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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지공예 명맥을 이어온 사람들

한지공예를 이끌어 오신 분들

 

우리투데이 차한지 기자 |  근대 한지공예를 말한다. 한지공예는 근대 공예가 주류를 이룬다 오색한지공예 고색한지공예 닥종이인형 합지공예등이 한지공예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한지공예의 맥은 전통공예인 지승공예. 지화공예보다 근대 상기호씨가 한지공예의 큰 물줄기를 이루어 왔다.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1993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변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 창조”를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부정부패 척결과 경제 회생, 국가 기강확립이 세부 과제였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과거 기득권층을 대대적으로 사정했다.

사정의 칼날을 번득이며 한쪽에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당근을 제시하는 정책속에 중산층 육성 사업을 펼쳐가며 문화 활동을 적극 장려 하는 정책을 펼치게 된다.

 

당시 중산층 문화활동의 대대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유럽으로 경제사절단과 순방을 떠나며 사절단중 계정제지의 최낙철 회장이 함께 가게 되고 김영삼 대통령이 독일 순방시 김영희씨의 공방을 방문 당시 김대통령이 닥종이 인형에 관심을 보이자 뒤따르던 최낙철 회장이 거금을 들여 닥종이 인형을 구매 하여 한국에 가져오게 된다.

당시 한국은 중산층 바람이 불며 각 백화점에 문화센터를 설립하고 삶이 풍요한 사회를 표방하는 시기에 닥종이 인형을 포함한 전통공예인 한지공예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각 언론은 독일에서 닥종이인형을 만들며 지내던 김영희씨를 작가로 소개하고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되어 유명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구애받지않고 예술가로서 정체성이 생긴 것 같다"며 "육아와 가정의 울타리, 그리고 팔자로 내려진 예술이라는 광대놀음! 그 합칠 수 없는 아슬아슬한평행선을 달리면서 제 방황을 숨김없이 풀어냈지만 부끄럽지 않은 것도그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희씨는 후학을 양성하지 않았다.

 

국내에는 김영희씨에  버금가는 박순애 선생이있다. 박순애씨는 후학을 육성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1990년대 초부터 닥종이인형 만들기에 전념해온 박순애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닥종이 인형의 후학양성과 큰 물줄기를 이어갔다.

박순애씨에게 사사 받은 닥종이 예술가들은 한국닥종이인형예술협회에 소속된 제자들이며 2년에 한 번씩 ‘빛뜨란’전이란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유일한 남자 회원인 박창우 씨(68)는 이미 해외에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다. 지난해에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전시회에 초대돼 작품 ‘삶’과 ‘살풀이’를 전시했고, 내년에도 일본 순회전시회에 참여할 예정인데 코로나가 발목을 잡고있다. 그는 “종이의 부드러운 질감은 어머니의 품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을 준다”고 말했다. 박창우씨는 현재 강화에 계시며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다.

 

근대 한지공예의 큰 발자취를 남긴 상기호씨 골동상을 하는 부친을 도와 젊어서 큰 돈도 벌어봤지만 전통 문화를 되살리는데 남다른 애정을 느껴 진로를 바꾸게 됐습니다. 앞으로 종이공예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그동안 맥이 끊겼던 紙佛의 재현작업에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한지공예의 대부 상기호씨는 제 23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지공예작품 `건칠지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제작기간만 꼬박 1년이 걸린 `건칠지불'(45x 110㎝)은 제작과정이 무척 까다롭다는 게 작가 설명. 우선 닥지를 사용해 부처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한지와 모시, 삼베를 붙인뒤 그 표면에 다시 조개껍질을 빻아 만든 호분을 1.5㎜ 두께로 바른다. 이어 조각칼로 정교하게 형체를 다듬은후 전통 생옻칠을 8차례 올려 말린후순금종이를 붙여 완성한다. 이때 옻칠이 잘 마르지 않으면 종이가 잘 붙지 않으므로 건조상태를 세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지불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에 성행했으며 조선후기 사찰에서도 더러 목격된다. 보물 4백15호로 지정된 경북 월성 기림사의 건칠불을 비롯 백양사, 장육사등에도 건칠불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명맥이 거의 끊긴 상태다.

상기호씨는 현재 한지공예의 주류를 이루는 오색한지공예의 근간을 유지하고 근대 한지공예의 교육체계를 도입해 후학양성에도 큰 역활을 했다. 상기호씨에게 사사 받은 제자들은 전국각지 지자체에서 수여 하는 명장 등 한지공예의 2세대를 이어가고있다. 상기호씨는 종이문화를 되살리는데 남다른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개인적으로 종이유물을 수집했으며 전통문양을 재현한 작품과 전통문양을 현대적으로 재구성작품 등 많은 활동을 했다.

 

한지공예 고색한지공예 창안자 정순석

고색한지를 창안한 정순석 선생이다. 제자들에게 전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대한민국 한지 역사의 획을 그은 훌륭한 분이다. 고색한지의 명맥을 유지하는 고색한지공예의 역사를 쓰시고 계시다. 고색한지는 검은색 한지를 탈색하여 고풍스런 질감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무형문화재 지승공예

최영준(崔榮俊:1951~ )선생은 1986년 10월 9일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오랫동안 단절되다가 홍성군 광천읍 신진리에 거주하던 김영복(金永福:1895~1986)이 부석사에서 한학을 수학하던 중 부석사 주지 벽허(碧虛)로부터 종이그릇 제작 방법을 배워 전승해왔다...

1986년 사망함에 따라 손자며느리 최영준에게 전수되었다..

 

한지공예의 큰 줄기로 맥을 이어 가는 분들이 계시기에 한지공예의 지속적인 발전은 곳곳에서 두드러지게 문화로 자리매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