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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터뷰] 강화가 낳은 세계적인 도예가 ‘김미옥 교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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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강릉원주대학교 김미옥 전 교수이자 명예교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이며 인천에서최초로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도자기공예 전공 교수가 됐으며 평생을 올바른 사명감으로 오랜 대학생활 동안 공무 외 휴, 결강 한 번 없이 정년까지 국립대학교 교수로 대학 강단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사단법인 한국공예가협회 도자분과위원장 역임 때는 국내 최초로 터키, 이집트, 이탈리아, 페루지아, 로마, 스웨덴, 불가리아, 루마니아, 벨지움, 체크,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각 국, 국립박물관, 국립미술관, 동양박물관, 아시아미술관, 등의 초대로 한국현대도자기 전시를 주관하고 개최해 각광을 받으면서 민간 외교사절 역할은 물론 한국현대도자기의 진수를 세계에 알리는데 이바지했다.
그런 김교수가 자신의 고향인 강화도에서 현재는 훼손되고 사라진 인천지역 도자기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한국도자기의 전통을 이어 인천 서구의 서곶녹청자, 서곶항아리,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의 사기 생산지 등 모든 문화유적들을 덕포리에 있는 폐교 마리산초교에서 재현, 제작해 마을 전체를 강원도 안흥 찐빵마을 처럼 관광단지로 조성하고자 2000년 10월부터 21년째 폐교 마리산초교를 ‘한국강화문화예술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김교수는 ‘혼불’ 작가 최명희의 남원의 ‘혼불문학관’이나 전주의 ‘최명희문학관’처럼 ‘한국강화문화예술원’이 ‘김미옥기념관’과 함께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돼 이른바 관광수입만으로도 풍족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제자들과의 소박한 꿈이자 희망이라고 밝혔다.
김교수는 '호사다마'라고 최근 외적인 이유로 운영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폐교 마리산초교가 ‘한국강화문화예술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난 21년간 사비 수십억 원을 들여가며 마을주민, 교육청 관계자들과 함께 한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김미옥교수의 고향인 인천의 주안점토는 이천점토와 함께 전국에 몇 안 되는 유명한 점토생산지였고 폐교 마리산초교가 있는 화도면은 여주, 이천과 함께 도자기와 인연이 매우 깊은 곳으로 향 후 관광명소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예견되는 곳으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뤄 잘 보전되어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에 위치한 ‘한국강화문화예술원’에서 김미옥 전 교수를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Q 간단한 개인 소개를 하신다면?
A 저는 강화군 양도면에서 태어난 강화의 딸입니다. 초, 중, 고등학교까지 인천에서 다녔고, 대학교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과 미술학 학사를 거쳐 동 대학교 공예도안과 미술학 석사를 받았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인천미술대전 초대작가. 강원도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사)한국미술협회,(사)한국공예가협회, (사)한국현대도예가회 외 18개 단체 회원으로 각각 단체의 위원장, 회장, 이사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Q 아버지 ‘김동은’씨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A 제 아버지는 단기 4252년 12월 21일생이십니다. 단기 4252년은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양력으로는 1919년 3월 1일 만세를 외쳤던 그해에 태어나셨고, 1961년 12월 2일 폐지제정된 ‘연호에 관한 법률’은 한 문장으로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역기원으로 한다’이며 부칙에 ‘본법은 단기 4295년 1월 1일부터’ 즉 1962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해 이 때부터 서기연도가 자리잡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아마도 마지막으로 단기로 쓰여진 청렴결백 공직자로서 대통령 표창장을 받으신 분입니다.
저도 1971년~1972년 검단중학교 근무를 시작으로 50여년간 공직에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평생을 아버지의 '청백리 정신'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강화도에서 태어나 결혼도 강화도 출신과 하셨다고 들었는데?
A 개성에서 피난와 강화를 거쳐 교육관련 일을 하시다가 현재는 김포에서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강화에 부친 9남매 모친 6남매가 모두 강화분들과 결혼들을 하셔서 직계가족만 모여도 최소 200명이 넘습니다.
그러다보니 강화에 일가친척들이 곳곳에 살고 계시는데 사실 사촌은 물론 6촌만 되어도 친척인지 몰랐던 경우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초대 강화군수였던 김선홍 군수님도 저와 친척인지 모르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친척지간이셨더라구요.
하여간 강화도 곳곳에 친척들이 산재해 있어 동네별로 기억을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자면 욍일이모, 종개이이모, 별밭이모, 도장리고모, 화도고모, 양도고모, 읍에고모, 등등 어렸을때 저희들이 친척들이 너무 많아 순서와 촌수를 헸갈려 하니까 여자들은 시집간 지명으로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지요.

 

 

Q 강화도 사람들이 김미옥 교수님이 ‘한국강화문화예술원’을 운영하고 있는것을 잘 모르던데?
A 제가 강원도에 있는 국립강릉원주대학교에 정 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현직에 있을때는 화~목, 금요일 오전은 강원도에, 금요일 오후 토~월요일은 강화 문화원에서 작품을 하느라 너무 바쁜 생활을 하며 찾아오는 분들만 만났기에 그럴 수도 있을겁니다. 또한 너무 친척들이 많아 여기 저기 나서다가 잘못 소문이 나면 뉘집 딸, 손녀가 대처에 나가 교수되더니 건방지다는 소문이 날가 조심하고 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워낙 전국구로 활동영역이 넓다보니 서울 인천은 물론 멀리 제주도까지 심사요청 등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찾아오는 분들 만나기도 빠듯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덕포리 주민들은 모두 저를 알고 응원해 주고 계시지요 ‘한국강화문화예술원’을 잘 운영해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만들어 주시길요, 요즘에는 강화도에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일반인들은 저를 잘 모르겠지만 저를 보고 강화에 들어와 미술 작품 하시는 분들이주위에 많이 모여있어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자기 일처럼 서로 돕고 있습니다. (웃음)

 

 

Q 요즘 ‘한국강화문화예술원’ 관련해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화제가 많던데?
A 물론 모두가 거짓 내용이라 기분 나쁜 정도를 지나 기가 막힌일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를 하러 기자분들이 찾아와 사실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 반갑긴 하네요.(웃음)
이곳을 21년간 운영하며 요즘처럼 ‘화제’가 된적이 없는데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인것 같습니다.

