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데이 박현정 기자 | 경찰이 '가짜 수산업자' 김모(43·구속)씨 금품살포 수사와 관련, 김씨로부터 '수산물' 선물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면서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와 안면을 맺었거나 선물 등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치권 인사 명단은 이미 상당수 오르내리는 상태다. 선물의 규모와 대가성 여부에 따라 '정치권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 주호영 내사 착수…정치권 수사 확대 촉각
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가짜 수산업자' 금품살포 사건과 관련,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주 의원은 김씨로부터 대게, 한우 등 해산물 선물을 수차례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또 주 의원의 부탁으로 김씨가 한 승려에게 120만 원 어치의 대게 선물을 전달했다는 의혹의 사실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이달 초 해당 승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했다. 경찰이 겨냥하는 부분은 주 의원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는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같은 사람에게 1회 100만 원 또는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면 처벌된다.
주 의원 측은 선물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금액은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 승려에게 해산물 선물을 전달하라고 김씨에게 부탁한 적도 없다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관건은 주 의원이 받은 선물의 액수, 주 의원이 김씨에게 부탁을 한 여부 등으로 파악된다. 청탁금지법 소관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공직자가 제3자에게 요청해 누군가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면, 실제로는 공직자가 제3자로부터 금품을 제공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경찰은 여러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주 의원에 대한 입건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 것도 없으면 참고인을 조사할 이유가 없다"며 "여러 사안들을 따져볼 것"이라고 밝혔다.
주 의원에 대한 의혹 규명은 이번 사건 수사에 주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지금까지 이모 부부장검사, 전 포항 남부경찰서장 배모 총경,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엄성섭 TV조선 앵커, 중앙일보, TV조선 기자 1명씩과 박영수 전 특검 등 8명을 입건했지만 국회의원은 전무했다. 주 의원을 단초로 정치권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가짜 수산업자' 연루된 정치인들…김씨 '수사 비협조'는 한계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 수사 확대 여지와 관련 "의혹 당사자에 대해선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입건되고, 아니기 때문에 불입건되고 이런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단 주 의원에게 제기된 의혹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미 '가짜 수산업자' 김씨와 안면을 트는 등 관계를 맺었거나, 선물을 받았다는 정치권 인사들의 명단은 상당수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김무성 전 미래통합당 의원, 박지원 국정원장, 정봉주 열린민주당 전 의원,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 이훈평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 등이 포함된다.
김씨와 정치권의 연결고리는 김씨의 감방 동기이자 월간조선 기자 출신인 송모씨로 파악되고 있다. 송씨는 김무성 전 의원의 특보 출신으로 김 전 의원에게 김씨를 소개시켜 줬다. 주 의원 역시 송씨 소개로 김씨를 만났다.
포항 지역에서 수산업을 한다며 재력을 과시한 김씨는 포항 지역 국회의원을 접촉하기도 했다. 김병욱 의원(포항남·울릉)의 경우 지난해 12월 김씨와 여러 명과 함께 식사를 했고 며칠 후 수산물 선물을 받았다. 김 의원은 "내용물을 확인하니 문제가 될 정도로 고가가 아니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포항 북)은 지난 2월 김씨를 만났지만, 신분이 의심스러워 그 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전 김씨를 만났으며, 지난 2월 대게와 독도새우 등 선물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장은 선물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도, 고가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지난해 5월쯤 김씨에게 독도새우 선물을 받았지만, 답례품으로 로열젤리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밖에 김씨는 '한국3X3농구위원회' 회장으로 취임한 뒤 송경창 전 포항시 부시장, 이강덕 포항시장을 접촉해 예산 지원 등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지난 2월 초 첩보를 입수해 김씨의 '116억 원대 사기사건'을 수사하다가, 지난 4월 초 '뇌물 살포 의혹'을 포착해 청탁금지법 위반 사안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정치권까지 수사가 진행된다면 '가짜 수산업자 정치권 게이트'로 비화될 여지도 엿보인다.
다만 정치권 수사에 대한 한계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금품 공여자인 김씨가 증언을 거부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피의자의 증언과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의혹을 규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 수사에 대해 "여전히 수사 과정에서 비협조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수사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