흔적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영광스럽게 받으실 것입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등장인물 중에 진충씨(眞忠氏)가 나옵니다. 이 진충씨가 자기 여행을 거의 마칠 무렵 한 가지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나의 상처와 흔적을 주님을 사랑한 증거로써 나에게 상급을 주실 그분 앞으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육체의 아픔을 당하든 안 당하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행11장 보면 안디옥 교회 제자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듯이 우리에게는 예수의 사람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 따라서 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예수의 흔적을 가진 예수의 사람입니다.” ‘복음 때문에 여러분이 겪은 상처와 아픔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흘러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예수 향기 흘러넘치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인터넷에 보면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이라는 도표가 있습니다. UN에서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 수명을 추정하여 연령 분류의 새로운 표준 규정을 5단계로 나누어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많이 공유되고 있어서 방송에서 팩트 체크한 결과 UN은 그런 발표를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공감이 크게 됩니다. 이 도표에 따르면 미성년자를 0세부터 17세로 규정했는데 이 부분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파격적입니다. 18세부터 65세까지를 청년으로 구분해놓았습니다. 그리고 66세부터 79세까지를 중년, 80세부터 99세까지가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 노인이라고 분류한 것입니다. 65세까지가 청년이면 여기 계신 대다수 분들은 청년일 것입니다. 좀 더 범위를 넓혀도 다 중년에는 속할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한창 주님의 일을 할 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사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사명이 다하면 끝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은 청년의 패기를 가지고 일심 전심 지속으로 변함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정말 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생명력 넘치는 영적 청년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절대 제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