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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단고기 3탄] 단군 1대 왕검

<古記> 云 王儉 父檀雄 母熊氏 王女 辛卯 五月 二日 寅時生 于檀樹下 有神人之德 遠近畏服 年
十四 甲辰
熊氏王 聞其神聖 擧爲裨王 攝行大邑國事 戊辰 唐堯時 來自檀國 至阿斯達 檀木之墟 國人推爲天
帝子 混一
九桓 神化遠曁 是謂 檀君王儉 在裨王 位二十四年 在帝位 九十三年 壽 一百三
十歲 戊辰元年 大始 神市之
世 四來之民 遍居 山谷 草衣 跣足 至開天 一千五百六十五
年 上月三日 有神人 王儉者 五家之魁 率徒八百
來御于 檀木之墟 與衆奉祭 于三神 其至
神之德 兼聖之仁 乃能奉詔繼天 巍湯惟烈 九桓之民 咸悅誠服 推爲
天帝化身 而帝之 是爲 檀君王儉 復神市舊規 立都 阿斯達 建邦號 朝鮮
王儉 詔 曰 天範 惟一 弗二厥門 爾惟純誠 一爾心 乃朝天 天範 恒一 人心 惟同 推己秉心 以及人
心 人心惟
化 亦合天範 乃用御于萬邦 爾生有親 親降自天 惟敬爾親 乃克敬天 以及于邦
國 是乃忠孝 爾克体是道 天有
崩 必先脫免 禽獸有雙 弊履有對 爾男女以和 無怨 無妬 無淫 爾嚼十指 痛無大小 爾相愛 無胥讒
互佑 無相
殘 家國以興 爾觀牛馬 猶分厥芻 爾互讓 無胥奪 共作 無相盜 國家以殷 爾觀于虎 彊暴不靈 乃作
孼 爾無桀
騖 以戕性 無傷人 恒遵天範 克愛物 爾扶傾 無陵弱 濟恤 無侮卑 爾有越厥 則 永不得神
佑 身家以殞 爾如有
衝 火于禾田 禾稼將 殄滅 神人以怒 爾雖厚乞 厥香必漏 爾敬持彝性 無懷慝 無隱惡 無藏禍心 克
敬于天 親
于民 爾乃福祿 無窮 爾五家衆 其欽哉
檀君 命 彭虞 闢土地 成造 起宮室 臣智 造書契 奇省 設醫藥 那乙 管版籍 羲 典卦筮 尤 掌兵馬
納 斐西岬
河伯女 爲后 治蠶 淳庬之治 熙洽四表 丁巳 五十年 洪水汎濫 民不得息 帝 命風伯 彭虞 治水 定高
山 大川
以便民居 牛首州 有碑 戊午五十一年 帝 命雲師倍達臣 設三郞城于穴口 築祭天壇於摩璃山 今塹
城壇是也 
甲戌 六十七年 帝 遣太子扶婁 與虞司空 會于塗山 太子 傳五行治水之法 勘定國界 幽營二州 屬我
定淮岱
諸侯 置分朝以理之 使虞舜 監其事 庚子 九十三年 帝 在柳闕 土階自成 草茆不除 檀木茂陰 與熊
虎遊 觀牛
羊茁 浚溝洫 開田陌 勤田蠶 治漁獵 民有餘物 俾補國用 國中大會 上月祭天 民皆熙皞 自樂 自此
皇化洽被
九域 遠曁耽浪 德敎漸得偉廣 先是 區劃 天下之地 分統三韓 三韓 皆有五家六十四族 是歲 三月
十五日 帝
崩 于蓬亭 葬于郊外 十里之地 萬姓如喪考妣 奉檀旂 晨夕 合坐敬拜 常念不忘 于懷 太子 扶婁立

 

 

<고기>에 이르기를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熊氏) 나라의 왕녀이다(王
儉 父檀雄 母熊氏王女). 신묘년(BC 2370) 5월 2일 인시에 단수(박달나무) 마을에서 태어났다(辛
卯 五月 二日 寅時生 于檀樹下). 왕검(神人)은 어려서부터 덕이 있어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랐다(有神人之德 遠近畏服). 14년 갑진년(BC 2357)에 웅씨왕(熊氏王)이 그가 신령스럽고 성
스럽다는 소문을 듣고, 왕검을 비왕(왕자)으로 삼았으며, 섭정하여 대읍국(大邑國)을 다스리도
록 하였다(年十四 甲辰 熊氏王 聞其神聖 擧爲裨王 攝行大邑國事). 제요도당 무진년(BC 2333)에
단국(檀國)에서 아사달(阿斯達)의 닥나무가 많은 언덕(檀木之墟)에 이르자 온 나라 사람들이 그
를 천제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戊辰 唐堯時 來自檀國 至阿斯達 檀木之墟 國人推爲天帝
子). 이후 구환이 모두 뭉쳐서 하나가 되었고(混一九桓), 단군(神)의 교화가 널리 미치게 되었다
(神化遠曁). 이를 단군왕검이라 말하며(是謂 檀君王儉), 비왕 재위 24년이요(在裨王 位二十四
年), 황제로서의 재위 93년이다(在帝位 九十三年). 구환을 통일하고 단군조선을 건국하는데 130
년이 걸렸다(壽 一百三十歲). - 수(壽)는 존속기간 또는 건국기간으로 해석
