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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준 열사 순국 115주년 범국민추모제

 

우리투데이 이승일 기자 |  (가칭)일성이준열사범국민추모회가 주최하고 이준열사순국115주년추모제봉행위원회, 재단법인 리준만국평화재단이 공동 주관하는 이준 열사 순국 115주년 범국민추모제가 2022년 7월 14일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이준열사 묘역에서 세계신도경제연구회, 세계인류하늘사랑실천본부, 부산경영자총협회,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의 후원으로 개최된다.

 

일성 이준 열사는 1858년 12월 18일 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 중산리 발영동에서 선친 이병권(李秉權), 자당 청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지은 이름은 성재(性在)였다.
1887년 가을 북청 향시(초시)에 합격했으며, 1895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창립된 법관양성소를 졸업하고, 1896년 한성재판소 검사시보가 되었으나 부패한 관리들과의 마찰을 빚어 모함을 받게 되어 출사(出仕)한지 33일 만에 면관(免官)되었다. 

 

1896년 서재필ㆍ이승만ㆍ이상재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평의장으로 취임하여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서재필ㆍ이승만과 함께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가두연설을 통해 국민계몽을 해 나가다가 반대파의 모략이 거세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법과에 입학했다.


1904년 2월 이준(李儁)으로 개명하고 1906년 3월 국민교육회 회장으로 선출. 국민교육회를 모태로 설립된 보광학교(普光學校)(야간제) 교장을 겸임하였으며 6월 평리원 검사에 임명됐다.
10월 오상규ㆍ이동휘ㆍ이종호 등과 더불어 관북지방 중심으로 하는 한북흥학회를조직하였다.

 

이준열사는 한북흥학회 회장으로 서우학회와 합동하여 서북흥학회를 발족하고, 이갑ㆍ안창호ㆍ이종호 등과 교육사업에 총력 집중하면서 서북흥학회를 모태로 오성학교(지금의 건국대학교 전신)를 설립하였으며, 광신중상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907년 도산 안창호와 비밀결사를 조직하였고 3월 제2차 만국평화회의 개최 소식을 듣고 전덕기ㆍ이회영ㆍ이동휘ㆍ안창호ㆍ김구 등과 대책을 협의하고, 고종황제를 비밀리에 만나 만국평화회의 참석 의견을 전달하여 고종 황제로부터 윤허를 받았다. 5월 9일 배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였고 이곳에서 전보를 받고 북간도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온 이상설과 만났으며 5월 21일 페테르브르크로 출발. 6월 4일 보름 만에 러시아 수도 페테르브르크에 도착하여 러시아공사 이범진과 이위종을 만났다.


성명서와 <일인불법행위> 소책자를 평화회의 의장과 일본을 제외한 각국 대표에게 전달하였으며, 평화회의보에 전문을 게재하며 활동하였으나 일제의 악독한 방해공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07년 7월 14일 할복 자결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