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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단고기 2탄] 단군세기 저자, 행촌 이암에 대해서

행촌 이암은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송곡촌(松谷村) 앞 바닷가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회양부사(淮陽府使)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충렬왕 때 김방경(金方慶)의 중군(中軍) 지병마사(知兵馬使)로 일본 정벌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박지량(朴之亮) 장군의 딸이다.
마지막으로 부인은 충렬왕 때 세 번이나 재상을 지내면서 일본 정벌에 전함을 만들어 공을 세우고, 충렬왕에게 '편민십팔사(便民十八事)'를 올려 명성을 떨쳤던 홍자번(洪子藩)의 증손녀이다.

 

행촌 이암은 17세 되던 1313년 충숙왕 즉위년 8월에 문과에 합격했으며 비서성 교감(秘書省校勘)을 시작으로 비서랑(秘書郞) · 단양부 주부(丹陽府主簿) · 도관 정랑(都官正郞)을 거쳐 감찰 집의(監察執義) ·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 밀직부사(密直副使) · 찬성사(贊成事)를 두루 역임하고 청평산(淸平山)에서 5년간의 은거생활을 마친 후 1358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렀다.

 

행촌 이암은 공민왕이 환도한 이듬해(1363년 2월) 강화도로 은퇴했다. 선행리(仙杏里) 홍행촌(紅杏村)에 해운당(海雲堂)이라는 집을 짓고, 스스로 '홍행촌수(紅杏村叟)'라고 불렀다. 이곳은 선원사(禪源寺)와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곳에서 선원사를 오가며 선원사의 노승 식영노인(息影老人)을 방외의 벗으로 삼아 신선처럼 살다가 6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행촌(杏村),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강화도와의 인연은 10세때 강화도 마니산 보제사(普濟寺)에 들어가 학동초당(鶴洞草堂)을 짓고 3년 동안 유가 경전과 우리 고대사 기록을 탐독하였다고 전하며, 고려 공민왕 시절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현재 국무총리)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 강화도에서 생을 마감했으므로 연관성이 크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천 강화군에는 단군세기 저자였던 '행촌 이암'에 대해 아무런 흔적도 남겨져 있지 않아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