환웅이 신시를 처음 열었을 때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들이 산과 골짜기에 두루 퍼져 살고 있었으
며, 풀잎으로 옷을 해 입고, 맨발로 다녔다(大始 神市之世 四來之民 遍居山谷 草衣跣足). (왕검
은) 1565년(환웅의 신시 배달국의 존속기간, 서력을 말하는 것이 아님)이 지난 상월(10월) 3일에
나라를 열었다(至開天 一千五百六十五年 上月三日). 당시 신인 왕검이라는 자가 있었는데(有神
人 王儉者), 오가의 우두머리였다(五家之魁). 그는 8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박달나무 언덕에 터
를 잡았다(率徒八百來御于檀木之墟). 그는 백성들과 함께 삼신을 모시는 제사를 올렸다(與衆奉
祭 于三神). 그는 매우 신령스러운 덕이 있었으며, 백성을 보살피는 너그러움도 겸비하였다(其
至神之德 兼聖之仁). 마침내 그는 하늘의 뜻과 가르침을 계승하고 받들어(乃能奉詔繼天) 큰 뜻
과 호탕함의 대의정치를 함으로써((巍湯惟烈)) 구환의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를 따랐다(九
桓之民 咸悅誠服). 그는 백성들에 의하여 하늘의 황제가 사람으로 변신한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推爲 天帝化身 而帝之). 이 사람이 바로 단군왕검이다(是爲 檀君王儉).
(왕검은) 신시 배달국의 옛 법을 회복하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으며, 나라를 세워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復神市舊規 立都 阿斯達 建邦號 朝鮮). 왕검이 조칙을 내려 말씀하시기를(王
儉 詔 曰) 하늘의 법은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다(天範 惟一 弗二厥門). 따라서 너희는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너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爾惟純誠 一爾心) 마침내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느니라(乃朝天). 하늘의 법이 항상 하나인 것처럼 민심(人心=民心)도 같은 것이니
라(天範 恒一 人心 惟同). 고로(故) 내 마음을 먼저 바로잡고(推己秉心), 민심을 얻어야 할 것이
며(以及人心), 민심을 잘 융합하면(人心惟化) 하늘의 법과 합치하는 것이니(亦合天範)  마침내
만방을 다스릴 수 있느니라(乃用御于萬邦). 너희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너희 부모
님이 계시기 때문이며(爾生有親), 부모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이니(親降自天) 너희 부모님
을 공경하여야 하느니라(惟敬爾親). 이렇게 하늘을 지극히 공경한다면(민심을 얻고, 부모를 잘
섬긴다면) 그 정신은 마침내 온 나라에 퍼져나가게 될 것이니라(乃克敬天 以及于邦國). 이것이
바로 충효이니라(是乃忠孝). 너희가 이 도(道)를 몸소 극복하여 깨닫는다면(爾克体是道)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화를 면할 수 있느니라(天有崩 必先脫免). 짐승도 다 짝이 있고(禽獸有雙), 헌
신도 다 짝이 있는 법이니(弊履有對), 너희 남녀는 서로 잘 화합하여(爾男女以和) 원망하지 말
고, 질투하지 말 것이며, 음탕한 짓을 하지 말지어다(無怨 無妬 無淫). 너희의 열 손가락을 깨
물어보아라(爾嚼十指), 어느 손가락 하나 통증에 차이가 없으니(痛無大小) 너희는 서로 사랑하
고(爾相愛) 서로 헐뜯지 말 것이며(無胥讒), 서로 돕고(互佑) 싸우지 말아야 하느니라(無相殘).
