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데이 지봉학 기자 | 무덕관 중앙 계승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오노균 세계태권도문화원장)는 7월 3일 현도 무예촌에서 전국 17개 시·도 대표자 및 중앙위원이 참가한 가운데 무덕관 중앙 계승회(무덕관 계승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무덕관 계승회는 무덕관 창시자인 황기 관장의 1927년 한국고유무슐입문(수박도대감근거)과 1936년 만주에서 국술(무예도보통지권법추정)수련을 시작으로 한 무예 전수 정통성을 확보해 오늘날 태권도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당위성을 발굴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100년 전통을 기반으로 태권도 종주국의 역사성, 고유성을 확고히 하는 한편 대한민국 국기로서의 정통성을 정립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영원히 계승·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오노균 위원장은 “태권도는 해방을 전후한 5대관의 창시를 시작점으로 보고 있으나 훨씬 전 황기 관장 등 민족무예가들에 의해 구전 또는 실제로 세대와 세대 간 전승돼온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돼 오늘의 문화 다양성으로 융합된 태권도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세계기록유산으로 유네스코에 태권도의 원류로 등재된 정조 14년 무예도보통지(1790)를 근원으로 현대 태권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영속적으로 계승하는 데 목적을 두고 창립한다”고 말했다.
무덕관은 1945년 11월 9일 서울 용산역 부근의 철도국에서 '황기(黃琦, 1914~2002)'에 의해 교통부 소속 운수부 당수도부로 창설됐다. 그 후 1955년 5월 정식으로 무덕관 이름으로 중앙도장이 서울 중구 동자동에 개관하게 된다.
황기는 1936년 남만주 철도국에 재직 당시 양국진 선생으로부터 무술을 수련한 후 해방 후 국내에서 서적을 이용해 무술을 독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6년 각 지방의 기차역 창고에 도장을 개관하면서 1955년도에 전국에 9개의 지관을 신설하고 같은 해 10월 한ㆍ중 친선 연무대회를 대한당수도 이름으로 시공관에서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국제행사로는 유사이래 최초로 개최된 것으로 기록됐다.
당시 철도국에서 수련생 지도는 함께 재직했던 현종명(청도관 출신)이 전담하고 황기는 1952년 한국 경찰전문하교 사범을 비롯해 1953년 전국 중고등학교 사범, 1954년 마포 서대문교도소 사범 및 그 외 공군, 해군 사관학교에서 사범으로 활동했다.
무덕관의 수련생들은 대부분 철도국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실, 신성, 정의를 목표로 하여 수련하였다. 홍종수와 지상섭은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북지역에, 전쟁 때문에 부산에 내려간 김인석은 경남지역에, 남삼현, 임명수는 대전 및 충남북 지역에, 오용균은 전북지역에, 박용화는 인천에, 김창진은 전남에, 박영진은 강원도에 세력을 뻗쳤다. 이처럼 전국에 9개의 지관을 신설한 뒤에는 한ㆍ중 친선 국제 당수도 연무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황기는 1949년 5월에 『화수도교본』을 저술했다. 이 책이 무도계에 최초로 간행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1956년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고 한국 전통무예인 수박희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명칭을 수박도로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당시 복사기가 없던 시절, 2년에 걸쳐 <무예도보통지>를 꼼꼼하게 필사했다. 이렇게 해서 대한수박도협회가 탄생됐다. 1970년 5월 『수박도(唐手)대감』, 1993년 8월 『무도철학』 등 모두 11권의 책을 저술했다.
무덕관 관훈은 무실(務實)과 신성(信誠), 그리고 정의이다.
무덕관 출신으로는 김은창, 김용덕, 최희석, 황진태, 정창영, 이강익, 유화영, 김인석, 김인석, 남삼현, 임명수, 오용균, , 홍종수, 김창진, 박영진, 원용범, 이복성, 박용하, 김풍천, 김재준, 문순선. 오세준, 지상섭, 한영태, 정성현, 김해동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