 

 

Q 청와대 국민청원 내용을 보면 ‘공정한 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명시가 되어 있던데?
A 저는 21년간 ‘폐교 운영’에 관해서 대한민국 정부의 전국 폐교활용계획과 인천시 교육청의 대부계약 원칙대로 충실하게 잘 운영하고 있으며 단한번도 계약을 위반한 일이 없습니다.
2000년도 대부계약 당시 덕포리 마을주민들의 1차 심의를 거치고 인천시교육청의 2차 공개경쟁 입찰에 응해 최고액을 써낸 후 대부계약을 체결하고 21년간 단 한번도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본적도 없고, 수익사업도 없이 오로지 지난 21년간 사비 수십억원을 들여가며 76년 된 폐교를 수리, 보수, 괸리는 물론 거액의 대부료까지 지불하며 고향땅인 이곳을 ‘한국강화문화예술원’으로 거듭나게 하려고 피땀 흘려 운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잘 운영하다보니 이 곳을 탐내어 운영권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런 날조를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국민청원 내용에 마을주민들 서명이 모두 가짜이고 주민편의를 위해 사용, 복토하도록한 흙차 250대를 3000대라고 하며, 교육청과 저에게 가처분신청 소송건도 기각당했는데 무엇이 문제라는건지요? 이 모든 일들은 사실확인을 하면 모두 밝혀지는 일들입니다.


저는 남편과 자식들이 생활비를 모두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저의 교수봉급 전부를 마리산 폐교를 ‘한국강화문화예술원’으로 탈바꿈하는 운영에 쓸수 있어 그동안 누구의 도움없이도 21년간 운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남편과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Q 청와대 국민청원 내용을 보면 '방치'되었다는 주장도 있던데?
A 방치라는 표현은 새빨간 거짓입니다. 제가 그동안 이곳 ‘한국강화문화예술원’에서 유치원, 초, 중, 고,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 직장인들까지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도자기 체험교육을 하며 현대도자기 전시를 관람시키며 도자기 미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당시 사진을 촬영해 놓은 자료가 사과박스로 두 상자나 됩니다.
그동안 국립강릉원주대학교에서 화요일~금요일 오전까지 근무를 하고, 금요일 오후~월요일까지 ‘한국강화문화예술원’에서 ‘도자기체험교육’을 해왔고 더군다나 6중순~8월, 2월 중순~다음해 2월까지는 방학기간중이라 강화문화원에서 작품과 전시를 해 왔는데 그걸 방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실상을 모르는 무식의 소치인 음해성 발언입니다.

 

 

Q 최근 교수직 정년퇴직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A 맞습니다. 전국은 물론 강원도에서도 괄목할 만한 활동으로 학술상를 여러번 수상하였기에 강원도에 있는 어떤 폐교라도 무료로 사용하면서 ‘현대도자기전시관’ 또는 ‘김미옥기념관’을 강원도에 만들어달라고 하는것을 마다하고 저는 고향인 강화에 ‘현대도자기전시관’ 아니면 ‘김미옥기념관'을 만드는 것이 장차는 더욱 뜻깊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인천 경서동 녹청자와 함께 강화 사기리의 명맥을 되찾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자기 마을’로 거듭나게 만들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도자기’ 하면 경기도 이천을 떠올리지만, 앞으로 정년퇴직한 제가 이곳 강화도에서 본격적으로 ‘도자기교육’과 상설 ‘현대도자기미술관을’을 운영하면, 아마도 빠른 시일에 강화도 덕포리가 경기도 이천을 능가하는 ‘도자기 마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Q 10월경에 다시 대부기간 연장 심사를 받는다고 하던데?
A 이제는 교수 정년퇴임도 했고, 평일에도 이곳 관사에서 생활하며, 덕포리 주민들과 더욱 자주 교류도 하면서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도자기전시는 물론 바자회도 열면서 도자기 체험교육을 다시 재개할 계획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낸 그는 이사와 살면서 지속적으로 문화원 운영을 방해하는 민원을 계속 제기하는 덕포리 주민 한사람인데 저는 본적도 만난적도 없으며 더군다나 ‘민원간의 다툼’ ‘흉물스럽게 방치’라는 말은 제 인생엔 있을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바보가 아닌이상 76년간 노후된 폐교를 수리, 관리, 보수하며 한사란의 민원 때문에 사용도 못하는 운동장 잡초제거까지 하며 몇천만원씩의 임대료를 내면서 방치하는 바보천치가 이 세상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A ‘한국강화문화예술원’은 도자기 분야에서는 전국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240여명이 2시간동안 동시에 수업을 들을수 있는 교육장을 비롯해 도자기 만드는 전기물레, 발차기물레, 손물레, 목물레등 60여대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도자기에 필요한 대량의 점토, 유약은 물론 도자기 굽는데 필요한 가마도 전기가마, 개스가마, 전기개스 혼용가마, 등이 있고 토련기도 점토 성질에 따라 사용 할 수 있도록 2대나 구비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