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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기고] “아이를 위한 해외여행, 정말 필요할까”

 

지금부터 우리 어머니들이 잠깐 인상 찌푸릴지도 모를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해외여행을 꼭 가야 하는가?
이 질문 자체에서 부터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잠깐만 들어주기 바랍니다.

 

물론 해외여행은 즐겁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아이 뒤로 에펠탑이 찍히면 있어보이기도 하고 왠지 교육 효과도 두 배쯤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건 늘 희소성에서 가치가 나옵니다. 모두가 가는 곳에 가서, 모두가 찍는 사진을 찍으면, 그건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평균적인 경험'이 됩니다.

 

생각해 봅시다. 모두가 어떤 영화를 봤는데 나만 그걸 안 봤다면? “너 왜 안 봤어?”라는 소리를 듣긴 하겠지만, 사실 그게 더 독창적입니다. 남들이 다 같은 장면을 떠올리며 같은 농담을 할 때,
나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리지널리티입니다.

 

여기까진 "말도 안 된다”고 할것입니다.
하지만 역사 속 창의적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유럽 방방곡곡을 여행하지 않았으며 그의 주요 활동 반경은 피렌체와 밀라노였습니다. 그가 본 건 시체 해부, 물살의 흐름, 하늘 나는 새. 요즘 말로 하면 '동네 과학 동호회'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헬리콥터 같은 비행 장치와 인체 해부도를 남긴,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인간으로 기록됐습니다.

 

아이작 뉴턴(1642~1727)은 어땠을까요? 1665년, 런던에 흑사병이 번지면서 학교가 문을 닫자 그는 고향 집에 갇혔습니다. 당시 나이 23살. 해외여행은커녕 집 밖도 못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습니다. 만약 그때 이탈리아 여행이라도 갔더라면, 그는 기념품 사느라 사과 따위는 신경도 안 썼을지 모릅니다.

 

공자(기원전 551~479) 역시 해외여행은 못 해봤습니다. 기껏해야 중국의 제후국들을 돌아다닌 정도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지방 출장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2,000년 넘게 동아시아 사상을 지배했습니다.

 

즉, 인류의 위대한 아이디어들은 에펠타워 앞보다 집 앞 골목길, 시골 마당의 사과나무, 동네 시장에서 탄생했다는 얘기입니다.

 

과학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테레사 아마빌레는 1980년대 연구에서 창의력이란 '새로운 것을 접할 때'보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연결할 때' 폭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해외여행보다 집 앞 놀이터 모래사장을 세 번째 가는 경험이 아이의 두뇌에 훨씬 더 도전적인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부모 마음은 이해됩니다. 딴 애들은 프랑스도 가보고, 미국도 가보는데 “우리 아이만 못 데려가면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그러나 아이가 그 경험을 정말 원한다면, 스스로 그걸 위해 노력해서 가는 편이 훨씬 값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리띠 졸라매고 다녀온 해외여행에서 건질 수 있는 건 결국 “…집이 최고네”라는 한 마디일 수도 있습니다.

 

교육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를 천재로 만드는 독서법은 수많은 책을 빠르게 읽는 것이 아니라, 같은 책을 반복해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뇌과학자 가와시마 류타는 반복 독서가 아이의 언어 능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키운다고 주장했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나라 10곳보다 같은 장소를 다른 계절, 다른 관점, 다른 사람과 다시 가는 것이 훨씬 더 창의적 자극을 줍니다.

 

모두가 보는 것을 보지 않을 때, 모두가 가는 곳을 가지 않을 때, 아이는 진짜로 남들보다 앞서게 됩니다.
(그리고 아빠 지갑도 남들보다 오래 산다.)

 

교육이 아니라 '추억을 위해서' 해외여행을 가야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추억.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추억이 꼭 외국에서만 가능할까요?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제게 많은 나라를 볼 수 있는 경험을 주셨습니다.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헝가리, 튀르키에, 스웨덴 등.

 

하지만 제 어릴적 가장 좋은 추억은 가족과 집안 부엌에서 삼겹살과 말린무를 먹었던 기억이고

아내와 수 많은 해외 럭셔리 리조트와 호텔을 다녔지만 내 최고의 추억은 신혼 때 함께 벽지를 붙이던 기억이었습니다.

 

그 벽지는 여전히 어설프기 짝이 없고
선도 잘 안맞지만 저에겐 저 어설프게 붙여진 벽지가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그러니 제발...제발...
다음 해외여행 결제전에는

 

여보 다시 한번 생각해 주오.

 

이상,
4살 아빠 오규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