그래야 집안과 국가가 흥하게 되느니라(家國以興).
너희의 소와 말을 보거라(爾觀牛馬), 소와 말은 오히려 먹이(꼴)를 서로 나누어 먹나니(猶分厥
芻), 너희는 서로 양보하고(爾互讓) 서로 약탈하지 말지어다(無胥奪). 함께 일하고(共作) 서로
도둑질하지 않으면(無相盜) 국가와 집안은 번영하느니라(國家以殷). 너희들은 저 호족을 보아
라(爾觀于虎) 거칠고 난폭하여 차분하지 못하더니(彊暴不靈) 끝내 분열되고 말았느니라(乃作
孼), 너희는 조급해 하거나 서두르지 말 것이며(爾無桀騖) 자신의 성품을 손상시키거나(以戕
性),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아야 하고(無傷人), 항상 하늘의 법을 따르고(恒遵天範) 만물을 극진
히 사랑하여야 한다(克愛物). 너희는 힘들어하는 자를 도와주고(爾扶傾), 약자를 무시하지 말고
제휼하여야 하며(無陵弱濟恤), 나보다 못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지어다(無侮卑). 너희들이 그것
을 어긴다면(爾有越厥) 곧(則) 신의 도움을 영원히 얻지 못할 것이니(永不得神), 너 자신과 집안
이 위태로워질 것이다(身家以殞). 또 너희들이 서로 충돌하여(爾如有衝) 농사 지을 땅에 불을
지른다면(火于禾田) 곡식의 종자가 모두 타버려(禾稼將殄滅) 신인이 화(怒)를 낼 것이다(神人
以怒).
너희들이 아무리 본색을 감추려 하여도(爾雖厚乞) 그 냄새는 필히 새어나오는 것이니(厥香必
漏), 너희는 타고난 품성을 경건하게 유지하여(爾敬持彝性) 사악한 마음을 품지 말고(無懷慝),
악을 숨기지 말 것이며(無隱惡) 화를 자초하는 마음을 갖지 말지어다(無藏禍心).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공경하고(克敬于天), 백성을 사랑한다면(親于民) 너희들의 복은 무궁할 것이니(爾乃福
祿 無窮), 너희 오가들은 나의 말을 명심하여 백성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爾五家衆 其欽哉). 
단군이 명하여 '팽우'에게 토지를 개간하게 하였고(王儉 命 彭虞 闢土地), '성조'에게 궁궐
과 백성들이 살아갈 집을 짓게 하였으며(成造 起宮室), '신지'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였다( 臣智
造書契). 또 '기성'에게는 병을 치료하고 약을 제조하게 하였고(奇省 設醫藥), '을나'에게는 관경
안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那乙 管版籍), '희'에게는 천문을 관측하
여 천문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羲 典卦筮). 아울러 '우'에게는 군대를 관리하도록 하였고(尤
掌兵馬), 비서갑의 '하백녀'를 왕비로 삼은 후 그녀에게 누에치기를 가르치도록 하였다(納斐西
岬河伯女 爲后 治蠶). 이와 같은 백성을 사랑하고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민본정치가 온 나라 백
성들을 화합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다(淳庬之治 熙洽四表 ). 정사 50년(BC 2284)에 홍수로 강이
범람하여 백성들이 살 곳을 잃었다(丁巳 五十年 洪水汎濫 民不得息). 이에 단군(帝)은 풍백 '팽
우'에게 명하여 치산치수 계획을 세우도록 하였고(帝 命風伯 彭虞 (治山)治水) , 풍백은 높은 산
과 큰 강을 정비하여(定高山大川)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하였다(以便民居). 그 공적비가 우
수주에 있다(牛首州有碑). 무오 51년(BC 2283)에 단군(帝)은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戊午五
十一年 帝 命雲師倍達臣) 혈구(지금의 강화도)에 삼랑성을 짓도록 하고(設三郞城于穴口), 마리
산에 제천단을 쌓도록 하였다(築祭天壇於摩璃山). 이것이 지금의 참성단이다(今塹城壇是也). 갑
술 67년(BC 2267)에 단군(帝)은 태자 부루를 파견하였다(甲戌 六十七年 帝 遣太子扶婁). 태자
는 도산에서 우사공을 만났다(與虞司空 會于塗山). 태자는 오행치수지법을 전해주고(太子 傳五
行治水之法), 여러 가지를 따져 국경을 정하였다(勘定國界). 유주(하북성 일대)와 영주(요녕성
일대) 두 주의 땅이 우리에게 속하게 되었고(幽營二州 屬我), 회대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어 다스렸다(定淮岱諸侯 置分朝以理之). 이 일은 우순에게 감독하도록 하였다(使虞舜
監其事). 경자 93년(BC 2241)에 단군(帝)은 류궐(버드나무 우거진 궁궐)에 있었다(庚子 九十三
年 帝 在柳闕). 이곳에서 단군은 스스로 담을 쌓고(土階自成) 풀과 나물을 가꾸었다(草茆不除).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함께 놀았고(檀木茂陰 與熊虎遊), 소와 양이 함께
풀을 뜯는 것을 볼 수 있었다(觀牛羊茁). 도랑을 쳐 수로를 만들었고(浚溝洫), 밭고랑을 만들었
으며(開田陌), 양잠을 권장하였고(勤田蠶), 고기잡이와 사냥을 가르쳤다(治漁獵). 이렇게 하여
백성들의 삶은 여유가 있었고(民有餘物), 남는 곡식은 나라 살림에 보태었다(俾補國用). 나라 안
에서는 큰 모임이 있었다(國中大會). 상달(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上月祭天), 백성들은
모두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하였다(民皆熙皞 自樂). 이렇게 하여(自此) 단군(皇)의 교화는 구환
을 화합하게 하였고(皇化洽被九域), 그 명성은 멀리 탐랑(탐라, 제주도)까지 퍼졌다(遠曁耽浪).
황제의 덕과 가르침은 점점 더 멀리 확산되었다(德敎漸得偉廣). 이에 앞서(先是) 천하의 땅
을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先是 區劃 天下之地 分統三韓). 삼한은 통틀어 오가 육십사족으
로 이루어졌다(三韓 皆有五家六十四族). 이 해(경자년, BC 2241) 3월 15일 단군(帝)이 붕정에서
붕어하시고(是歲 三月 十五日 帝崩 于蓬亭), 장지는 교외 10리 밖이다(葬于郊外 十里之地). 만
백성이 한결같이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슬퍼하였고(萬姓如喪考妣), 단기(檀旂 : 단군을 상
징하는 깃발로 용(龍)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린 붉은 깃발)를 모시고(奉檀旂) 아침 저녁으로 함께
앉아 존경의 절을 올리며(晨夕 合坐敬拜), 잊지 않기 위해 마음 속에 품고 그를 기리었다(常念
不忘 于懷). 태자 부루가 즉위하였다(太子 扶婁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